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책임 소재 가리기 힘들어 정치적 거래·야합 부추겨
2012년 5월 30일, 정치개혁을 통한 신뢰회복을 기치로 19대 국회가 개원한지 만 3년이 넘었다.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돌아본 19대 국회에 대한 평은 좋지 않다. ‘경제민주화’라는 미명하에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규제입법양산, 세월호 참사 이후 보여준 입법제로 정국, 무엇보다 소위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한 폐해는 입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심지어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합의제’라는 관행을 고착화시켜, 최근에는 공무원연금개혁법안 처리와는 무관한 사안까지 연계시켜 ‘국회법 개정안’ 위헌논란을 일으켰고 박근혜 대통령은 거부권까지 행사하였다.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과 이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19대 국회는 ‘국회선진화법’의 폐해로 입법부의 권한을 원활히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았다.

문제는 합의제라는 ‘국회선진화법’의 폐해 때문에 ‘국회선진화법’ 자체도 쉽게 개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는 19대 국회를 결산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 첫 번째 순서로 19대 국회를 마비시킨 ‘국회선진화법’ 폐해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19대 국회 혁신 시리즈 토론회 1차] <국회를 마비시키는 ‘국회선진화법’, 어떻게 해야 하나>를 주제로 바른사회는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었으며, 토론회는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의 사회로 진행됐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및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으며, 패널로는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와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참석하여 열띈 토론을 벌였다. 아래 글은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회 선진화법’ 무엇이 문제인가

Ⅰ. 서 론

‘국회 선진화법’은 대한민국 국회를 변화시킬 것인가? 폭력이 난무하는 국회는 사라지고 여야 간 활발한 토론과 대화 그리고 타협의 국회가 될 것인가?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국회 선진화법에 대한 의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국회 선진화법이 대한민국 국회 정상화를 위한 계기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국회 선진화법에 대한 우려도 있다. “식물국회”의 가능성이 대표적 지적이다. 부실심의․부실심사의 우려도 있다. 이렇게 보면 국회 선진화법은 양날의 칼이다. 따라서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국회 선진화법의 성공여부가 달려있다.

물론 19대 국회출범 이후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입법교착상태에 빠진 경우는 없었다. 그럼에도 국회 선진화법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었다(동아일보, 2014.11.03.). 최근 국회 선진화법이 다시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입법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련 없는 법안 간 연계 등으로 정치적 논란의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글은 국회 선진화법의 주요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Ⅱ. 국회 선진화법의 주요내용

‘국회 의안처리 개선 및 질서유지 관련 국회법 일부개정 법률안’ 또는 국회 선진화법은 6개의 부분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핵심 내용은 ‘여야 간 물리적 충돌소지의 제거, 대화와 타협의 장(場) 제공, 소수파 의견개진 기회보장과 다수결 원칙의 조화, 법정기한 내 처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확보, 위원회 중심주의의 강화 그리고 국회 내 질서유지 강화’ 등이다.

   
▲ 누더기법안 ․ 끼워팔기 ․ 불임국회 ․ 소수의 독재 정당화 ․ 대의민주주의 파국…대한민국 19대 국회는 ‘위기의 국회’ 그 자체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건설적 대안을 논의할 시점이다.

이들 조항은 첫째, 법안상정 또는 심의과정에서 있었던 여야 간 물리적 충돌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한 방안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국회 선진화법은 신속 처리제 등을 도입하여 국회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추가했다.

둘째,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국회 선진화 법은 ‘위원회 안건조정제도(국회법 57조의 2)’를 도입했다. 이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여야 또는 정당 간 타협과 조정의 정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소수파의 의견개진 기회를 보장하고 국회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위한 다수결제를 실현하기 위해 국회 선진화법은 ‘본회의 무제한 토론(국회법 106조의 2)’제를 도입했다. 이는 소수의견이 충분히 국회에서 개진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동시에 국회 선진화법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기제로서 다수결주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회에서의 토론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시기의 정치적 결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째, 국회 선진화법은 법정기한 내 의안처리를 제도화하기 위해 ‘예산안 등 및 세입예산안 부수법류안 본회의 자동부의(국회법 85조의 3)’제를 신설했다. 이는 국가운영을 위한 예산안 등을 기한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국회 선진화법은 위원회 중심주의의 강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상임위 상설소위원회 활동지원 강화(국회법 57조의 2)’를 위한 조항 신설로 구체화 했다.

