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분쟁…대기업 경영권 방어와 수익률 두마리 토끼잡기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삼성 손 들어준 국민연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싸고 삼성과 엘리엇 간의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의 행보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11.61% 지분율로 삼성물산의 제 2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쥔 형국에서 국민연금은 삼성을 선택했다. 17일 열릴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는) 의결권을 행사하는 보통주 지분은 11.21%다.

현재까지 삼성에 우호적인 지분은 최소 19.78%, 엘리엇 편에서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는 지분은 9.3%로 추산되고 있었지만, 국민연금이 우군으로 가세함으로써 삼성 우호지분은 최소 31%까지 올라갔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지분은 11.05%다. 이들 대부분이 삼성물산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므로 삼성이 지금까지 확보한 우호지분은 42%로 추산된다.

관건은 삼성물산 외국계 자본이다. 이들의 지분은 33.97%에 달한다. 나머지 24.7%의 향방이 관건이다. 국민연금이 삼성의 손을 들어주어서 42 대 9의 구도가 되었다. 삼성은 17일 벌어질 삼성물산 임시 주총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 국민연금은 1차적으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이는 단기를 포함한 중장기적 시점에서 요구되는 절대과제다. 중장기 수익률 제고는 국민재산 수탁자로서 국민연금의 의무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이번 선택이 삼성물산 제일모직 건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선택은 국민연금이 보유한 나머지 국내 기업들 경영권 방어와 기업 경쟁력 훼손에 영향을 미친다. /사진=미디어펜

삼성그룹의 승계와 각 이해당사자 간의 희비가 엇갈릴 삼성물산 임시 주총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의사결정이 분산되어 있는 외국계자본와 달리 가장 큰 캐스팅보트를 쥔 대주주는 단연 국민연금이었다. 국민연금이 엘리엇과 싸우던 삼성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무얼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성사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합병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난맥 속에 빠진다. 국민연금의 선택이 삼성그룹 계열사 전체의 경영환경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삼성의 77년 경영 역사…세계 최고로 거듭난 한국 대표기업

삼성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위상부터 살펴보자. 삼성전자 단일기업의 고용임직원만 해도 10만 명이며, 삼성그룹 전체와 관련 협력업체 1320개 기업을 더하면 삼성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경제효과는 추산하기 힘들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한 삼성그룹의 총 매출은 310조, 영업이익 38조, 자산 총액 331조 등 국내 최대 규모와 수익을 자랑한다. 삼성은 명실공히 한국 대표기업이다.

1938년 삼성상회가 설립된지 77년, 삼성은 이병철과 이건희,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오너경영을 통해 글로벌 톱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브랜드 순위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코카콜라 등과 동등하게) 6~8위를 넘나든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직원관리와 시스템 구축을 통해 국내 제 1의 삼성 DNA를 만들어냈다면, 이건희 회장은 제조업에서의 일대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통해 세계 최고의 삼성그룹을 구축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선대의 뜻을 이어 삼성이 IT 융복합 시대의 글로벌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자 힘쓰고 있다. 현재 삼성은 세계 굴지의 MBA스쿨 경영사례에서 '오너경영 및 기업가정신의 교과서'로 손꼽힌다.

국민연금이 삼성의 손을 들어준 이유

(1) 삼성 고유의 기업 경쟁력 훼손

엘리엇이 임시주총에서 삼성물산 제일모직의 합병을 막는데 성공하고, 향후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해 보자.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1%를 지렛대로 삼성전자 및 삼성그룹 전체로 경영을 간섭하리라는 우려가 상존한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한지 100일 밖에 되지 않는 벌처펀드다. 5년 10년을 내다보는 경영전략, 장기투자, R&D와 고용에는 신경 쓰지 않을뿐더러 단기간에 보유 주식의 주가를 띄우려는 투자회사다. 기업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엘리엇이 삼성그룹의 사업전략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면, 지난 77년간 삼성이 쌓아왔던 기업 경쟁력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싸고 삼성과 엘리엇 간의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의 행보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11.61% 지분율로 삼성물산의 제 2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쥔 형국에서 국민연금은 삼성을 선택했다. 17일 열릴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보통주 지분은 11.21%다. /사진=미디어펜

