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불이익이 아닌 고용 안정·기업 존속 등 현대산업구조에 맞춰야

   
▲ 이동응 경총 전무
노동법은 근로자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개별적 근로관계법과 노사의 협약자치를 통해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집단적 노사관계법, 이 두 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법률이 노조법이라면 전자는 근로기준법으로 대표된다.

그런데 일본에는 우리의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노동기준법 외에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또 하나의 법률이 있다. 노동계약법이다.

본래 근로기준법은 산업혁명 후 근로자들이 공장노동을 하며 장시간 근로와 낮은 임금에 따른 생활고를 겪자 국가가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제정된 법이다. 국가가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하고, 사용자가 위반할 경우 벌칙 같은 제재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취업형태가 다양화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이 공장 시대의 법이 적합하지 않다. 예를 들면, 일의 성과나 실적으로 보수를 책정하는 고소득 근로자에게는 현재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근로시간 규제가 맞지 않다.

일본도 이 같은 부침을 겪었다. 1990년대 버블경제가 붕괴되고 불황이 지속되면서 전통적인 장기고용관행과 연공급 체계가 무너졌다. 이에 따라 노동분쟁이 급증하였다. 처음에는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했으나 사안마다 판례가 달라 실무상 혼란이 커지면서 명문의 법규범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게 되었다.

또 하나는 고용관계에서 유연성 확대의 필요성이다. 근로기준법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개입과 감독이 수반된다. 사업장 근로감독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노사 자치의 영역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근로계약은 본질적으로 당사자 합의에 따른 민사적인 영역이다. 즉, 형사제재나 행정감독의 대상이 아니라면 좀 더 당사자 의도에 맞는 유연한 해석과 적용이 가능하다. 이러한 필요성을 감안해 일본에서는 2007년 노동계약법이 제정되어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일본 노동계약법에서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취업규칙이라고 하여 복무나 보수, 인사 등과 관련하여 사용자가 임의로 작성할 수 있는 기업 내 규정이 있다. 그러나 다수의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규정이므로 작성과 개정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의사가 반영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기존 근로조건을 불이익하게 바꾸는 경우에는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제도이다.

   
▲ 고령자고용법에 따라 정년을 연장한 기업에서 임금피크제 도입과 임금체계 개편을 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은 기업의 비용부담을 가중시켜 경영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뿐 아니라 일자리의 존속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불이익변경 제도가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경직되게 운용되다보니 오히려 취업규칙을 시대와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신속하고 유연하게 운영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장애요인이 되었다. 이를 감안하여 일본 노동계약법 제10조에서는 취업규칙 변경이 합리성이 있다면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이미 오래 전부터 대법원은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에도 그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유효하다는 판례 법리를 내놓았다. 이러한 법리는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취업규칙 변경제도의 엄격성은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령자고용법은 2016년부터 정년 60세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 후속조치로 반드시 필요한 임금체계 개편과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는 온전히 개별 기업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결국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개정을 통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임금피크제 도입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큰 틀에서 정리하기 위해 지난 5월 노동연구원이 공청회를 계획했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공청회를 물리적으로 저지하며 무산되고 말았다.

정년을 연장한 기업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은 근로자들에게 불이익한 조치라고 보기 어렵다. 임금인상이 중단되는 굴절점을 어느 시점으로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재직기간이 늘어나고 생애소득이 증가하도록 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불이익한 변경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한 발 양보해서 설사 불이익한 변경이라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 법리에 따르면 그러한 취업규칙 변경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강행법규에 따라 고용기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는 기업이 근로자의 성과에 따라 급여를 조정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을 개정하는 것은 기업 존속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고령자고용법에 따라 정년을 연장한 기업에서 임금피크제 도입과 임금체계 개편을 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은 기업의 비용부담을 가중시켜 경영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뿐 아니라 일자리의 존속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위태로운 상황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자가 취업규칙 등 임금규정을 바꾸었다면 비록 노동조합이나 과반수 근로자들이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불필요한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법률로 명확히 규정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을 경우 동의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불이익변경인지 여부도 단편적으로 당장의 변화만 보지 말고 근로자의 생애소득과 근로제공 가능 기간 등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하여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근로계약법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즉, 우리도 일본처럼 개별적 근로관계를 근로기준법과 근로계약법으로 규율하는 이중구조 방식을 차용해야 한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고용관계는 계속적 근로관계이므로 근로조건의 변경과 조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사적 계약인 근로계약의 본질상, 국가의 획일적 규제로 일관하기 보다는 규율방식을 다양화하여 유연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분쟁이 많이 일어나는 해고나 징계 분야는 최저기준의 문제가 아니므로 근로기준법보다는 근로계약법을 기초로 당사자 의사에 맞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동법체계를 현대 산업구조에 맞춰나가는 대승적 결단이 필요할 때다. /이동응 경총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