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상진 기자] 출근길 버스에서 뮤지컬 ‘엘리자벳’ 넘버 ‘나는 나만의 것’을 듣다보면 과속방지턱의 덜컹하는 충격이 마치 제주도를 향해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자유를 향해 가는 꿈을 꾸지만 잠시 졸다 눈을 떠보면 늘 정보전쟁터의 최전방이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을 함께한 황후 엘리자벳은 우리와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일생을 담은 뮤지컬은 지극히도 한국적으로 다가온다. 외형적인 부분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녀가 외치는 자유에 대한 갈망, 나 자신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남아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장면 /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이야기는 엘리자벳의 인생을 좇는다. 그녀를 죽인 살인범 루케니의 해설을 통해 엘리자벳은 소녀시절, 요제프와의 사랑, 왕궁에서의 억압, 아들의 죽음, 정처없는 방황, 죽음의 싸이클을 맴돈다. 세 시간 남짓 펼쳐지는 그녀의 인생길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며 유혹하는 가상인물이 죽음(Tod)이다. 삶의 굵직굵직한 사건마다 등장하는 그의 존재는 자유를 갈망하는 엘리자벳 자신의 내면이다. 평온했던 삶이 규칙과 억압으로 인한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 나타나는 그의 모습은 섬뜩하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으로 관객들마저 유혹한다.

공연을 볼때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삶이 고될 때마다 찾게 되는 소주 한 잔이 죽음이 선물하는 악마의 주스처럼 느껴진다. 그가 건네는 술잔을 들이킬 때마다 웃다 울다 하루가 간다. 더럽고 힘들지라도 우리는 어떻게든 죽음의 키스만은 피한다.

재작년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했을 때 그녀의 박물관과 묘지를 들렀다. 그녀와 프란츠 요제프 황제, 황태자 루돌프가 함께 자리한 방 안에서 한참이나 머물렀다.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자유로운 것인지, 당신은 정말 그렇게 살았는지 말이다. 돈 걱정 없이 살았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당신의 삶은 사치로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따지고 싶었다.

그리고는 일정 마지막날 만난 ‘엘리자벳’의 오리지널 공연을 보며 답을 얻었다. 메시지가 변형된 한국 버전과는 달리 엘리자벳에 초점을 맞춘 오리지널 공연은 눈물을 한웅큼 쏟아내게 만들었다. 무대 위에서 엘리자벳은 마치 ‘후회 없이 네가 원하는 대로 살라’는 것처럼 앞만보고 달려 피로에 지친 내 손을 꼭 잡아주는 듯 했다.

   
▲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장면 /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이번 공연을 보는 내내 제주도를 떠올렸다. 하늘은 파랗고, 숲은 푸르고, 바다는 햇빛의 반짝임을 간직한 함덕 해변 한가운데에서 바람을 맞으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던 기억에 몸서리쳤다. 미치도록 맑은 섬이 그리웠다. 그곳에서는 비루할지라도 타들어가는 가슴에서 뿜어 나오는 담배연기와 죽음이 건네는 술잔을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한 취재원은 “그곳의 삶도 여기와 같다. 여기서 악착같이 버티라”고 했다. 꿈같은 이야기라고도 했다. 꿈은 꿈일 때 아름답다는건 이미 10여년간 기자를 준비하고 해오면서 충분히 알았다. 대학로 반지하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대학로 반지하 원룸으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전하던 꿈같은 삶이 처음 깨졌을 때 죽음과 ‘마지막 춤’을 한번쯤 췄던 것 같다.

한국으로 넘어와 몇 번이나 변형된 ‘엘리자벳’은 이제 작품의 본질보다 포장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확고한 인물해석을 보여준 프란츠 요제프 역의 이상현은 작품의 부제가 ‘요제프의 악몽’이라 설명했다. 제작사가 밀고 있는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운 황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했기에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일부 전문가는 흥행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말하지만, 작품성만으로도 흥행하는 사례를 익히 봐왔기에 변명처럼만 들린다. 공연이 작품이라면 두 번 세 번 봐도 같은 감동이 느껴져야 한다. 불행히도 ‘엘리자벳’은 단 한번도 오스트리아에서 만났던 원작의 감동을 재현한 적이 없다. 특히 멋스러운 죽음과 과장된 루케니에 대한 해석에 안타까움이 많다.

오늘도 버스를 타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 ‘나는 나만의 것’을 들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남은 앞날을 어떻게 바꿀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꿈은 현실이 되기 힘들다. 그러나 결정이 어려울 뿐 막상 도전하면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기도 하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되찾고 진정한 자유를 원한다. 그것이 과연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장면 / 사진=EMK뮤지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