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신고에만 의존…제대로 된 관리 ·감독 부재
3번 이상 위반해도 과태료 처분뿐… "억지력 없어"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가 지난해 8월 18일 50인 이상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에 이어 지난 18일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이를 확대했다. 근로자의 권리를 위한 정책이라는 점은 높이 살 만하지만, 강력한 관리감독 체계의 부재로 인해 '탁상공론식' 정책 시행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고용노동부 정부세종청사./사진=미디어펜

현재 모든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제128조의2제1항'에 따라 사업 종류와 규모 관계 없이 휴게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용부는 '휴게시설 설치·관리 기준' 시행규칙을 마련하고 '알기 쉬운 휴게시설 A to Z'라는 설치 가이드라인을 제작·배포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업주는 휴게시설 설치 시 교대근무와 휴식형태, 휴식주기, 동시 사용 인원 등 사업장 특성을 고려해 근로자대표와 협의해 최소면적을 정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주가 해당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다. 사업주가 동시 사용 인원 등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서 규정하고 있는 최소면적인 6㎡로 휴게시설을 짓더라도 법적 조치 방안이나 규정이 없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제재를 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사업주가 근로자와 협의를 안 했더라도 1인당 면적이 3.3㎡(1평) 정도만 된다면 괜찮다"고 했다.

고용부가 정한 최소면적은 6㎡(1.8평)다. 고용부의 발언대로라면 최소면적은 약 2명밖에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인데, 최소 사용 인원이나 1인당 단위 면적 규정이 없어 최소면적에 수십 명이 들어 있다고 해도 이를 규제할 수 없다.

   
▲ 정부세종청사 6동 지하에 위치한 미화원 휴게실./사진=유태경 기자


공동주택(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이나 미화원 휴게시설 설치도 문제다. 경비원의 경우, 경비실과 분리된 휴게실이 마련돼 있지 않아 업무와 휴게시간이 구분되지 않는 점, 입주자들로부터 다양한 민원을 받아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으나 휴식 장소 부재 등 이유로 휴게시설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고용부에 따르면 아파트는 시설·장소 소유주인 입주민(입주자대표회의) 동의나 협조 없이는 휴게시설 설치가 어렵다. 아파트 위탁관리업체는 사업주로서 휴게시설 설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입주민 설득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주민들이 협조를 해 주지 않는 경우, 고용부는 위탁관리업체가 노력한 정도를 참작해서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는 고용부가 입주민들에게 협조 서한문을 보내거나 위탁관리업체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 말고는 실질적으로 다른 조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지난 17일 대전아파트경비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은 대전지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비노동자 휴게실 전면 점검 및 휴식권 보장"을 촉구한 바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휴게시설이 열악하거나 설비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불이익을 당해도 근로자 입장에서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업주가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 에어컨 등을 켜지 못하게 하거나 환기 설비 등이 고장났을 때 고쳐주지 않는 경우, 근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지방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하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내부 고발자로 낙인 찍히거나 잘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저 고용부에서 점검을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국노총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근로자는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인지 모르고, 의무라는 걸 알아도 구체적 설치 기준을 모르고 있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의 경우, 노조가 자체 홍보 등으로 해당 사업을 알리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지만, 비노조 사업장의 경우 인지도 어려울 뿐더러 신고는 더욱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열악한 휴게시설에서 근로자가 죽어 나가야지만 그제서야 뒤늦게 대처한다"며 "고용부는 가이드나 권고 형식으로만 안내하고 처벌 규정(법)은 느슨하게 해 놨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부는 "제도가 시행된 지 이제 1년인데, 완전히 정착할 순 없다"며 "신고 들어오면 확인해서 조치하고 있고, 점검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 휴게 및 위생시설 설치 또는 이용 조치에 관한 세부내용./사진=안전보건공단 사업장 휴게시설 실태 및 지원방안 마련 연구 보고서.


고용부는 올해 말까지 계도기간을 거쳐 이후 휴게시설 미설치 또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장에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제175조'에 따르면 관련 법에 따른 휴게시설 미설치, 설치·관리기준 미준수, 장소 제공 미협조 또는 시설 이용 미협조 시 최소 50만원에서 최대 1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3차 이상 위반 시에도 과태료 처분 방법밖에 없어 벌금 등 실질적인 처벌은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차라리 과태료를 내고 만다는 사업주도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는 "대부분 3차 과태료 부과 전에 시정 조치한다"면서, 이에 대한 개선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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