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 해체 명목, 역대급 절약 예산…R&D·민간단체 보조금 삭감
'선택과 집중' 약자 복지에 방점, 안전망 강화…재정준칙 상한 넘겨
예산 증가 적어 경기 뒷받침 한계…산업 4.9%·SOC 4.6% '인상 주목'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줄곧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尹코노미즘'이 내년도 예산안에서 민생 경제와 복지 안전망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관건은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경제 활성화다.

취약계층을 좁혀서 최대한 챙기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투입 예산 대비 최대한의 효과를 내겠다는 복안인데, 당초 윤 대통령의 계획대로 실제 예산 집행으로 구현될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우선 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2.8% 늘린 656조 9000억 원으로 확정했다. 이번 예산안의 가장 큰 특징은 '건전 재정'이다. 윤 대통령이 수차례 지목한 '이권 카르텔' 명목의 예산을 절감하면서 지출 증가 규모를 최대한 줄인 역대급 '절약 예산'으로 꼽힌다.

경기 부진으로 국세수입은 올해보다 내년 33조원 줄어들 전망이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모든 재정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했고, 효과성 없는 사업은 최대한 삭감하고 나섰다. 비영리 민간단체 및 연구개발 분야의 국고 보조금 등이 대표적인 삭감 사업이다. 유사 중복, 집행 부진, 부정 수급 등이 문제가 된 보조금 항목을 4조원 깎아냈다.

   
▲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2023년 제36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파행 논란을 빚은 새만금 SOC 관련 예산은 중앙부처 심사를 통과한 예산 6626억원에서 5147억원을 삭감해 1479억원을 반영했다. 정부는 새만금 신공항을 포함한 개발계획 또한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이에 대해 "40개 이상의 사업에 칼을 대어 23조원을 마련했고, 이 중 상당액은 '약자 복지'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약자 복지. 일종의 선별적 복지다. 이 복지 안전망은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와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필수적이다. 빈곤층-노인-장애인-출산 가구에 대한 지원을 선별적으로 확대해 '건전 재정' '작은 정부' 기조를 그대로 갖고 갔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내년 복지 예산을 올해보다 7.5% 증액했다. 저소득층 생계급여를 역대 최대치인 13.2% 인상했고, 0~1세 자녀를 둔 부모에게 주는 급여 또한 최대 30만원으로 확대했다. 노인 일자리는 올해 88만명에서 내년 103만명으로 역대 최대 폭으로 늘렸다. 올해 5조원 삭감했던 공공임대 예산은 내년 7000억원 늘렸다.

전체 예산안 분야별로는 공공질서-안전 분야에 24조원 3000억원(6.1% 증액),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에 27조 3000억원(4.9% 증액), 사회간접자본 분야에 26조 1000억원(4.6% 증액)을 투입한다. 최근 관심을 모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대응과 관련해, 정부는 올해보다 2080억원 늘린 7319억원을 배정했다.

현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건 바로 '건전 재정' 기조 자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내년 3.9%까지 늘어날 전망인데, 이는 정부가 재정준칙에서 제시한 상한선 마이너스 3%를 0.9%포인트 뛰어넘는 수치다.

추경호 부총리는 이와 관련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하려면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을 마이너스로 잡아야 했다"며 "이럴 경우 내년 경제 상황과 국민 기대를 소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한 결과, 정부 재정으로 인한 경기 진작 효과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민간 시장의 회복력이 충분치 않아 내년 경제 전망 또한 불투명하다는 학계의 우려가 상존하고 있다. 건전 재정만을 목표로 경제 정책을 소극적으로 펴면, 위축된 경기를 되살리기에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올해 경기 둔화 영향이 내년도 세수에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정부는 써야 할 곳에 써야 한다는 기조이지만, 내년도 예산안처럼 지출을 줄이고도 나랏빚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정부가 내년 씀씀이를 최소화한다고 해도, 돈이 덜 들어오니 빚이 더욱 생기는 구조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할 국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다수 의석으로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예산안에 대해 "정부의 무능, 무책임, 복지부동이 드러나고 있다"며 "수입이 감소해 나라 곳간은 거덜 나고 약속한 재정 준칙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29일 논평을 내고 "수입이 감소해 나라 곳간은 거덜 나고 있는데 정부가 재정 곳간을 채우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워 정부의 무능함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며 "올해 세수와 내년 세수가 많이 감소하는 것은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와 대규모 감세 기조에 따라 세입 기반이 훼손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대로 사업별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실상을 국민께 소상히 밝힐 것"이라며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고 희망을 드리는 예산안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예산심사에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는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하게 전환했다"며 "진정한 약자복지의 실현, 국방 법치 등 국가의 본질 기능 강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동력 확보라는 3대 핵심 분야에 집중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선거 매표 예산을 배격하여 절약한 재원으로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겠다"며 "심혈을 기울여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을 통해 재정을 알뜰히 지키고, 민생을 살뜰히 챙기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재정을 최대한 절약하는 가운데,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확보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다짐이 어디까지 지켜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