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법원 “피의자 방어권 보장…구속 필요성 크지 않아”
[미디어펜=최인혁 기자] 검찰이 줄기차게 이재명 대표를 가두려했지만, 결국 법원은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검찰은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로 총선을 6개월여 앞두고 제1  야당 대표를 영어의 몸으로 만들려했다는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고, 이 대표와 민주당은 '정치 검찰의 보복 수사'라는 프레임을 더욱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27일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불구속 수사 원칙을 배제할 만큼 구속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이유다. 이 대표는 백현동 개발 비리 및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 등의 혐의를 받는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심리는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맡았으며 심문은 약 9시간 20분간 진행됐다. 1997년 영장실질심사 제도 도입 후 역대 최장시간이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10시간 6분) 다음으로 긴 시간 심문을 받은 셈이다.

영장심사는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관련 제3자 뇌물 혐의, 증인에게 거짓 증언을 요구한 위증교사 혐의 등을 두고 각 사안별 검찰과 변호인이 공방을 펼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와 관련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전피의자심문)를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검찰은 약 500장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 등을 고려할 경우 구속 수사 필요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 대표와 변호인 측은 검찰이 제기한 혐의가 '허구'라고 맞서며, 제1야당 대표가 도주할 우려가 없다는 점을 내세워 불구속 수사를 주장했다.

특히 검찰은 ‘녹취록’을 제시하며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법정에서 지난 7월 민주당 인사들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면회 당시 나눈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해당 파일은 ‘위에서 옥중 서신 써달라고 한다’는 내용으로 검찰은 해당 녹취록을 근거로 이 전 부지사에게 진술 번복 회유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이 대표가 증인 회유를 시도한 정황이 담긴 통화 녹취록도 확보해 재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표가 불구속 수사를 받게 될 경우 증거인멸과 증인 회유 시도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주장에도 이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유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함에 따라 민주당은 반격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26일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로 혼란에 빠진 당을 수습하기 위해 선출된 홍익표 신임 원내대표가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야당탄압에 단일대오로 맞서겠다고 밝힌 만큼 구속영장 기각은 민주당에게 반격에 나설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더불어 사법리스크로 사퇴 요구를 받았던 이 대표는 구속영장 기각을 강조하며 리더십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여겨진다. 

이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은 정치권에 상당히 큰 파급 효과를 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여당 국민의힘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간 이 대표의 구속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취했고, 이 대표의 단식 기간 대부분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하며 '구속을 면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점을 강조해 검찰과 입장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입장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이 내놓고 이재명 대표의 구속 당위성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대통령실 입장도 검찰이나 여당과 다르지 않았고,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제1야당 대표와 공식적으로 만나지 않은 배경에 '범죄 피의자 이재명'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는 게 공공연한 상황에서 협치 부재의 부담을 윤 대통령이 온전히 혼자 짊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어려운 입장에 처한 건 한동훈 법무장관이다. 한 장관은 두 차례의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전 입장을 통해 이 대표 범죄의 중대성을 강조해왔고, 심지어 최근 국회 입장 발표에서는 이 대표 구속의 정당성을 넘어 이 대표를 '잡범'에 빗대는 등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기까지 한 터다. 이렇게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한 장관은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떠올랐으니 이 대표 구속 실패의 정치적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대표나 민주당도 마냥 구속영장 기각을 승리로 인식하고 만끽할 수만도 없다. '구속 영장 기각 = 무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날 법원도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서는 범죄 소명이 이뤄졌다고 판단했고, 백현동 의혹에도 이 대표가 관여했다는 의심이 든다고 적시했다. 

즉, 이 대표가 공당의 대표이기에 구속의 상당한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일 뿐 앞선 재판들과 마찬가지로 이 대표는 새로운 혐의들을 추가해 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은만큼 사법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번 체포동의안 가결에서 드러난 최악의 당내 갈등을 어떻게 수습하느냐도 이 대표와 민주당에게 남겨진 숙제다. 과감한 포용이냐, 가혹한 숙청이냐는 문제는 내년 총선의 판도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한편 서울구치소에서 구속 여부를 기다리던 이 대표는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즉시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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