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의 발호’ 경계했던 선구자 양동안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

   
▲ 조우석 문화평론가
정치학자 양동안(70)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저술 중 세 권을 인터넷헌책방을 통해 어렵게 구입한 게 지난봄이었다. 그 귀한 책을 바로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고전 반열에 있는 묵직한 양장본 <대한민국 건국사>(1998년)만큼 눈길이 갔던 게 정치평론집 두 권이다.

문제의 글 ‘우익은 죽었는가?’가 수록된 <한국의 정치현실>(1989년)과 <민주화와 위기>(1990년)을 짜릿한 기분으로 읽어냈다. 실로 경이로웠다. 어떻게 거의 30년 전 저술인데, 낡았다는 느낌이 왜 전혀 안 드는 거지? 특히‘우익은 죽었는가?’는 명편(名篇) 중의 명편이었다.

오늘의 상황에 대한 통찰과 암시를 얻을 수 있는 최고 최선의 글이 분명했다. 한국사회의 두통거리인 이념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이토록 선언적이면서 예언적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오죽했으면 2000년대 초반 <월간조선>이 이 글을 재수록했을까? 그것도 거푸 두 번이나…. 이후 다시 10여년이 흐른 지금 글에 담긴 통찰이 더욱 빛난다. 좌익의 발호와, 이에 따른 한국사회의 마비현상에 대한 대예측은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다.

서울올림픽 직전 발표된 ‘우익은 죽었는가?’의 충격

명분 그럴싸한 민주주의 만세 분위기가 대세인 국내 정치학계, 그래서 학문적 위선을 피할 수 없는 풍토에서 이렇게 실사구시적인 접근이 등장했다는 게 우선 신기했다. 그럼에도 한편 심란했는데, 이런 생각 때문이다.

“국내 정치학자 중 대표적인 분으로 손색없는데, 왜 현실은 안 그럴까? 그러기는커녕 왜 그를 극우로 낙인찍어 그동안 불이익을 줬던 것이지? 이것이야말로 이념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국의 극단적 정치편향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가 아닐까?”

일테면 지난 번 글에서 언급했던 속물적 리버럴리즘에 오염된 언론과 대학의 분위기가 꼭 그랬다. 반복하지만 속물적 리버럴리즘이란 우익의 가치,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나머지 이른바 민주화세력으로 위장한 좌익에게 헛된 관용을 베푸는 정치적 바보짓을 말한다.

그런 망국적 흐름이 87년 체제 이후 언론-문화-교육계 전체를 덮쳤는데, 지금 그게 야당 새민련은 물론 여당 새누리의 일각까지를 오염시킨 주범이다. 그리고 그건 거의 30년 전 학문적 관찰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우익은 죽었는가?’발표 직후 양 교수가 심각한 인격살인의 상황에 몰리면서 절감해야했던 사안이다.

‘우익은 죽었는가?’가 발표된 게 1988년 6월. 서울올림픽 직전이었다. 그 직후 당시 어떤 야당 지도자는 그의 글을 “정신적 피해망상증 환자의 글”이라고 비난했다. 그 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교육장관을 찾아가 당시 양 교수가 속해있던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직에서 파면하라고 윽박질렀다.

   
▲ 양동안 교수가 ‘우익은 죽었는가?’를 쓴 것은 그의 나이 53세 때였다. 본래 리버럴 성향이던 그가 어느 날 우익으로 바뀐 것은 좌익운동권의 발호에 놀랐기 때문이다.
눈앞의 적보다 내부 배신자가 더 위험하다

학생들과 동문까지 나섰다.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학문의 이름을 빈 범죄행위”라며 글을 쓴 양 교수를 비난했다. 그런 내용의 벽보를 연구원 건물에 붙이고, 유인물을 서울시내에 뿌려댔다.

양동안 때리기는 다른 대학으로도 번졌는데, 당연히 어용교수라는 비난도 터져 나왔다. 세상의 야유와 핍박을 예상 못했던 건 아닌데, 이건 너무 엉뚱하고 또 가혹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는 목소리를 이단시하다니! 밤잠을 못 이루던 그가 정말 놀랐던 건 조중동을 포함한 신문이었다.

