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74)-사자처럼 용맹하고 여우처럼 교활하라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군주론>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세상 사람들에게 오랜 역사를 통해 깊게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바뀌기 어렵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이미지가 대표적인 예다. 그의 <군주론>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권모술수의 대변서인 것으로 인식된다.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으로 덧씌워진 이런 오명은 합당한가? 이 책을 올바르게 읽기 위해 독자가 먼저 가져야 할 질문이다.

분열된 이탈리아의 통일과 중흥을 고민하다

<군주론>은 1512년 마키아벨리에 의해서 집필되었다. 그러나 출판은 그가 세상을 떠난 해(1527년)보다 5년 후인 1532년에서야 이루어졌다. 하지만 <군주론>은 반종교, 반도덕적인 것으로 비난받는다. 결국 1559년에 교황청이 금서로 낙인찍는다. 원래 이 책은 당시 이탈리아의 북동부 지방 피렌체의 군주였던 로렌조 메디치에게 헌정된 것이다. 외부 출판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군주의 통치술에 대한 상소문 성격으로 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통찰해 낸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통치의 복안을 피렌체 군주를 통해 펼치고 싶었던 듯하다.

   
▲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로렌초 메디치가가 이탈리아 통일의 선봉이 되길 기대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 본 피렌체 시가 전경, ⓒ박경귀
하지만 로렌조 메디치에 발탁되지 못해 그의 경륜과 철학은 사장되고 만다. 당대에 외면 받았던 마키아벨리의 통치술은 오히려 후대에 각광을 받았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무솔리니 등 충실한(?) 제자가 뒤늦게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데 이런 오독의 추종자들로 인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냉혹한 통치술의 전범인 양 인식되게 된 측면도 있다.

마키아벨리 주장의 함의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5~16세기 이탈리아는 나폴리,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의 네 왕국 및 공화국과 신정체제의 교황령 등 5개국으로 분열되어 각축하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수공업, 상업, 무역업이 흥성하여 유럽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르네상스가 발상하여 문화 예술적 성취는 높았으나, 외국의 용병에 의존하는 등 자체 군사력이 극히 미약하여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스위스 등의 군사강국의 끊임없는 침입에 시달리고 있었다.

외세의 정치개입도 심각하여 공화국 간에 이간과 배신, 음모가 끊이지 않았다. 타 공화국이나 외국과 결탁하여 다른 공화국이나 도시국가들을 침탈하는 일이 잦아 동족 간에 크고 작은 분쟁이 많았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와중에서 피렌체의 외교관으로 프랑스, 로마, 신성로마제국 등에 파견되어 여러 임무를 수행하면서 각국 간의 정치적 거래와 외교적 각축의 현장을 체험한다. 특히 그는 피렌체 시민군의 창설과 육성의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역사학자이자 희극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이탈리아의 통일군주가 되길 바랐던 메디치가에 자신이 연구했던 여러 국가의 역사적 사례를 열거하면서 군주의 통치술을 봉헌하고자 했다. 그는 피렌체 군주 메디치가 이탈리아 민족의 해방자가 될 명분과 여건이 성숙되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메디치가가 찬란했던 로마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길 소망했고, 이탈리아 민족중흥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충정을 담아 냉혹한 현실에 기초한 다양한 통치술을 조언한 것이다.

'사자처럼 용맹하고 여우처럼 교활하라'

그가 권면한 통치술의 몇 가지만 살펴보자. 먼저 주변도시를 정복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로마인들이 카르타고, 누만티아를 정복했던 것처럼 완전히 멸망시키거나, 직접 이주하여 통치할 것을 권한다. 나아가 자국에서의 통치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남의 군대의 힘을 빌리지 말고, 험난한 신고를 마다하지 말고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성취하라고 강조한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통치권을 장악한 군주가 처신해야 할 11가지 방책을 제시했다.

첫째,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것,
둘째, 동지를 규합할 것,
셋째, 폭력을 쓰든 기만을 하든 승리할 것,
넷째, 백성들이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도록 만들 것,
다섯째, 군대가 자기를 따르고 존경하도록 만들 것,
여섯째, 자기를 해칠 수 있는 힘을 가졌거나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을 숙청할 것,
일곱째, 구법과 구습을 새로운 것으로 바꿀 것,
여덟째, 가혹하고 인자할 것,
아홉째, 관대하고 개방적일 것,
열째, 불충한 군대를 제거하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할 것,
열한째, 왕이나 군주들이 자기에게 기꺼이 호의를 보이고 감히 해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그들과 우호 관계를 맺을 것

