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규모 비해 척박한 토양…구시대 정치논리에 매몰

   
▲ 황근 선문대교수
1914년 발발했던 제1차 세계대전을 좌파 학자들은 ‘위대한 전쟁(Greate War)’이라고도 말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19세기 산업혁명이후 급성장한 신흥 부르조아 계급과 신분상승에서 야기된 정치적 욕구가 폭발적으로 증폭되게 된다. 더욱이 19세기말 가속도가 붙은 산업혁명으로 다가오는 20세기는 장밋빛 미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온 사회에 팽배해있었다. 그렇지만 정치적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프랑스대혁명과 명예혁명 등으로 신흥 부르조아들의 정치적 입지가 어느 정도 높아지기는 했지만 세습왕정국가 체제가 유지되는 한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새로운 경제·사회 변화로부터 동떨어진 낡은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은 바로 낡은 정치체제와 새로운 사회경제체제 간의 부조화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즉, 변화를 요구하는 욕구들을 외면한 낡은 정치제도와 수구 정치세력들에 대한 불만이 순식간에 엄청난 전쟁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라예보 암살사건 발생 한 달 만에 유럽 모든 국가들이 참전을 선포했고, 참전한 모든 나라들(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모두)이 방어계획 없는 공격계획만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심지어 이 전쟁을 ‘자본가계급의 불순한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맹비난했던 각국의 사회주의자들도 앞장서거 참전했을 정도다. 전쟁 같은 파격적 방법이 아니고는 낡은 정치체제를 뒤엎을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지금 ‘미디어 영역’을 보면,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무엇보다 산업혁명으로 수많은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부터 그렇다. 스마트 디지털 기술 발달로 환상적인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해져 있는 것도 20세기 초 유럽 분위기와 유사하다. 물론 가전 기업들의 ‘판타스틱한 광고효과’ 때문일 수도 있다. 가장 유사한 것은 산업혁명이후 급증한 인구와 이해 충돌 등에서 비롯된 갈등이 지금 미디어영역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첨단 IT기술들이 새로운 미디어들을 폭발적으로 만들어내면서 미디어사업자들간의 이해충돌과 갈등이 매우 첨예화되고 있다.

이는 미디어 시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사업자들이 행복하기는커녕 죽을 맛이라는 소리를 달고 산다. 네트워크는 고도화되고 미디어사업자는 폭증했는데, 정착 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힘들어하고 있다. 20세기를 견고하게 지배해왔던 신문은 이미 몰락의 길로 들어섰고, 아직 건재하다고 하지만 난공불락이었던 지상파방송사들도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 지난 5월 12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5 신문.뉴미디어 엑스포'에서 시민들이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15일까지 열린 박람회에서전국 주요 언론사들이 참여해 홍보 부스를 설치하고 자사 지면의 특징과 발전방향 등을 소개했다./사진=연합뉴스
10년 이상 초호황을 누려왔던 케이블TV도 어느 덧 ‘한 물 갔다’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이동통신사, IPTV 같은 신규 사업자들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할까 ‘속빈 강정’이라고 할까 별로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네이버나 카카오톡 정도가 호황을 누리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언제 글로벌 미디어기업이나 새로운 매체라는 쓰나미를 맞을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때문에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통제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제1차 세계대전 직전과 너무나 비슷하다. 만약 새로운 미디어 패러다임에 적합한 통제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제1차 세계대전 같은 대규모 욕구 폭발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미디어 규제시스템은 특히 낙후된 부분이다.

물론 늘어난 미디어 규모에 비해 이를 뒷받침하는 토양이 매우 척박하다. 때문에 사업자들간 – 특히 새로운 사업자와 기존 사업자간 –의 백병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광고 파이 빼앗아가기, 지상파방송 재송신 갈등, 가입자 빼기지 않으려는 난투극 등등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이 와중에 ‘공익성’ 이니 ‘보편적 서비스’니 하는 낡은 슬로건들과 ‘창조’니 ‘한류’니 하는 다분히 정치성 구호들까지 뒤섞여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봐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미디어 규제기관들은 사실상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고, 모든 갈등은 ‘정말 이상한 엘리스의 나라’ 정치판으로 옮겨져 연일 쌈박질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싸움판에서는 기득권을 고수하고자 하는 세력이 거의 승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료방송합산규제가 그렇고 광고규제완화가 그렇고 700Mhz 주파수 분배가 그렇다. 마치 ‘잘 나가는 놈 절대 그대로 놓아 둘 수 없다’는 물귀신이 맹활약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마치 산업혁명이후 등장한 새로운 사회·경제 변화를 외면하고 낡은 정치체제를 고수하려고 했던 유럽의 구체제를 연상케 한다.

10여년전부터 많은 나라들이 디지털융합시대에 대비해 규제기구 개편, 규제패러다임 변화 등을 모색해왔다. 여전히 갈등이 지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국가들은 안정적인 규제시스템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미디어 규제시스템은 여전히 낡은 구시대의 정치논리에 매몰되어 있다.

정부가 손조차 댈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일련의 갈등들은 어쩌면 토마스 쿤(Thomas Kuhn)이 지적했던 ‘패러다임’의 변화를 알려주는 징후군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 미디어 규제시스템은 이미 설명력을 상실한 기존 패러다임을 고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는 거대한 빅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 기술의 빅뱅이 아니라 미디어 규제패러다임의 빅뱅이다. 문제는 이러한 빅뱅은 전쟁처럼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댓가가 수반된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든 제임스 베니거(James Beniger)가 말한 ‘통제 혁명(control revolution)’이든 하여간 미디어규제시스템 변화가 절실한 지금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