(2) 국민연금 국내 포트폴리오의 중장기 수익률 제고

국민연금은 1차적으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이는 단기를 포함한 중장기적 시점에서 요구되는 절대과제다. 중장기 수익률 제고는 국민재산 수탁자로서 국민연금의 의무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이번 선택이 삼성물산 제일모직 건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선택은 국민연금이 보유한 나머지 국내 기업들 경영권 방어와 기업 경쟁력 훼손에 영향을 미친다.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국내 기업은 최소 60여 곳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을 보유해서 대주주로 이름을 올린 국내 주요 기업은 LG상사, 현대글로비스, 한화, CJ제일제당, 한라홀딩스 등이다. 이들 모두 현대, LG, CJ, 한화 등 대기업집단 지배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국민연금이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어서 삼성그룹의 경영권 및 기업경쟁력이 해외 투기자본에 의해 훼손된다면, 현대 LG CJ 한화 모두 삼성과 마찬가지의 사태를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집단들이 경영권 방어에 악전고투하다 보면 기업의 투자 여력이 그만큼 줄어든다.

국민연금의 과제는 국민재산 수탁자로서 중장기적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국내 포트폴리오의 중장기 수익률을 제고하려면 국내 대기업집단의 경영권과 기업 경쟁력, 건실한 투자환경이 확보되어야 한다. 국민연금이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적극 나서야 할 명분은 갖춰진 셈이다.

   
▲ 국제 금융계에서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헤지펀드의 수장으로 악명이 높은 폴 싱어 엘리엇 매니지먼트 회장./사진=YTN 캡처

(3) 공공성과 주가 수익률 극대화, 두 마리 토끼 잡기

삼성그룹과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국내 경제에 기여한 바를 비교하면 어떨까.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공공성 측면, 보이지 않는 효과 모두를 고려하면 국민연금이 지지해야 할 곳이 누구인지 명확해진다. 77년간 국민경제 기업경제의 축으로 자리매김해온 삼성이다. 현재 글로벌 톱기업으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거듭난 삼성의 경영노선과 기업경쟁력은 물론이거니와, 사회공헌의 규모와 수준도 국내 최고․최대를 자랑한다.

현재 국민연금 입장에서 주가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도 삼성의 손을 들어줘야 잡을 수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발표 이후 양사 모두 주가가 오르고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제 2의 대주주이면서 합병 대상인 제일모직의 주요 주주(지분 5.04%)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이 무산되면 가장 큰 주식 평가손실을 보는 쪽은 국민연금이다.

단기투기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된 한국기업
경영권 보호장치 구축에 앞서 국내 기관투자가 역할 중요

이번 삼성-엘리엇 사태는 삼성, 현대, LG를 포함한 국내대기업 집단 모두의 경영권이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 국내대기업 집단 계열사 221개 상장사에서, 오너일가의 지분은 평균 4.9%에 불과하다. 계열사 지분을 모두 합쳐도 40%에 미치지 못한다.

오너경영으로 국내경제를 선도해온 대기업들이다. 차등의결권주나 황금주 같은 경영권 보호장치가 전무한 상황에서 대기업 모두는 수십년 간 고군분투해서 여기까지 걸어왔다. 박정희 정부 시절 일어났던 ‘사채 일소’ 및 ‘주식시장 전면개방’으로 인해, 국내대기업 모두는 지분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 삼성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상대로 한 법정 다툼에서 연달아 승리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용대 민사수석부장)가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 1일 기각한데 이어,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금지' 가처분 신청을 7일 기각했다. 이로써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은 법적으로 아무런 걸림돌이 없게 되었다.

이제는 그러한 구조적 한계를 딛고 국내기업 모두에게 제대로 된 경영권 보호장치를 허해야 한다. 현재 일어난 삼성-엘리엇 사태는 그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에 앞서 국민연금 및 국내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경제에 직결되는 국내 기관투자가일수록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는 답이 아니다. 20년 이상의 중장기 수익성 제고라는 시각에서 국내기업들이 미래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국민연금이 삼성을 선택할 명분과 이유는 충분했고, 국민연금은 이를 실행에 옮겼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