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쪽으로 개혁하겠다" 정면승부를

   
▲ 조우석 문화평론가
단언컨대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은 이미 파장(罷場) 국면이다. 그걸 자신하는 이유는 당초 노렸던 의혹 부풀리기라는 일차 목표가 달성됐다고 판단한 야당 새민련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에서 23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던 회사를 각각 검찰에 고발했는데, 그건 알고 보면 별 거 아니다. 파봐야 나올 건 없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 일주일여 그들의 의혹 제기 중 사실로 드러난 건 단 건도 없지 않던가. 이 와중에 정치적 부담을 안고 시작할 검찰의 수사는 1년 내외의 시간을 넘기며 사람들 기억에서 희미해질 게 분명하다.

이번 사건을 면밀히 추적한 사람들이라면 금세 알겠지만, 야당은 오버를 거듭하다가 외려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최고위원 전병헌이 일부 네티즌의 의혹제기만 믿고 빨간색 마티즈 차량의 번호판이 조작됐다고 억지주장을 펼쳤지만, 경찰 조사 결과 사실무근으로 드러난 게 대표적이다.

사건의 전면에 나섰던 의원 안철수도 본전을 건지기 힘들다. 당내 불법사찰의혹진상조사위 위원장인 그는 고발장에서 “국민 휴대전화를 도청했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으나, 그걸 곧이곧대로 들어줄 국민은 드물다. 그럼 야당은 바보짓을 한 걸까? 그건 아니다.

저들은 전투에서 약간의 상처를 입었지만, 전쟁은 이겼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번 일로 야당은 3년 연속 국정원 흔들기에 성공했다고 자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해보시라. 조직적인 정치개입이라며 난리를 치고, 정권 퇴진까지 요구한 끝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구속시키는데 성공했던 이른바 국정원 댓글사건이 2013년의 일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불법사찰의혹진상조사위 위원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던 회사를 각각 검찰에 고발하면서 “국민 휴대전화를 도청했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으나, 그걸 곧이곧대로 들어줄 국민은 드물다./사진=미디어펜
그리곤 지난해 대통령까지 나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를 해야 했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 류자강을 둘러싼 문서조작 사건이 있었다. 뒤이어 이번에 다시 해킹 사건…. 그렇다면 저들은 한 건을 단단히 한 셈이다. 국정원을 민주주의의 파괴자로 규정했고, 인권유린의 대명사로 낙인찍으며 이 정부 통치행위의 한 축을 파괴하는데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국정원으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물론 국가 기강마저 무너지고 있다. 국정원장을 해임하고, 특검을 실시하며 대공수사권 이관을 포함한 전면적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기억하시는지? 그렇게 말했던 것은 1년 전 안철수였고, 당시 공동대표 김한길이었다. 저들의 국정원 흔들기란 집요하리만치 일관성이 있다. 불과 얼마 전 국정원 요원의 실명(實名)을 거론해 신분을 까발리고, 해외에서 정보활동을 하던 사람을 국내에 소환하고, 끝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며 난도질을 한 집단이 저들이다.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로 만들겠다고 맹세하였던 통합진보당과 선거연대를 했던 저들이 국정원을 적대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까? 하지만 현재 그렇게 균형 잡아 판단하는 이는 사회적 소수에 불과하다.

언론이 하도 호들갑을 떨고, 그게 매년 반복된 결과 ‘국정원=나쁜 집단’이란 주홍글씨는 거의 요지부동이다. 그러니 조선닷컴 토론마당에 이런 글이 떡 하니 올라있는데, 이게 평균적 지식인들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오해하면 안 된다. 이 글은 아고라 토론방에 올라온 불량한 글이 아니다.

“ 대한민국의 헌정체제가 존망의 기로에 섰다. 아니 절대 군주가 통치하던 왕정체제로 바뀌었다. 박근혜 정권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반민주적 헌정유린, 정보사찰이란 독재 본색을 드러낸 때문이다.”운운….

그렇다면 국정원 무력화를 겨냥한 야당의 3년 연속의 정치공세란 대체 무얼 말할까? 이거야말로 정상적 정치행위일 리 없으며, 대한민국이 명백한 체제 위기(regime corruption)의 위중한 상황임을 새삼 보여준다. 이런 사태가 더 반복되거나 장기화될 때 국가적 재앙을 면치 못하는데, 이 와중에 무얼 해야 할까? 크게 세 가지를 제안한다.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불법 해킹 프로그램 시연 및 악성코드 감염검사'에서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안 의원은 국정원의 스마트폰 해킹 의혹과 관련힌 당내 진상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첫째 새누리당이 성큼 나서길 기대한다. 간첩 휴대전화를 포함해 제대로 된 합법적 감청을 할 수 있도록 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야당에게 당당하게 제안해야 한다. 모든 나라가 감청뿐이 아니라 PC 해킹을 통한 범죄증거 확보를 합법화하는데, 우리만 없다는 점을 국민 앞에 호소해야 한다. 그게 ‘배신의 정치’를 해온 웰빙당의 약점을 벗어날 찬스이기도 하다. 그런 게 큰 정치다.

둘째 지식사회와 언론의 각성이다. 그동안의 국정원 개혁이란 실은 ‘힘 빼기’혹은 ‘반신불수화’였다. 정보기구를 아예 폐지하거나 대공수사권을 검경에 이관하며, 국내정보와 해외정보를 분리하라는 식의 ‘폐지-이관-분리’3박자 주장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외쳐왔다. 그건 무자격자들의 불법 신경수술에 불과하거나 “대한민국이 필요 없다”는, 그야말로 헛소리일 뿐이다.

셋째 대통령이 나서는 것도 검토해볼 시점이다. 야당과 지식사회-언론은 물론 애국심을 가진 국민을 향해 호소하는 거의 마지막 카드이자 정면돌파인데, 방식은 지난해 국정원 증거조작 사과와 반대로 하면 된다. 당시에 대통령은 증거조작에 대해 사과했고, 국정원의 환골탈태를 거듭 주문했다. 그건 잘못이었는데, 이번엔 완전히 거꾸로 하면 된다.

국가정보 없는 국가운영은 상상도 못하며, 그렇게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 곳도 없다는 점부터 국민들에게 환기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옛날 식의 정보통치-공안통치에 대한 트라우마를 떨쳐낼 것을 주문하면서, “북한이 가장 싫어하고 질겁해할 방향으로 기회에 정보기관을 확실하게 반석 위에 올려놓은 개혁을 하겠다”고 담대하게 선언해야 옳다. 어쩌면 그게 지금의 난국을 헤쳐나가는 거의 유일한 승부수일 수도 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