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돈만 내라"…산재보상법 근간 뒤흔들 떼법이자 월권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도마 위에 오른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조정위 권고안의 억지

삼성전자 백혈병 이슈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23일 발표한 조정위원회의 권고안 때문이다. 조정위원회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근로자 2명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법원의 판결과 맞물려, 삼성전자,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가대위(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의 의견을 조율하고자 출범한 위원회다.

문제는 조정위의 권고안 내용 대부분이 반올림의 의견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조정위의 권고안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해 공익법인을 설립한다. 공익법인은 조정권고 과정에서 결정된 원칙과 기준을 준수, 보상과 대책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한다.

2. 공익법인 발기인 및 이사회는 경실련, 참여연대, 산업보건학회, 한국안전학회,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대한변협, 한국법학교수회 등 7개 단체가 1명씩 추천해 구성한다. 재계 입장 대변하는 이사는 없다. 1000억 원을 기부한 삼성전자는 보상 선정 과정에 관여할 수 없다.

3. 보상질환의 범위는 백혈병, 림프종, 다발성골수증, 골수이형성증, 재생불량성 빈혈, 유방암, 뇌종양, 생식질환, 차세대질환, 희귀질환, 희귀암, 난소암 등 12종이다. 보상대상자는 ‘삼성전자(주)의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의 반도체 및 LCD 생산 등 작업공정, 관련 시설의 설치ㆍ정비 및 수리 등 업무에 2011년 1월1일 이전에 종사하기 시작한 근로자로서, 기준에 따라 일정 기간의 최소 근무기간 이상 재직한 후 발병한 사람’이다. 삼성전자 1차 협력사 및 2차 협력사도 포함된다. 보상기간의 범위는 최대 14년이다.

4. 질환과 업무 연관성을 불문한 채 삼성전자는 치료비 전액을 보전한다.

5. 공익법인은 옴부즈만 제도를 운영한다. 옴부즈만은 삼성전자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 운영 상황과 사업장 내 산업안전보건관리 현황 정보를 삼성전자로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제출받아 검토, 평가한다. 이와 더불어 ▲예방대책사업에 관한 기본계획과 구체적 실행방안의 수립 ▲재해예방을 위한 각종 조사 및 연구활동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정보공개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 관리를 위한 구체적 규정 제정, 시행을 위한 제반활동도 재해예방대책으로 삼는다.

삼성전자 백혈병 관련 사실관계, 산업재해 인정요건

작년 8월 판결난 항소심에서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5명 중 2명이 산업재해를 인정받았고, 한 달 뒤 근로복지공단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5인 중 2인은 산재로 최종 확정됐다. 당시 서울고등법원 행정9부는 산재로 판정한 2인에 대하여 “삼성 반도체 사업장에 근무하면서 벤젠과 전리 방사선 같은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백혈병 발병과 근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나머지 3명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백혈병 발병의 원인으로 보이는 물질에 노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산재로 불인정했다.

   
▲ 23일 오후 3시 삼성전자와 삼성직업병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가족위),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서대문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직업병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사진=미디어펜

산업재해 인정요건은 업무상 사유에 의한 것이면 되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다. 구체적인 개별 사례가 산업재해의 인정요건에 해당하는지 그 인과관계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산업재해는 원칙적으로 법령에 정해진 인정기준을 중심으로 개별적·구체적인 기준을 세워 운용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억울함과 개인 질병의 원인 규명은 별개다. 의학적․과학적 입증을 통해 질병 발병 원인을 명확히 밝혀야 하는 원칙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의료쇼핑이나 보험사기와 같은 사례가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경우에서도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산재를 판단하는 행정소송에서 3심제가 도입되며 다수의 판례가 축적된 2004년부터는 산재를 인정해달라는 원고 승소율이 점차 낮아졌다. 산재가 인정된 원고 승소율은 2004년 이후로 지금까지 10% 중반 대를 보이고 있다.

조정위 권고안이 법 위의 떼법, 억지, 월권인 이유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과 관련한 조정위의 권고안은 산업재해 인정요건에 대한 몰이해를 토대로 마련된 ‘억지’다. 법원에서 판결난 삼성전자 백혈병 사례도 5명 중 2명의 산업재해만 인정되었다. 나머지 3명의 인과관계는 불인정되었다. 산재를 인정해달라는 요청은 열중에 하나만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심증과 확증은 다르다. 조정위는 뭘 어떻게 하자는 건가. 치료비 전액을 보전하라는 권고는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근간을 뒤흔들 뇌관이다.

조정위의 권고안이 그대로 가게 되면, 당사자들이 이에 대하여 어떻게 입증활동을 벌일지 의문이다. 권고안을 삼성전자가 수용하게 되면, 삼성전자는 대상자들의 노인성 질환 등 각종 질병까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퇴직 후 최대 잠복기를 14년으로 잡아 반도체 사업장 근무를 마치고 나서 14년 내로 발병하게 되는 12개 질환에 대해서 삼성이 책임을 져야 한다.

해당 질병이 삼성전자에서 일해서 생겼다는 인과관계는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해당 12개 질환은 삼성전자가 요구했던 질환 범위보다 더 넓다. 조정위의 권고안은 의학 상식을 뛰어넘는 ‘우덜식’ 기준이다. 70대 남성의 삼분의 일이 암환자다. 조정위의 권고안은 당사자들이 나이 들어서 암에 걸리면 그 원인이 모두 삼성전자에서 일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이미 내린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삼성전자는 돈만 내라. 그 돈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조정위의 선언이다. 1000억 원을 기부하라는 삼성전자는 이사회에 빠지고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넣었다.

   
▲ 삼성전자 백혈병 이슈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23일 발표한 조정위원회의 권고안 때문이다. 조정위원회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근로자 2명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법원의 판결과 맞물려, 삼성전자, 반올림, 가족대책위 의견을 조율하고자 출범한 위원회다. 문제는 조정위의 권고안 내용 대부분이 반올림의 의견을 수용했다는 점이다./사진=미디어펜

공익법인이 옴부즈만을 통해 삼성전자 사업장의 각종 조치 및 정보를 검토, 평가하겠다는 것도 일종의 ‘월권’이다. 회사경영과 아무런 관련 없는 7인의 이사회가 옴부즈만을 통해 해당 기업을 사사건건 감시하겠다는 조정위의 권고안은 경영권 침해와 다를 바 하나 없다.

식당으로 비유해보자. 식당 종업원이 일하다가 다치게 됐다. 조정위의 이번 권고안은, 사고 이후 해당 식당의 작업환경 일체와 온갖 유해물질에 대한 조사를 외부인들이 하겠다고 나서는 격이다. 그 비용은 전액 식당에서 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재해의 단위는 개인이다. 개인별로 일어난 질병이 사업장에서의 근무와 관련이 있는지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질병의 발병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가 처한 상황과 사안마다 또 다르다. 구체적인 규명 후 이를 토대로 개인별로 산재 보상을 이루는 원리원칙이 서지 않는다면, 기업을 상대해서 떼로 갈취하겠다는 셈이다. 반올림이고 뭐고 간에, 심증에 기대는 ‘우덜식’ 기준은 답이 아니다. 조정위는 법 위의 떼법, 억지, 월권을 부리고 있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