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위 정관 개정, 설립목적 자율성 스스로 '부정'…인신협·한국기자협회, 반대 성명
광고주협회 '언론의 독립성' 보장에 물음표…총회 지배구조 재구축해야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2012년 12월 출범한 인터넷신문위원회(인신위)가 지난 7일 임시총회에서 한국인터넷신문협회-한국광고주협회-인터넷기업협회 추천 인사가 가나다 순으로 임기 3년 단임으로 인터넷신문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임기제를 통과시키면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임시총회의 정관 개정으로 인터넷신문위원장 임기는 기존 2년 연임제에서 3년 단임으로 바뀌게 됐다. 더 핵심적인 내용은 이 위원장 추천을 주주 순번제로 바꿔, 인신위원장을 주요 세 주주인 광고주협회-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인터넷신문협회(인신협)가 번갈아가면서 선정하게 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인신위는 2012년 당시부터 ▲'인터넷신문 기사 및 광고에 대한 자율심의', ▲'자율규제를 통한 인터넷신문의 사회적 책임 강화와 공신력 제고', ▲'인터넷신문 이용자 편익 및 인터넷신문산업의 지속발전에 기여함'을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다.

민간 자율심의기구인 인신위는 연간 7억 원이 넘는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고 있기도 하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취재보도 윤리 및 공적 책임을 실현하기 위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정관 개정은 설립목적상에 명시된 '자율성'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또한 이번 정관 개정은 인신위의 총회 구성을 인신협-인기협-광고주협회로 명시하면서, 인신위의 의사결정을 기업과 광고주 간 협의(2 대 1)를 통해 전부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수결이라는 이름으로 절차상 문제가 없게 한 것이다.

인터넷신문에 대한 자율심의기구인 인신위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버리고, 광고주와 포털에게 인터넷신문 콘텐츠 심의의 주도권을 내어준 격이다.

원래 인신위는 2012년 12월 26일 발기인 총회를 개최해 공식 출범한 후, 지속적으로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 2대 위원장(2014~2021년) 방재홍 서울미디어그룹 회장(오른쪽)과 3대 위원장(2021년~) 민병호 데일리안 대표이사(왼쪽)가 함께 2021년 5월 26일 인터넷신문위원회 위원장 이취임식에서 기념 촬영을 갖고 있다. /사진=인터넷신문위원회 제공


2012년 12월 3일 인터넷신문광고 자율규약을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2015년 자율규제 실효성 제고 실천방안 마련 및 자율심의 개선 추진 공청회 개최, 2016년 자율심의 사례집 발간 및 자율심의 세미나 개최, 2018년 한국인터넷윤리학회와 업무협약 체결, 2019년 자율심의 발전방안 워크숍 개최 및 한국광고주협회와 업무협약 체결, 2020년 자율심의 발전방안 워크숍 개최, 2021년 자율심의 윤리교육 연중 진행 등이다.

하지만 이번 정관 개정으로 인신위는 지금껏 쌓아왔던 자율성과 독립성, 공정성과 책임감이라는 가치를 잃게 됐다. 인신위 총회로의 광고주 및 포털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인신위원장 선정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정관 개정에 가장 크게 반발하고 나선 곳은 바로 인터넷신문협회다. 기사의 자율심의를 위한 기구를 (기사를 생산하는 주체가 아닌) 외부에서 장악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한국일보·한겨레·경향·서울신문·문화일보 등 기성 언론의 기사·광고에 대해, 광고주인 대기업들과 포털 등 인터넷기업들이 추천한 인사들이 심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론 콘텐츠의 생명은 독립성, 공정성, 팩트 추구다. 인신위의 이번 정관 개정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셈으로 전락했다.

당사자인 한국인터넷신문협회(인신협)은 지난 16일 공식 성명을 내고 인신위의 이번 정관 개정에 대해 정면으로 규탄하고 나섰다.

인신협은 성명에서 "인터넷신문협회는 광고주와 포털이 장악한 인신위에는 참여할 명분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인신위의 정상화를 강력히 촉구한다"며 "인터넷신문협회는 언론의 자유와 자율을 지키려는 우리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인신협은 "인신위는 그동안 위원장을 맡아왔던 인터넷신문협회 추천인사의 신임 위원장 선출과 거버넌스 발전 방안을 별도로 논의하자는 제안은 부결시켰다"며 "이는 인터넷 신문 기사를 심사하는 인신위를 광고주들과 포털들이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신위를 광고주와 포털이 장악한다면, 언론 길들이기와 언론통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며 "광고주와 포털이 감시 심사하는 매체의 취재보도를 어떤 독자들이 믿을 수 있겠는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터넷 신문의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언론의 중추를 맡고 있는 한국기자협회 또한 18일 공식 성명을 통해 "인터넷신문위원회는 864개 인터넷 언론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인터넷신문 자율심의기구로 그동안 그 취지에 맞게 인터넷신문협회의 추천 인사가 위원장을 맡아왔다"며 "이 같은 기구에 광고주협회와 인터넷기업협회가 위원장을 맡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성명에서 "인터넷신문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신문윤리위원회에서 기성 언론들의 기사를 광고주와 기업들이 심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며 "언론자유 침해는 불보듯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또한 "언론진흥재단이 인터넷신문위원회에 한 해 7억 여원이 넘는 언론진흥기금을 지원하는 것은 언론 스스로 자율적인 관리와 감독을 강화하고 공적 책임을 실현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함이지, 광고주와 포털기업에게 언론자유 침해 수단을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서 "광고주협회와 인터넷기업협회가 장악한 인터넷신문위원회는 기구의 설립 취지나 정체성과 전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건강한 언론 생태계 발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기에 한국기자협회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신협 관계자는 본보의 취재에 "인신위의 거버넌스 자체가 (자율심의기구라는) 설립 목적과 관련 없는 방식으로 가고 있어서 우려하는 것"이라며 "인신위 자체에서 추천하는 식으로 바뀌어서 지배구조가 엉망이 되었다가, 이를 개정하자고 하니깐 3단체가 번갈아가면서 맡자는 식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율심의기구의 목적과 맞지 않게 잘못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지배구조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 인신위의 최초 정관이 가장 현실성 있고 단체의 설립 목적에 맞다고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인신협 관계자는 "자율규제기구는 내부적으로 언론 생태계를 스스로 자정하기 위한 제도"라며 "포털 및 광고주는 기사를 생산하는 주체가 아니라 외부단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이 언론이 생산하는 콘텐츠를 심의하겠다는건 자율심의가 아니며 인신위가 지원받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인신위가 스스로 일으킨 '정관 개정'이라는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앞으로가 더 주목된다.

인신협의 최종 제안을 인신위가 걷어차 버린다면, 인신협의 인신위 탈퇴 또는 법적분쟁이라는 파국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