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전쟁은 없다"…북 기습공격 6명 전사 진실 밝혀야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영화 연평해전, 김대중 김정일을 돌아보게 하다

2002년 6월 29일, 한반도 서해상 연평도 앞바다에서 군인들은 죽어갔다. 북한군의 기습 선제공격에 장병들은 스러져 갔고 일선 부대에 군복무 중이던 군인들을 제외하고 국민들 모두가 무관심했다. 세계인의 축제라 일컬어지는 월드컵에 열광했던 오천만 국민과 그 후광을 누렸던 정치인들 모두의 눈길은 경기장에만 쏠렸고, 북한 김정일은 그 틈을 노렸다. 불쌍한 장병들만 죽어나갔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다. 세월은 바뀌었다. 당시 희생 군인 장병들의 주검을 내팽개치고 이웃나라 일본에 축구관람을 갔던 김대중 대통령과 서해상의 기습 도발을 획책했던 김정일 모두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당시의 평화적 분위기에 도취된 김대중 정부 및 국방부 수뇌부는 6.29 연평해전이 일어나기 전 예하 정보부대의 북한 도발 관련 결정적인 첩보를 2번 묵살했다. 연평해전이 일어나기 이틀 전 6월 27일 북한에서 교신했던 5건의 전문에는 “사격 명령이 있으면 즉시 (남한 고속정을) 사격하겠다”는 내용까지 담겨있었지만 국방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 쏟아지는 적의 기습 포화 속에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은 죽어갔다. 나머지 승조원들은 갖가지 중상을 입었다. 북한의 계획적인 선제기습공격에 해군 장병들은 스러졌다. /사진=영화 연평해전 스틸컷

북측의 기습공격으로 개시된 연평해전이 5일 지나 열린 7월 4일 한미 정보부처 연평해전 평가회의에서 국방부는 ‘북의 도발은 우발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리언 라포트 당시 한미 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과 남재준 한미 연합사 부사령관은 이튿 날 김동신 국방부장관에게 항의할 정도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후, “이제부터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선언했다. 이후 국방부는 수집했던 북한 첩보를 주한미군에게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 정부의 이러한 대북 유화책으로 인해 2002년 6월 제 2차 연평해전이 발발한 것이다. 우리나라 해군 참수리 357정은 북한 해군의 계획적인 기습 선제공격으로 인해 6명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초유의 참화를 당했다. 교전수칙을 바꿔 적의 선제공격이 있기 전까지 북한 함정에게 경고사격조차 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 해군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 김대중 정부는 1999년 6월 15일 제 1차 연평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2함대 사령관 박정성 제독을 좌천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후, “이제부터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사진=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어처구니 없는 것은 지금 남아있는 자들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본인 SNS를 통해 1999년 6월 벌어졌던 제 1차 연평해전에서의 대승을 언급하면서 “김대중 정부는 뛰어난 리더쉽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표는 “북한이 (한달이 지나) 7월 25일 연평해전에 대해 사과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과 남북 간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탁월했을지 몰라도 대한민국은 지키는 군인들은 헌신짝처럼 대했다. 해군 함정들을 발가벗겨서 북한 함포와 총탄에 내어주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의 직무를 소홀히 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6월 15일 제 1차 연평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2함대 사령관 박정성 제독을 좌천시켰다. 이후 박정선 제독은 군복을 벗었다. 교전수칙을 바꿔 해군 장병들이 고스란히 적의 선제공격에 노출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 결과가 2002년 6월의 제 2차 연평해전이다.

   
▲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과 남북 간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탁월했을지 몰라도 대한민국은 지키는 군인들은 헌신짝처럼 대했다. 해군 함정들을 발가벗겨서 북한 함포와 총탄에 내어주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의 직무를 소홀히 했다. /사진=영화 연평해전 스틸컷

쏟아지는 적의 기습 포화 속에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은 죽어갔다. 그들의 영결식에 김대중 대통령, 국방부 장관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해상에서의 실제 전투에 임했던 그들의 목숨값은 3천만 원이었다. 해상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이 받은 8억 원과 비교하면 언어도단에 가깝다.

영화 연평해전은 이러한 모든 것을 사실관계에 의거하여 담담히 보여준다. 영화 연평해전은 누구나 누군가의 친구나 누구의 자식이라도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영화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처할 수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욕설이 절로 나왔지만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난 지금, 그러한 기습 도발을 획책․감행했던 북의 김정일과 남의 김대중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들은 누구였고 어떤 일을 벌였는지 말이다.

후일 역사가 평가할 것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거의 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것이 13년 전 연평도 앞바다에서 스러져간 호국영령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도리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제2 연평해전 13주기를 맞은 29일 국방장관으로서 첫 추모사를 밝히면서 전투를 ‘승전’으로 규정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