여섯째,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 질서유지 관련(국회법 148조의 2, 148조의 3, 155조, 156조 그리고 163조)’조항을 신설 또는 보완하여 국회 자정기능의 제고를 시도했다.

   
▲ 국회선진화법의 치명적인 문제는 한번 시행되면 고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 선거에서 어느 정당도 단독이든 연대든 3/5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선진화법은 반(反)민주적이다. 소수 야당에게 끌려가는 국회는 대의민주주의 원리를 훼손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6가지 주요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 간 합의가 있는 경우로 한정했다.

둘째, 상임 위원회에 회부되어 상정되지 아니한 의안 중 예산안 등을 제외한 의안은 일정한 숙려기간 이후 30일이 경과하게 되면 처음으로 개회되는 위원회에 상정된 것으로 간주한다.

셋째, 위원회는 예산안 등과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를 제외한 안건의 쟁점을 조정하기 위하여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에 따라 여야 동수로 6인 안건조정위원회를 설치한다.

넷째, 의장은 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에 대하여 재적의원 또는 소관 위원회 재적 과반수의 요구가 있으면 신속처리 대상안건으로 지정하고 그 지정일로부터 위원회는 180일,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는 90일 이내에 심사를 완료하지 않으면 각각 다음 단계로 자동 회부 또는 부의된 것으로 간주한다.

다섯째, 의원은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는 경우 본회의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되 토론실시 중에는 ‘일일 1차 회의’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산회 없이 계속 토론할 수 있도록 하고, 무제한 토론의 종결을 위한 구체적 조건을 제시했다. 그것은 첫째 더 이상 토론할 의원이 없거나, 둘째 재적의원 5분의 3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 경우, 셋째 무제한 토론 중 회기가 종료된 경우로 한정하며, 토론이 종결되면 안건을 지체 없이 표결한다.

여섯째, 위원회는 예산안 등과 세입예산안 부수법률안 심사를 매년 11월 30일까지 마쳐야 하며, 심사를 마치지 못한 경우 해당 예산안 등은 그 다음날인 12월 1일에 본회의에 바로 부의된 것으로 간주한다.

일곱째, 의원은 의장석 또는 위원장석을 점거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징계안을 바로 본회의에 부의하여 의결하도록 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의원의 회의장 출입을 방해할 수 없도록 했다.

여덟째, 질서문란행위 관련 징계의 경우 경고 또는 사과는 2개월 수당 등의 2분의 1을, 출석정지는 3개월 수당 등의 전액을 감액하도록 하여 징계 수준을 강화한다.

이 같은 개정안의 시행일은 2012년 5월 30일로 하되 예산안 등을 12월 1일에 본회의에 자동 부의하는 규정은 2013년 5월 30일부터 시행하도록 한다.

Ⅲ. 국회 선진화법의 성공조건

국회 선진화법의 효과는 무엇일까? 최소한 국회 내에서 물리적 충돌 가능성은 최소화되었다. “해머 국회” 또는 “최루탄 국회”는 피할 수 있다. 법정 기한을 넘기는 것이 당연하게 보였던 예산처리도 기한 내 가능해졌다.

하지만 “식물국회”의 우려가 문제이다. 어떤 법안도 야당의 동의가 없으면 통과가 어렵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일반적 다수결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부실심의와 부실심사의 우려제기 또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국회 선진화법은 두 가지가 쟁점이다. 하나는 3/5 의결규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본회의 무제한 토론의 종결과 안건 신속처리제의 지정대상 의안의 결정이 3/5 의결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안건조정위원회에 상정된 안건의 의결도 여야 동수로 구성된 안건조정위원회의 재적위원 2/3 동의가 필요하다.

   
▲ 한국 국회는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장소로 전락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미명 하에 야합과 포퓰리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민의의 정당이 되어야 할 국회가 국민의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3/5 의결 규정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미국적 제도이다. 미국 하원이 사용하는 제도도 아니다. 미국 상원에서도 본회의에서만 사용한다. 동일한 제도를 도입한다고 동일한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소수파의 의견개진 기회를 충분하게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서 본회의 무제한 토론은 의미 있다. 하지만 위원회와 본회의 단계에서 이중삼중으로 소수파를 보호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소수의 입법방해가 가능하도록 제도화 것의 핵심이 3/5 의결규정이라는 논리다. 다수결 원칙의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한국국회에서 ‘3/5 또는 2/3 의결’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한국의 주요 정당들이 강한 정당기율을 가지고 있고, 쟁점 법안의 경우 국회 내 표결방식으로 당론투표가 일상화된 경험에 미루어 보면 더욱 그렇다. 3/5 의결규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한국의 정당집단주의가 약화되고, 의원의 자율성은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국회 내에서의 정당 간 대결구도는 계속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악화되는 양상까지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조적 문제이다. 즉 중앙집권적 정당구조와 집권당의 대통령 종속화 현상이 정당의 응집력을 강화시키고 이것이 결국 정당 간 대결구도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다(정진민 2013).

