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쟁 잠시 멈추고 수해 지원 한 목소리 "재난지역 선포 필요"
재난나자 여야 앞다퉈 현장으로..."얼굴 도장 찍으러? 민폐" 비판도
[미디어펜=이희연 기자]후쿠시마 처리수·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등으로 매일 입씨름을 벌이던 여야가 오랜만에 정쟁을 멈추고 민생 챙기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며칠째 이어진 기록적인 폭우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인명·재산 피해가 잇따르자 여야가 앞다퉈 수해 현장 챙기기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사고 때만 되면 현장에 나타나 민생을 외치는 정치권의 모습에 진정성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6박 8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어제(16일)귀국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7일 오전 예정됐던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하고 침수 피해를 입은 충남 공주시 옥룡동 빌라, 공주 이인면 만수리, 청양군 청남면 인양리를 찾아 주민들을 위로하고 수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민방위복을 입은 김 대표는 이날 30분가량 현장을 둘러보며 "얼마나 놀라셨느냐. 불이 오면 재가 남는다는데 물이 오면 남는 게 없다. 수해를 입으면 기가 막힌다"라고 위로했다.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해 잘 지원해달라'는 피해 주민의 요청에는 "제가 아침에 대통령을 만나서 이야기했는데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지시했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를 비롯한 당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수해를 입은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일대를 찾아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2023.7.17./사진=연합뉴스

김 대표에 앞서 지난 16일 충북 괴산 수해 현장을 방문한 윤재옥 원내대표도 "괴산을 신속히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는 송인헌 괴산군수의 요청에 "당연한 말"이라고 답하며 "정부 차원에서 검토해서 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윤 원내대표는 또, 이날 소속 의원들에게 해외출장 자제를 당부하며 언행에도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김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오후 최소 13명이 숨진 충북 오송 지하차도 침수 현장도 방문한다. 현재까지의 피해 현황을 둘러본 뒤 희생자들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할 예정이다. 

또한 당 차원에서 수해 복구를 위한 봉사 활동도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수해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17일부터 시·도당별 '재해대책 및 복구지원 상황실'을 가동하고 전국 당원을 대상으로 긴급피해복구 자원봉사 활동을 실시한다. 필요할 경우 중앙당이 당력을 통합해 현장 지원에 즉각 투입할 수 있도록 시·도당별로 가용 인력과 자원도 상시 점검할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수해가 확산함에 따라 당분간 수해 피해 복구에 주력할 방침이다. 당 지도부는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한데 이어 오후 예정된 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과 윤리위원회 회의도 연기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비롯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의 법안심사 소위 등도 모두 미뤘다. 

민주당도 잠시 여당에 대한 공세를 멈추고 피해 지원에 한목소리를 냈다. 이재명 대표는 16일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청주 오송 궁평 지하차도 현장을 찾아 "참 안타까운 현장"이라며 "피해자분들 명복을 빌고 애통하실 우리 유가족들에게도 위로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복구, 보상 문제 때문에 긴급하게 재난지역 선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최대한 서둘러 달라"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막을 수 있던 인재를 결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추가적인 인명 피해 방지를 위해 행정력을 총동원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새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직접 주재한 자리에서 "지금의 상황을 모두 엄중하게 인식하고,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라고 지시했다. 또한 "복구 작업과 재난 피해 지원 역시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라며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정책 수단을 모두 동원해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평소 민생은 안중에 없고 정쟁만 벌이던 정치권이 사고가 났다 하면 그제서야 앞다퉈 현장으로 몰려가는 모습에 "얼굴 도장 찍기 방문은 민폐 아닌가"라며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수해 복구로 바쁜 공무원들에게 오히려 방해나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6일 폭우로 침수돼 인명 피해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궁평 제2지하차도를 방문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7.16./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17일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한심스러워 좌절럽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작년 7~8월에 서울과 포항에서 홍수 났을 때에도 참사가 있었다. 아마 오늘 했던 얘기 그대로 똑같이 했을 거다. 그런데 1년 동안 제도적으로 나아진 게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한번 갔다 왔어요'라는 증거 사진 남겨 놓는 이벤트성 사진찍기나 생색 내기로 끝나지 말고 제발 법과 제도와 예산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켰으면 좋겠다"라며 "복구 예산이 80%이고 예방 예산이 20%정도 되는데 이제 그걸 좀 바꿀 때가 됐다. 제도적인 개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계속된 집중 호우로 전국에서 사망·실종·부상자 등 인명 피해가 80명을 넘었다. 산사태와 침수 등의 피해로 대피한 주민도 1만명이 넘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17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사망자는 전날 오후 11시보다 4명이 늘어난 40명으로 집계됐다. 충북 오송 궁평지하차도에서 사망자 시신 4구가 추가 수습되면서 사고 사망자 수가 13명으로 늘어났다.
[미디어펜=이희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