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래미안’ 출시 이후 10여 년간 정비사업 강자로 굴림
서울 강남 정비사업에서 두각…한때 수주물량 30% 쓸어 담아
정비사업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삼성물산이 '넥스트홈'을 앞세운 적극적인 수주 행보를 예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의 전략 수정은 정비사업 시장 판도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이에 미디어펜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삼성물산의 정비사업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삼성물산 정비사업 연대기-①과거]'래미안' 탄생과 왕좌 등극

   
▲ 국내 최초 재건축 아파트인 마포삼성아파트./사진=삼성물산 제공


[미디어펜=성동규 기자]삼성물산이 정비사업에 첫발을 뗀 것은 1994년 서울 '마포주공아파트'를 '마포삼성아파트'로 재건축하면서부터다.

마포주공아파트 재건축은 건설업계 최초로 진행되는 정비사업이었던 만큼 그 상징성이 매우 컸다. 삼성물산은 당시 분양가를 웃도는 시공비를 투입하는 등 과감한 투자로 승부수를 걸었다. 시공사는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였지만 입주자들의 반응은 대만족이었다. '삼성물산=최고급 아파트'란 이미지가 굳혀진 것도 이때부터다.

2000년 또다시 삼성물산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해 1월 분양한 경기도 용인 구성1차아파트에 주택브랜드 '래미안'을 처음으로 적용한 것이다. 이후 삼성물산은 정비사업 시장에서 신흥 강자로 급부상했다.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에서 연전연승하며 2000년 한해만 총 18개 단지의 시공권을 따냈다. 

거칠 것 없이 독주하던 삼성물산에게도 예상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같은해 10월 '대치 주공 2단지' 재건축 사업의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동부건설에 불과 31표 차이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조합원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비를 제안한 동부건설을 택했다. 일각에서는 고품질 아파트를 짓겠다는 삼성물산의 고집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쓰디쓴 경험은 삼성물산의 수주 전략을 더욱 가다듬는 계기가 됐다. 삼성물산은 불필요한 소모전을 지양하고 수익성 위주의 선별수주로 전략을 수정했다.

2001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삼익아파트' 재건축 시공권을 놓고 롯데건설과 경쟁구도를 이어가다 조합원총회를 하루 앞두고 수주를 포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에는 워낙 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치열했던 데다 관련 법이 느슨해 '제살 깎아먹기'식의 출혈경쟁이 심화하던 시기였다"며 "그런데도 삼성물산은 조합원들의 선호도가 높아 굳이 복마전에 뛰어들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선별수주 전략을 취하면서도 2001년 2조2836억원, 2002년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수주고를 올리며 정비사업 분야 1위를 유지했다. 2003년 상반기에도 내실 있는 수주 전략을 통해 강남권 재건축 물량의 50% 이상을 수주해 3~4년 치 일감을 확보했다.

   
▲ 래미안브랜드 이미지 변천사./사진=삼성물산 제공


◆'규제강화'에 '금융위기'까지…달라진 수주 판세

2002년 정부의 규제 강화로 정비사업 빙하기가 찾아왔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정부는 부동산안정대책을 내놓고 재건축아파트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다음해인 2003년 7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 발효했다. 기존 재건축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수의계약 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했던 것이 경쟁입찰을 거쳐 총회결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변경됐다.

건설업계에서는 정비사업 시장의 판도가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나 '래미안'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수주전에서 매번 우위를 점해왔던 삼성물산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정비사업 업계 관계자는 "과거 삼성물산을 비롯한 소수의 대형건설사가 독식하던 시장 판도가 도정법 발효 이후 달라졌다"면서 "무한경쟁 시대가 열리면서 조합원들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는 시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비사업 시장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들어서다.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전국에서 재정비촉진지구를 지정하는 등 뉴타운 광풍이 불어 닥쳤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재건축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건설사들은 주택사업의 새로운 돌파구로 재개발 수주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비사업 수주 경쟁 심화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은 2005년 상반기 기준 서울 내 66개 주요 재개발 단지 중 20개 단지를 수주했다. 미아 6‧12구역, 전농 6‧7구역, 답십리 16구역, 길음 10구역 등 뉴타운 유망 물량을 집중적으로 수주했다.

같은해 삼성물산은 수주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서비스 브랜드인 '헤스티아'도 최초로 도입했다. 헤스티아 서비스는 단지의 날 행사(Let's Play), 입주 고객의 불편 해소에 집중한 서비스 제공(Let’s Stay), 취미활동 체험 기회 제공(Learn), 래미안 입주 고객과 함께 하는 사회공헌 활동(Together) 등 4개의 카테고리로 운영된다.

삼성물산 한 관계자는 "헤스티아는 입주 고객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함에 따라 과거 단순한 아파트 관리에 머무르던 서비스의 영역을 확대해 고객서비스의 개념을 확장시켰다"고 말했다.

◆출혈경쟁 시대 개막에 생존전략 수정

2006년 그동안 역량을 키워온 경쟁사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그해 정비사업의 왕좌에는 31개 단지를 수주한 GS건설이 올랐다. 그동안 재개발과 재건축 수주에서 강세를 보였던 삼성물산은 17개 단지 수주에 그치며 7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시기 정비사업 시장에 대변혁을 일으킬 사건이 다가오고 있었다. 2007년 여름 미국에서는 부실한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증가로 주택시장 붕괴 현상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2008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미증유의 위기를 맞닥뜨린 국내 건설사들은 서둘러 정비사업을 비롯한 주택사업 비중을 낮추고 대형 플랜트사업 비중을 높였다. 동시에 해외로 눈을 돌리는 등 사업 다각화에 사활을 걸었다.

'황금알'을 낳아줄 것만 같았던 뉴타운 사업은 금융위기로 급격한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건설 경기가 극도로 위축되자 2008년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삼성물산이 다시 두각을 나타냈다. 

수주 텃밭은 역시 서울 강남구였다. 삼성물산은 그해 상반기에 강남구 총 29개 단지 중 11개 단지(단독수주 10개·공동수주 1개) 시공권을 획득했다. 강남구와 인접한 송파구에서도 총 5개 단지 중 4개 단지(단독 1개·공동 3개)에서 시공사로 선정됐다. 

2009년에도 경제 위기 여파로 정비사업 시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건설사 간 과다 경쟁도 한층 더 심화됐다. 삼성물산이 과거 수주한 물량만 소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도 이즈음이다.

정비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2009년 이후 시공사를 교체하거나 아예 선정하지 못하는 등 지지부진한 정비사업장이 많았다"며 "그나마 수주한 사업장에서도 조합과 시공사 간의 기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미 수주 물량을 넉넉하게 확보해 놓은 삼성물산의 경우 굳이 불나방처럼 뛰어들 필요가 없었다"며 "삼성물산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정비사업 시장은 본격적인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성동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