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자국 산업 보호' 리쇼어링 이어져
국내 기업, 리쇼어링 확장세…지원 정책 '옥의 티'
[미디어펜=조성준 기자]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주요국이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을 적극 추진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들도 국내 복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에 진출해 있는 대기업들이 리쇼어링을 검토하고 있다. 이유는 미국과 중국의 자국 중심의 제조업 지원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은 각국의 정책에 따라 해외에 진출했지만, 현지 기업과 차별된 대우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이념 싸움 때문에 중국 현지 공장들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사태도 맞았다.

재계에서는 국가 경쟁력 강화와 내수 활성화, 고용창출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리쇼어링 토양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정책 지원을 뒷받침해줘야한다는 입장이다.

국내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촉발된 미-중 무역갈등으로 사업에 큰 고충을 겪고 있다. G2 국가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2020년대 들어 신보호무역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확대됐다. 

미국은 탈중국(De-Coupling) 기조 속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작업에 속도를 냈다. 자국 산업에 유리한 무역 정책을 펼치는가 하면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에게도 그 질서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에 중국도 자국 첨단 산업을 집중 육성하면서 미국이 개입할 수 없는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 지난 5월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한 모습. 미국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리쇼어링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사진=연합뉴스


리쇼어링도 이 같은 배경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수요·공급 변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에 따른 에너지 가격 변동 리스크 등이 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귀환을 검토하게 하고 있다.


◇ 美, 법인세 낮추고 각종 지원…日·대만 첨단 기업 속속 복귀

미국은 리쇼어링의 대표 주자다. 우선 미국은 칩스법(Chips-Act)으로 반도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전기차·2차 전지에 조건을 걸어 자국의 미래 핵심 산업 보호에 사활을 걸었다.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오바마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38%에서 28%로 낮추고, 유턴기업의 공장 이전 비용을 20% 지원했다. 

이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21%로 다시 한 번 낮추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물량을 국내로 반입하는 경우도 리쇼어링으로 인정하는 등의 정책을 폈다.

바이든 정부 들어서는 첨단산업 분야 리쇼어링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7월 맥케이 미 상무부 칩스 프로그램 오피스(CPO) 국장은 “미 당국이 올해 가을 3억 달러(약 3900억 원) 이하 소규모 투자에 대한 구체적 지원책 발표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규모 리쇼어링 업체도 대규모 투자와 같이 투자금의 5%~15% 정도를 지원금으로 받을 수 있게 되며, 이미 400곳이 넘는 기업이 반도체 지원금을 신청한 상태다.

리쇼어링은 고용 증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리쇼어링과 외국인 직접투자(FDI)에 따른 제조업 고용은 전년 대비 53% 증가한 36만4904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과 대만도 리쇼어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5월 반도체나 희귀금속 등 중요 물자 공급망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첨단산업군의 리쇼어링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다. 예를 들어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파워반도체 양산을 위해 2014년 폐쇄한 야마나시현의 고후 공장에 약 900억 엔을 투자해 내년부터 공정에 들어간다.

대만의 PSMC는 일본의 금융지주회사인 SBI홀딩스와 함께 반도체 생산 거점을 일본에 마련해 2년 내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들 국가의 리쇼어링 정책이 활성화되는 주된 이유는 정책 지원에 있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공장·연구개발시설 보조금으로 520억 달러를 지급하고 있으며, 일본은 자국 내 반도체·첨단제품 생산 업체 지원에 약 2조 엔을 책정한 상태다.

대만은 리쇼어링 기업에 5000억 대만달러 규모의 국가발전기금을 활용, 대출을 지원하고 외국인 근로자 고용비율을 최대 40%까지 허용한다. 


◇ 韓기업 절반 이상 유턴 고려…빈약한 정책 지원 개선돼야

우리나라 기업들도 정책적 뒷받침만 되면 리쇼어링 행렬이 줄을 이을 것으로 파악된다. 미중 갈등 속에 사업 변수가 많아졌고, 첨단기술 안보 차원에서도 국내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상당수 국내 기업들은 리쇼어링 의향을 보이고 있다.

   
▲ 우리나라 기업들도 최근 리쇼어링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수출 컨테이너 항만 모습./사진=부산항만공사 제공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500대 기업 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들은 '리쇼어링을 검토 중'(27.8%)이거나 '향후 검토할 수 있다'(29.2%)라고 답변했다. 주요 기업 중 무려 57%가 리쇼어링을 염두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리쇼어링을 택한 기업은 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복귀 기업(‘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상 요건을 충족, 정부로부터 지원 대상 국내 복귀 기업 신청확인서를 받은 기업)은 모두 24(중견·대기업 9개 사)곳으로, 2014년 15곳보다 확연히 늘었다. 2021년 26곳이 복귀하는 등 최근 국내 리쇼어링은 늘고 있는 추세다.

올해 국내 복귀 기업 규모도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거나 소폭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까지 국내 복귀를 확인받은 기업은 모두 12곳이다.

리쇼어링은 고용 창출로 이어진다. 전경련 분석에 따르면 해외에서 철수를 계획하는 국내 제조기업이 복귀하면 8만5785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될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역시 리쇼어링 촉진 정책을 진행 중이지만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리쇼어링 기업에게 법인세 감면 혜택을 현행 7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고, 첨단·공급망 핵심 업종 해외 사업장 축소 의무 면제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투자·고용 유지 등 지원조건이 까다로워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이 재도약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기려면 해외진출기업의 국내 복귀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코로나 동안 기업들이 중국의 경제봉쇄 등을 겪으며 안정적인 생산거점 확보에 나서고 있다"면서 "아직 국내의 강도 높은 수도권 규제와 높은 법인세 등은 리쇼어링의 높은 허들"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 리쇼어링도 해외기업 투자 유치도 결국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중요하다"며 "파편적인 정책보다 한국만의 압도적인 장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자국 중심 제조업 지원은 우리 정부도 본받아야 한다"며 "특히 주요 기업이 중국 등에서 현지 공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다면, 국내 기업들의 리쇼어링이 더욱 활발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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