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세대의 사업보국이념 규명한 김용삼의 책, 더 각광받아야

   
▲ 조우석 문화평론가
재계인사 광복절 특사 넘어 ‘경제하려는 의지’에 불 당길 때

저널리스트 김용삼이 쓴 훌륭한 신간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정신>(프리이코노미스쿨 펴냄)에 등장하는 재계인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박흥식이다. 일제시대 유행어대로 제조업은 경성방직이고, 유통엔 화신인데, 그걸 이끌었던 핵심 인물이 아니던가.

실은 백화점왕 박흥식을 친일파라고 하는 당신의 통념부터 일단 내려놓는 게 좋다. 친일파 딱지는 해방 후 좌익 노동자단체인 전평의 못된 선동에서 붙여졌다. 그들은 박흥식이 경영하던 종로 화신백화점 쇼윈도에 “반민족자요 전범(戰犯)인 박흥식을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하라”는 벽보를 붙였고, 전재산을 내놓으라고 협박까지 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좌익의 짓거리는 똑 같은 법인데, 그런 선동과 여론을 피할 수 없어 박흥식이 반민특위에 회부됐으나 결국 무죄선고를 받았다. 논란의 여지가 좀 있겠지만, 박흥식은 내 눈으로 보아 뛰어난 기업인이고, 애국자가 맞다.

‘쉰틀러 리스트’빰치는 박흥식의 2800명 인재 살리기 작전

   
▲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 김용삼 저
하나만 봐도 그렇다. 일제 말기 일본 총독부의 등쌀에 등 떠밀려 비행기공장을 차려야 했던 그는 무려 2800명의 젊은이를 긴급채용 방식으로 입사시키는 결단을 했다. 경기도 안양의 조선비행기공업이 그 현장이었는데, 주로 독립운동가의 가족을 우대해 뽑았고, 그들을 일본 나고야나 만주 봉천에 기술연수를 보냈다.

놀라워라. 그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징용 면제 혜택을 주기 위한 조치였다. 내 상상력으론 영화 ‘쉰틀러 리스트’이상 가는 소재인데, 그런 멀쩡한 사람을 친일파로 몰아 때리는 게 과연 정상일까? 비행기공장 차렸다는 게 가장 큰 반민특위 회부 사유였으니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일제 말 도산 안창호의 병보석을 성사시키고 출감 후 생활비 전액을 부담한 것도 박흥식이었다. 훗날 그는 친일파 비난에 이렇게 해명했다.

“내가 친일파라는 건 잘못된 견해다. 하지만 격렬하게 배일(排日)이나 항일을 한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내 나름의 소신이 있어서 오로지 사업에 열중했을 뿐이다.”

놀라운 건 박흥식의 재기(再起)다. 그는 1950년대 말 원전(原電) 건설을 정부에 제안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실제로 박정희 시절 원전 1,2호 기를 건설할 때인 1960년대 말에도 박흥식이 움직였다. 또 있다. 그가 없었더라면, 가수 싸이의 노래‘강남 스타일’도 없을 뻔했다. 즉 강남 개발의 아이디어를 처음에 냈던 사람도 박흥식이다.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에 따르면 1961년 그러니까 군부 쿠데타 직후 그는 6대 국가발전사업계획을 당국에 제출한다. 사업계획의 맨 앞에 서울인구 분산을 위해 20만 가구 입주시키는 영동지구 개발사업(후에 강남개발사업으로 현실화 됨)이 올라와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기업”이란 확고한 신념

실은 박흥식에게만 끌리는 아니라 1930년대 골드러시의 주인공인 광산왕 최창학도 매력적이다. 백범 김구가 묵던 경교장은 그가 제공한 집이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부친인 백낙승에도 관심이 간다. 그는 해방 직후 국내 산업이 붕괴된 상황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올랐던 이른바 마카오무역에 참여해 돈을 모았고, 훗날 태창직물을 이끌었다.

삼성물산 이병철, 천우사의 전택보 등도 모두 마카오무역에 손대서 재미를 봤던 남다른 사업 감각을 가졌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이렇게 무역으로 쌓은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해 근대기업으로 발돋움하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기업가 군단이 만들어졌던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미 군정청이 불하했던 귀속재산을 토대로 일궈낸 기업도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불하 받은 조선직물을 모태로 탄생한 쌍룡그룹, 수원 선경직물을 물려받아 오늘의 SK그룹, 삿포로맥주를 불하받아 세운 조선맥주(하이트맥주)…. 반세기를 뛰어넘는 지금 그들의 성공이 어디 그냥 가능했을까?

눈먼 재산을 토대로 한 손쉬운 성공이라는 시각 자체가 병든 논리다. 지난 번 글처럼 그들은 박정희 정부의 개발 드라이브에 참여해 진짜배기 주인공으로 활약했으니 이런 드라마가 없고, 한강의 기적을 쓴 주인공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런 스토리를 훌륭하게 담아낸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정신>은 분명 상찬(賞讚)의 대상이다. 대한민국 산업사의 100여 년 흐름을 긍정의 시선으로 다루는 방식도 균형 잡혔지만, 지금 우리의 당면과제인 한국경제의 재도약에도 많은 암시를 준다.

지난 50년 한국은 대성공을 거뒀지만, 왜 지금 성장에 목마른 국가로 추락하는가? 우리 기업들은 매년 400억 달러 정도를 해외에 투자하는데, 이걸 국내로 돌릴 경우 3%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 매년 40만 개 일자리도 늘어난다. 그런데도 왜 이걸 못하는가?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라며 “국가발전과 국민대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사면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총수가 옥중경영을 펼치고 있는 SK·CJ 등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반기업심리 부추기는 병든 독서시장부터 정화해야

저자는 그걸 개발연대의 성공 스토리를 잊은 채 경제민주화 타령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데, 그게 맞는 소리다. 경제민주화는 관치경제를 극복하는 등 의미가 아주 없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평등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뜻하고 ‘다 함께 못사는 앉은뱅이 사회’즉 저성장 국가를 만들었다.

이걸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기업가정신 되살리기밖에 길이 없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한강의 기적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정신이 활발하던 나라로 꼽히던 우리의 저력을 믿어보자는 제안이다. 특히 창업세대의 사업보국 이념이야말로 위대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8.15광복절 특사 구상을 밝혔다. 형기의 절반을 넘긴 SK 최태원 회장, 최채원 부회장을 포함해 집행유예가 확정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거론된다는데 다 좋은 얘기다. 이왕이면 이걸 계기로 재계의 ‘경제하려는 의지’ 전체를 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상식이지만, 지금 독서시장은 엉망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대기업을 저주하고, 신자유주의라면 부르르 떨며 서울시장 박원순 류의 협동조합을 찬양하는 책으로 가득한다. 이런 불량도서의 더미에서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정신>같은 양질의 책이 선전하길 나는 기대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밀리언셀러? 이 책이 그렇게 될 자격은 차고도 넘친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