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8일이니 1년 전 일이다. 광화문 글판에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다름이 인정되지 않고 오로지 ‘내 편과 적(敵)’이 존재하는 2분법적 세상에 질식할 듯 무서웠던 때였다. 그래서 거대 권력에 함몰되지 않은 한 자유인의 처절하고 고결한 삶이 만드는 숨 쉴 공간이 필요한 때이기도 했다. 당시 글을 따라가 보자.

“다른 의견을 가졌던 카스텔리오가 죽었다. 종교적 광기가 가득한 세상과 다른 생각을 가졌던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 1515~1563)가  아까운 나이 48세로 세상을 등졌다. 1560년 전후 제네바시(市), 자유인이 살만한 시기와 장소가 아니었다. 인간을 신의 대척점에 놓고 착취하던 중세를 끝낸 혁명이 다시금 폭압적 권위로 등장한 시기다. 종교혁명을 통해 진리를 향한 새로운 통찰력을 갖게 된 사회가 또다시 종교로 인한 아노미 상태를 경험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상대는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이었다. 천재적 신학자이자 엄격한 도덕주의자로 아무런 도덕적 결함이 없는, 그렇기에 누구라도 단죄할 수 있는 신(神)에 근접한 존재였다. 칼뱅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할 은총을 내리셨다’는 확신이 있었다. 칼뱅은 제네바에서 중세 교황이 가졌던 권위를 가길 원했고 가졌다. 자신의 머릿속 이상향을 현세에 구현하려는 종교적 확신주의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넣었다. 

   

병들고 허약한 칼뱅은 완벽한 세상을 만들기에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과로와 절제가 일상인 칼뱅은 쇠약해질수록 더욱 엄격히 몰아붙였다. 단죄는 신속하고 철저했으며 여지를 두지 않았다. 종교혁명 과정에서 다양성을 확보한 제네바시(市)였지만 모든 결정권이 칼뱅에게 넘어간 후 칼뱅이 꿈꾸는 종교적 이상향의 모델하우스가 되어야했다. 확고한 신념과 부족한 시간 그리고 완전한 권력의 결합은 당연히 명령과 순종을 구조화했다. 칼뱅이 설치한 종교국은 종교적 가치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이르기 까지 침투시켰고 제네바시를 신정국가로 탈바꿈하려 했다. 칼뱅의 가치 기준이 제네바 시민의 삶이어야 했다. 제네바는 한 가지 믿음,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해야 했다. 곧 칼뱅의 믿음과 생각이다. 이런 독재는 필연적으로 폭력과 배제 그리고 피를 불렀다. 폭력은 자기 확신에 비례해 더욱 잔인했고 숨통을 조였다.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려는 칼뱅 추종자들은 불신자로 판단되는 이들을 불태웠다. 사형에 처해지는 불신자를 화형에 처하기 전, 교수형으로 통증을 감하는 절차에 극렬히 분노하는 칼뱅 추종자의 광기에 제네바 시민들은 숨을 죽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카스텔리오가 기록을 남겼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불태워서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는 없다. 단지 신앙을 위해 불에 타 죽음으로써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공포는 일상이 됐고 다른 의견을 말하기는 불가능해졌다. 자신이 배제되고 폭력에 노출될 것이라는 공포가 자기 검열을 통해 다른 의견의 배출을 차단했다. 다른 의견을 가지면 죽음의 공포가 넘실거렸다. 그러나 간혹 역사에는 위험을 감지하고도 머릿속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 소명을 완수하려는 이들이 있다. 비록 그것이 죽음과 가까이 있어도. 카스텔리오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빈곤하고 핍박받는 삶 중에도 시대와 민중의 아픔에 괴로워했던 그런 지식인이었다. 신학교수로서,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폭력적 신정정치를 거부했다. 이기려는 싸움은 아니었다. 아니 이길수 없는 싸움임을 알고 있었다. 

역사의 다락방에 숨겨졌던 카스텔리오를 전면에 불러낸 이는 ‘전기(傳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다. 카스텔리오 만큼 명민한 츠바이크의 명성은 방대한 자료와 촘촘한 검증 그리고 위대성을 부여받은 통찰력에서 비롯된다. 그가 칼뱅이라는 거인의 그림자에 잠식돼 존재감이 미미했던 카스텔리오를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며 관용을 부르짖은 위대한 인문학자’로 탄생시켰다. 씨실과 날실이 거칠게 짜깁기돼 완벽한 역사서로서의 흠집이 있음에도 역사적 인물인 카스텔리오를 발굴한 츠바이크의 위대성은 마치 트로이 유적을 발굴해 전설을 역사로 단정한 하인리히 슐리만과 겹친다.”


2023년 10월을 맞는 현실은 1년 전보다 질식의 강도가 더하다. 특히 정치권의 옥죄기에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여든 야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제외되고 축출된다. 자유로운 의견은 소멸되고 사고(思考)는 강요되며 이념은 화석화됐다. 정치가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국민을 절벽으로 호도한다. 정치(政治)가 정치(正治)가 아닌지 오래이나 정치가 지역을, 세대를, 생각을 나누고 지배해서는 안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숨쉬고 들어줄 공간이 절실한 때이다.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겸 주필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