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팬=김재현기자] 1996년 12월 대우전자는  프랑스 최대 국영가전업체 프랑스 톰슨멀티미디어 인수가 무산됐다. 대우전자는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해 세계 최대 텔레비전 공급업체로 부상하겠다는 꿈은 좌절됐다. 겉으로는 첨단기술의 제3국 유출이라는 반대여론이 확산됐지만 속내는 달랐다. 아시아 변방의 기업이 프랑스 기업을 넘보냐는 자존심 문제가 저변에 깔렸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충격과 슬픔을 자국민의 심정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삼성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상대로 한 법정 다툼에서 승리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용대 민사수석부장)는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 1일 기각했다. 사진은 1일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사옥 모습./연합뉴스
미국의 제네럴일렉트릭(GE)의 프랑스 중공업체 알스톰 인수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헐값매각, 기술 유출, 구조조정의 논란이 방어벽을 세웠다. 주식시장은 시장가치의 판단으로 움직인다. 이 속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를 피할 수는 없다. 기업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금지옥엽같은 노력과 희생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엘리엇 같은 벌처 펀드는 시장을 조작해 단기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무지막지한 행동을 감행한다.

유럽 기업지배구조 연구소(European Corporate Covernance Institute)가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세계 23개국에서 2000년부터 이뤄진 1740건의 행동주의 펀드 개입을 보자. 대부분 주가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는데 실패한 것으로 나타난다. 회사를 완전히 인수해서 구조조정을 한 일부 경우만이 주가를 끌어올렸을 뿐이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5년 전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 PSAM(P. Schoenfeld Asset Management)이 프랑스의 복합그룹 비벤디(Vivendi)륵 공격해 합의에 도달했지만 비벤디 주가는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연구 결과에서 보듯 행동주의 펀드는 주주가치를 지속적으로 상승시킨다는 것보다 이벤트를 만들어 주가를 단기적으로 조작한 뒤 그 차익을 챙긴다고 할 수 있다. 그 뒤의 기업은 어찌될까.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기업의 생존과 미래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우량한 기업을 찾아 그 성장을 지켜보며 자신의 주식을 키운다. 단기적 차익을 얻기 위해 무지막지한 행동을 감행하는 벌처펀드에 환호하며 뒤따른다면 앞으로 한국 내 투자할 기업, 한국경제를 이끌 대표기업들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지금 때가 어느때인가. 밖으로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금융시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고 안으로는 내수침체, 수출 부진 등이 겹치면서 원할한 경제활동이 마비될 지경이다. 정부도 추경을 통해 우리 경제를 수혈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메르스 여파가 한국경제를 강타했지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투자와 고용을 통해 비타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더욱 미래성장을 위해 힘차게 박차고 나가야 할 때 글로벌 투기자본의 마수가 기업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다행히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삼성 저격수라고 불리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영록, 신정훈, 김기준, 이학영, 민병두, 김현미, 강동원, 안민석, 박범계 의원이 동참했다.

국가가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외국인 투기자본의 위협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원할한 운영이 현저히 저해될 수 있다는 취지다.

삼성의 지배구조, 승계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날리던 야당의원들 마저 외국인 투기자본의 침공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그치지 않고 제일모직, 삼성SDI, 삼성정밀화학 등의 주식을 추가로 매입해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영국의 헤지펀드 헤르메스가 삼성정밀화학 주식(5.02%)를 매입하면서 국내기업의 침공 본격화를 선언했다.

대주주 지분율, 높은 유보금, 저평가 주가 등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노려 단기차익을 챙기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극단적 행동 중 공통점이 있다. 바로 포퓰리즘(Populism)을 활용한 이익 추구다. 1990년대 이후 행동주의 펀드들이 소수주주로 이사회에 참여하는 방법 등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발휘해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소수주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다른 주주들과 연합전선을 펼쳐야 한다.

다른 주주들을 끌어들리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지배주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소액주주들끼리 연대하면 '주주 이익'을 높일 수 있다는 제시한다. 대중의 감성을 이익으로 포장하는 셈이다.

엘리엇도 삼성 분쟁에서 포퓰리즘을 동원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방침이 발표되자 소수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정의의 사도로 변태하며 전면에 등장했다. 합병계획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공정하하다며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네이버의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마저 생겼다. 지배구조의 결함,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투기자본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엘리엇-삼성 분쟁의 결론에 따라 외국인 투기자본이 우리나라 경제의 안마당을 차지해 활개칠 수 있음을 반드시 상기해야 한다.  

소액주주 보호는 지배구조개선 차원에서 개선해 나가야 한다. 두 얼굴을 가진 투기자본의 힘을 빌리다 결국 막대한 국부를 유출하고 경영불안으로 인한 투자위축을 초래하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선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