마키아벨리의 이런 방책은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에게는 시대착오적인 제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권자인 세습 군주가 가문의 통치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방책과, 국민주권 시대에 국민의 자유로운 투표로 선출되는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책략은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부딪히는 치열한 권력 투쟁의 본질적 속성을 간파하고 이의 획득과 유지에 필요한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탁월한 안목을 보여준다. 동서양의 정치지도자들이 시대와 나라의 정치 환경이 모두 다를 것임에도 불구하고, <군주론>을 끊임없이 펼쳐 보는 이유는 분명 그의 주장 속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만한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마키아벨리의 이런 주장은 분열과 대립으로 혼란을 겪던 이탈리아를 강력한 군주가 등장하여 통일을 이룩해 주길 바라는 염원에서 나왔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는 폭력을 쓰든, 기만하든 반드시 승리하고 백성들이 군주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군주가 군대의 존경과 복종을 얻어낼 것을 강조하면서, 당시 알렉산드르 6세의 아들로 한 때 중부 이탈리아를 거의 통일했던 체사르 보르자의 성공적 사례를 구체적으로 예증한다.

그는 로마와 스파르타가 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었기에 자유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 이탈리아가 외세의 침탈에 무력하고 사분오열된 근본 원인을 시민군의 부재에서 찾았다. 그 당시 용병에 의존해서 치안과 국방을 유지했던 유약한 이탈리아 공화국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려 애썼던 것이다.

강한 군주가 되기 위해 평화 시의 전쟁대비 및 군비 확장, 군사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백성에 대해 자비와 인자함을 보이되, 군대를 통솔함에 있어서는 한니발의 예와 같이 때로 잔혹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백성과 귀족, 군대의 신망과 충성을 받기 위해 그가 생각한 군주상은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용맹한 타입이다. “사자는 덫에 대하여 자신을 보호할 수 없고 여우는 이리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함정을 피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여우처럼 처신할 필요가 있고, 이리를 쫓기 위해서는 사자처럼 처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훌륭한 군주의 실례를 보여주기 위해 로마 역사 속의 다양한 실패사례와 성공사례를 자세히 열거한다. 특히 용맹스러운 사자인 동시에 매우 교활한 여우의 특성을 보여준 세베루스 황제의 성공사례를 대표적으로 들고 있다.

   
▲ 아킬레우스를 훈육하는 케이론의 모습으로 레이놀트(Regnault) 작품이다. 고대의 군주들은 반인반마(半人半馬)인 케이론(Chiron)에게 보내져 양육되었다고 한다. 이는 군주야말로 사람과 동물의 성격을 모두 부릴 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마키아벨리는 이 두 가지 성격의 어느 하나를 갖추지 못한 군주는 영존(永存)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키아벨리가 각국 통치자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상고하여 본받으라고 하는 군주의 덕목과 통치술은 일단 도덕적, 이상적 관념의 잣대와는 무관하다. 그가 역설하는 통치기술은 인류 보편적으로 소망스러운 것들이 아니라 인류의 실제 역사에서 반복되며 시현된 내용을 추출한 것일 뿐이다.

권력의 무자비한 속성, 권력 쟁취를 위한 인간의 오만과 탐욕, 야비함, 이전투구의 현실을 마키아벨리가 생생하게 읽어내고 그 속에서의 생존법을 제시함으로써 세상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아닌가 싶다. 마키아벨리에게 덧씌워진 오명들은 기실 그때그때 세상의 주인공들이 짊어져야 할 몫인 셈이다.

더군다나, 마키아벨리는 그 당시 시대상황으로 볼 때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효과적인 체제로서 군주정 하의 군주의 통치술을 논했을 뿐, 궁극적으로 군주정을 예찬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후의 저서 <로마사 논고>를 통해 공화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철학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마 이탈리아의 통일이후 로마공화정의 부활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독자들은 이 두 권의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라야 마키아벨리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작금의 급변하는 한반도의 국제정세와 안보 상황은 주변 군사 강국에 시달리던 16세기의 분열된 이탈리아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나 강력한 지배권을 가진 군주 통치 시대가 아닌 국민과 소통해야 하는 자유민주의 체제에서의 통치 여건은 더욱 어렵기만 하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권면하는 군주의 통치술을 그대로 차용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백성과 군대의 신망을 이끌어내고 강한 군대를 육성할 것을 요구한 그의 충정의 안보 전략만큼은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하고 나아가 통일시대를 열어나가야 할 지도자라면 꼭 곱씹어 읽어봐야 할 고전이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군주론> 마카아벨리 지음, 신복룡 옮김, 을유문화사(2007), 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