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개국 회의 발언 토대로 한 ARF 의장성명 수일 내 발표 예상
북, 5년째 외무상 아닌 대사 참석…외교전은 커녕 입지 좁아져
작년 캄보디아 ARF ‘CVID’ 포함…아세안+3·EAS서 “외교 노력”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남북한이 유일하게 함께 참석하는 역내 안보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결과 의장성명에 북한의 도발 규탄 내용이 담길지 주목된다. 13일 ARF 폐막 이후 올해 의장국인 인도네시아는 17일 현재에도 각국과 의장성명 문안을 협의 중으로 수일 내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 2000년 ARF에 공식 가입한 북한은 한때 ARF를 자국의 외교적 입장을 설파하는 무대로 삼기도 했으나 이번엔 외교수장 대신 안광일 주아세안대표부 대사가 참석했다. 특히 북한은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열리던 12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벌여 참가국들의 반발을 샀다. 

   
▲ 안광일 북한 주인도네시아 대사 겸 주아세안 대사가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옆자리에 착석하고 있다. 2023.7.14./사진=연합뉴스

특히 올해 국내정치 상황으로 불참한 미얀마를 제외한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9개국이 북한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아세안 주도의 회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뤄진 이번 행동에 대해 깊이 경악했다”면서 “북한이 긴장완화를 위한 행동을 취하고 비핵화된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 실현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포함해 관련 당사자간 평화적 대화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아세안 10개국에 남한과 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과 주변국이 모두 참여한 이번 ARF에서 북한의 입지는 더욱 줄어든 모양새로 나타났다. 북한의 안 대사는 대화상대 없이 혼자 서성이거나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대사를 겸직하고 있는 안 대사는 13일 대사급 인사끼리 있는 공간에서도 10여분만에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이는 200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ARF에서 남북이 각각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과 ‘10.4 남북정상선언’을 의장성명에 반영하기 위해 외교전을 벌였던 것과 크게 상반된다. 2016년 ARF에선 리용호 당시 북한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연 일도 있다. 또 2018년엔 리 외무상이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다가가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ARF를 외교무대로 삼아 국가이미지 변화를 꾀한 일도 있다.

   
▲ 박진 외교부 장관,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아세안 외교수장들이 1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기념촬영하고있다. 2023.7.13./사진=외교부

다만 이번에 남북한은 회의석상에서 설전을 주고받았다. 안 대사는 “한미연합훈련으로 인해 북한이 자위적 방어 조치를 할 수밖에 없었고, 미사일 발사가 주변 나라들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그는 “최근 미군 정찰기가 북한의 수역 가까이 왔다. 문제의 원인은 북한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박진 장관은 “ICBM을 발사해놓고 어떻게 주변국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것이라는 말을 하냐”면서 “북한의 주장은 기관총을 마구 쏜 뒤 안 맞았으니까 당신은 안전하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응수했다. 박 장관은 또 “한반도 긴장고조의 원인이 한미훈련이라는 주장은 적반하장이자 ‘마차를 말 앞에 둔다’는 말처럼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그동안 ARF에서 한반도 문제에서 다소 양비론적인 입장을 취하던 아세안 국가들이 북한에 대해 한층 냉랭해진 분위기를 고려해볼 때 이번 의장성명에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담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캄보디아 ARF에서도 의장성명에 최종 CVID 문구가 포함됐었다. 

   
▲ 박진 외교부 장관이 1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7.13./사진=외교부

1961년 북한과 수교해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가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는 이번에 북한의 최선희 외무상을 참석시키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최 외무상의 참여는커녕 북한이 ICBM을 쏘자 크게 실망했다는 후일담도 전해졌다. 다만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새 결의안 채택을 못하고 번번이 ‘빈손’으로 끝났던 것처럼 중·러의 영향력이 관건이다.
   
한편, 북한이 참여하지 않는 협의체인 아세안+3(한중일) 및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올해 의장성명엔 “최근 북한의 ICBM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급증하면서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면서 “모든 관련 당사자가 평화적 대화에 도움이 되는 환경조성 등 외교적 노력을 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