국회 선진화법을 둘러싼 두 번째 논란의 대상은 ‘표결방식’과 관련 있다. 3/5 의결조건이 ‘무기명 투표’를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는 의안의 의결이 아니라 의사일정의 결정에 관해 ‘무기명 표결’을 도입한 것이나, 이는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참여연대 2012).

의안의 처리과정에서 참여 의원들의 입장을 공개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유권자들이 뽑은 대표가 행한 대표행위에 대해 알 권리를 보장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또한 다음 선거에서 재선을 허용할 것인지 지지를 철회할 것인지를 결정할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위원회 및 본회의 의안 결정과정 뿐 아니라 의안의 심의절차를 결정하는 과정의 정보 역시 당연히 유권자에게 공개되어야 마땅하다는 지적이다.

이 글은 국회 선진화법의 ‘무기명 투표’ 규정을 여야타협의 결과물로 해석한다. 국회 선진화법이 국회에서의 폭력적 충돌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지는 못하더라도 충돌계기를 상당부분 최소화할 것이라는데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것은 ‘식물국회의 가능성’이다. 특히 3/5 의결규정이 대표적이다. 어느 정당도 전체의석의 60% 이상을 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야의 교차투표가 없이는 3/5 의결규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3/5 의결규정에 ‘무기명 투표’를 명문화 한 것은 여야가 무기명 투표라는 장막 뒤에서 정치적 거래 또는 타협의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정치적 해결의 수단으로 무기명 투표방식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투표했는지 알 수 없어 의원 개인의 정치적 부담도 줄어든다. 심증과 정황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 정치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원칙적으로 보면 국회의원의 자율투표는 헌법과 국회법에 규정된 사항이다. 헌법 제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고 규정한다. 국회법도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114조의 2)”)고 한다. 헌법과 국회법에 자율투표가 분명히 명시돼 있다.

   
▲ [19대 국회 혁신 시리즈 토론회 1차] <국회를 마비시키는 ‘국회선진화법’, 어떻게 해야 하나>를 주제로 바른사회는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은 발표하고 있는 김형준 명지대 교수. /사진=바른사회시민회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여당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한 목소리로 찬성하고, 야당은 무조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국회였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자율투표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국회 선진화법 성공의 제 1조건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강한 정당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회운영은 소수 정당 지도부의 영향력에 따른 집단화된 행동으로 표출되어 왔다. 따라서 국회파행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정당간의 대결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인위적 정계개편의 상시화, 정권교체의 경험부족, 강한 정당기율과 의원의 낮은 자율성이 나타난 것이다(강원택 2010). 따라서 국회 내 충돌이 다수의 횡포와 소수의 극렬한 저지의 결과물이고, 물리적 충돌은 개인수준의 우발적 충돌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계획적이다(박찬욱 1999; 2002; 2004). 그 중심에 정당이 있는 것이다.

다수결에 대한 공감부족 또한 국회 선진화법의 현실적 적용에 어려움을 주는 요소이다. 국회의 의사결정 방식은 다수제에서 합의제로 이동 중이다. 국회의원의 대부분도 국회 의사결정방식으로 합의제를 선호한다(이갑윤·이현우 2010). 따라서 국회파행의 원인 중 하나는 국회의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합의부족 때문이다. 이는 집합적 의사결정의 장(場)으로서 국회는 결국 ‘효율성/책임성’과 ‘대표성’의 추구의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다(한정택 2012). 따라서 소수의견의 개진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면서 동시에 의사결정 기제로서의 다수결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회의장의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이송호·정원영 2014).

마지막으로 정치적 신뢰의 부재도 문제이다. 여야 상대방에 대한 근본적 불신은 합의와 타협의 가능성을 현격하게 약화시킨다. 정치적 신뢰의 부재는 타협과 절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