[미디어펜=이보라 기자] 국세수입 펑크가 사실상 기정사실로 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불용(不用)'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불용은 편성한 예산을 쓰지 않는 행위다. 통상은 편성된 사업이 중지되거나 해당 연도에 집행될 수 없는 다른 사정이 발생할 때 계획된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불용 방식으로 처리하지만, 세입이 부족할 때 세출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21일 재정당국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올해 세수 펑크 상황을 예산 불용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올해 연간 기준 세수 펑크는 정부도 시인한 상황이다. 정부는 3월까지 총 87조1000억원 상당의 국세를 걷었다. 지난해 같은 시점 111조1000억원을 걷은 것과 비교하면 24조원 줄었다.

4월부터 연말까지 작년과 같은 규모의 세금(284조8000억원)을 걷는다고 가정해도 연말 기준 국세수입은 371조9000억원으로 정부의 세입 예산인 400조5000억원보다 28조6000억원 부족하다. 현 상황 기준으로 이미 30조원 가까운 세수 펑크를 의미한다.

정부는 올해 경기가 상저하고(上低下高)로 진행되면서 하반기에 상반기 세수 부족분을 상당 부분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지만, 최근 경제 전망은 하반기 성장률이 기존 예상에 미치지 못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례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하반기 경제 성장률을 기존 2.4%에서 2.1%로 최근 하향조정한 바 있다. 즉 상저하고가 상저하중(上低下中) 정도로 낮아지면서 정부가 기대하는 하반기 세입·재정 개선 폭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늘어가는 것이다.

세입이 부족한 상황에서 세출을 원래 계획대로 하려면 국채를 추가 발행하는 방식이 있지만 건전재정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 철학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 올해 국채 발행 한도에 걸리는 문제가 있다.

세입을 감액하거나 세출을 확대하는 추경 편성에 대해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반대 입장이 워낙 완강하다. 추 부총리는 빚을 끌어와 인위적으로 성장률을 방어하는 데 대한 거부감을 여러차례 피력해왔다.

수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빚을 끌어와 기존 지출 계획을 유지하는 방안을 거부한다면 나머지 해결책은 지출을 줄이는 것, 즉 불용이나 지출 구조조정이다. 이런 이유로 예산 불용이라는 고육책을 꺼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사업 자체가 중지되거나 다른 사정으로 올해 집행을 못하는 사업을 식별할 수 있는 시기도, 세수 펑크 상황이 좀 더 명확해지는 시기도 하반기는 돼 봐야 알 수 있으므로 정부는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추후 불용 계획을 대비하고 있다.

불용은 처음에는 예산은 예정대로 배정하되 각 부처에 집행을 줄이도록 지침을 내리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좀 더 명확하게 하려면 예산당국이 사업 예산 자체를 아예 감액 배정하는 방식도 있다.

이와 더불어 기금 여유재원 등 정부의 여타 가용 자산도 동원할 예정이다. 세수 부족 상황을 행정부가 불용이라는 방식을 동원해 대응하는 것은 2013·2014년 이후 근 10년 만이다.

정부는 2013년 당시 국세수입이 201조9000억원으로 세입예산(210조4000억원) 대비 8조5000억원 부족하자 18조1000억원을 불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2014년 국세수입은 205조5000억원으로 예산 대비 10조9000억원이 부족했다. 정부는 당시 불용 규모를 17조5000억원으로 늘려 대응했다.

올해 세수 펑크 규모는 2013년이나 2014년보다 몇 배 커질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이에 대응하는 불용 규모도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가능성이 흘러나온다.

다만 불용이나 지출 구조조정 규모를 늘리더라도 법적으로 지출이 규정된 복지지출 등 의무지출은 대상에서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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