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다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패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보유 중인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화재 주식에 대한 실질주주증명서를 반납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 24일 예탁결제원에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화재 주식에 대한 실질주주증명서를 반납했다.

실질주주증명서는 주주가 회사를 상대로 주주총회 소집 요구, 이사·감사의 해임 청구 등 권리를 행사할 때 필요한 증명서다. 엘리엇도 이 증명서를 발급받아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주명부와 이사회 의사록 열람을 청구하고,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소송 등을 제기했었다. 이 같은 권리를 행사하는 중에는 주주 자격이 유지돼야 하므로 증명서를 반납하기 전까지는 매각 제한 등 처분제한 조치가 걸리게 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 통과로 경영권 공격이 어려워졌다고 판단한 엘리엇이 삼성 계열사 주식을 처분하고 철수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주주권 행사기간 만료 전에 실질주주증명서를 반납하면 주식 처분 제한이 풀리기 때문이다.

다만 엘리엇의 과거 행태로 볼 때 순순히 삼성에서 손을 땔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삼성물산의 주가가 내려가 손해를 보고 주식을 팔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엘리엇의 삼성물산 지분 약 1112만주(7.12%)를 보유 중이다. 엘리엇이 지난달 3일 약 339만주(2.17%)를 사들인 취득단가는 6만3560원이다. 이전에 보유하고 있던 약 773만주(4.95%)의 단가는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 2월부터 합병 관련 문의 서신을 보내왔다는 점에 비춰 2월경부터 지분을 매입했다고 해도 6만대 초반 정도의 평균 단가가 잡힌다. 하지만 현재 삼성물산의 주가는 5만6000원선을 기록 중이다. 때문에 주당 4000원가량의 손실을 입으면서 무리하게 보유주식을 매각할 이유가 없다. 이 보다는 매수청수권을 행사해 5만7234원에 파는 것이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엘리엇이 패배를 염두에 두고 공매도 등으로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준비했다는 시각도 있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가가 7만5000∼8만원으로 상승했을 때 주식 공매도 및 주식선물매도를 통한 이익 확정을 해뒀을 수 있다”며 “가정에 불과하지만 이런 이익 확정은 헤지펀드가 파생상품시장에서는 흔히 쓰이는 방법”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상법의 상장사 특례조항을 이용해 주식의 일부를 처분하고 주주제안권 등은 유지해 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행 상법상 주주가 임시 주주총회 소집, 주주제안, 주주대표 소송, 이사·감사 해임청구권, 장부열람권 등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최소 3%의 지분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엘리엇은 통합 삼성물산에 대해 2.4%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하지만 상법 제524조의6 특례조항에 따르면 자기자본 1000억원 이상의 상장사에 대해서는 주식 0.5%를 6개월 이상 보유하면 주주제안 등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