“언론들도 저를 마구 짓밟았지요.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들 이러는가 하고…. 글을 쓸 당시 좌익이라 분류한 사람들, 좌익하고 제휴한 사람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틀림없이 저를 비판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분류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비판하니까 어리둥절했습니다. ”(인터뷰 ‘양동안 교수는 말한다.’ 책 256쪽 수록)

역시 ‘내부의 적’이 더 난리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기회주의적 지식인과 조중동의 실체란 게 속물 리버럴리스트에 불과하다는 걸 확인하는 기회였다.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막상 대한민국 가치를 지키는 건 외면하는‘이념의 무임승차자’들의 위선에 찬 몰골이라니!

지금 저들이 선동언론이란 괴물로 변신해 언론 망국을 부채질한다는 것도 우연일 리 없다. <한국의 정치현실>에 실린 ‘우익은 죽었는가?’의 말미에는 1년여 뒤 그가 덧붙인 짧은 후기(後記)가 있는데, 그 말이 다시 가슴을 친다. 노태우 정부 초기에 벌써 이 나라에 그런 망조(亡兆)가 드리우고 있었다니!

“좌익과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필자를 매카시스트 또는 극우파라고 매도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인 사회에서 필자가 고립되도록 할 것이다.… 이들의 핍박에서 필자를 구해줄 제도나 세력은 이 나라에는 아직 없다. 정부는 지금 그런 일을 해줄 의욕도 능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 우익의 나라에서 우익의 궐기를 주장한 지식인이 핍박을 받아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역겹고 전율스러울 뿐이다.”

   
▲ 양동안 교수의 ‘우익은 죽었는가?’는 한국사회의 두통거리인 이념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선언적이면서 예언적이어서 놀라울 뿐이다.
좌익 앞에 고개 떨구는 얼치기 지식인들의 비겁함

양동안이 과연 극우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정확하게 온건 우익으로 분류되며, 미국 민주당이 유지하는 이념적 스펙트럼과 비슷하다. 젊은 시절에는 조합주의(Corporatism), 즉 자본과 노동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지지하는 이론을 책으로 쓴 바도 있었다.

해방둥이인 그는 전남 순천이 고향. 그곳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정치학과를 들어갔는데, 김경재 청와대 홍보특보가 고향 2년 선배이자 순천고-대학 과(科) 직계 선배다. 양동안과 김경재는 지금도 박정희의 유신 등 권위주의적 유산에 호의적이지 않다. 동시에 김대중이 야당 전통을 훔쳐가 호남권력으로 둔갑시킨 정치적 사기행위에도 반대한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이점 필자인 나의 시각과 다르다. 박정희가 유신을 단행하지 않았을 경우 그냥 군사쿠데타 지도자로 그쳤으리라. 물론 김대중에 대한 판단은 동일하다.)

지금 따져보니 양 교수가 ‘우익은 죽었는가?’를 쓴 것은 그의 나이 53세 때였다. 본래 리버럴 성향이던 그가 어느 날 우익으로 바뀐 것은 좌익운동권의 발호에 놀랐기 때문이다. 1984년 서울대 운동권 ‘깃발’사건을 지켜보며 정신이 번쩍 났다.

2년 뒤 5.3 인천사태를 겪고, 87년 민주화를 치르면서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과 깨끗이 결별했다. 국가적 재앙을 가져올 공산주의 세력의 등장을 양심세력-민주화세력이라고 포장해주는 속류(俗流)지식인들의 비겁함,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나약함을 학자의 양심을 걸고 호되게 지적하자는 결심을 이때 굳혔다.

그래서 소수의 목소리를 냈고, 핍박을 받았던 양동안은 나와 동시대의 지식인들에게 영웅이 아닐 수 없다. 속류 지식인과 언론계 전체의 비겁함과 지적 천박함,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나약함에 대한 고발 작업은 이제 후배들의 몫이다.

그 작업이 2015년 여름 지금 더 더욱 요청된다는 사실이 걱정이지만, 과제의 성격은 더욱 분명해졌다. 진즉 잘라냈어야 했을 30년 암덩어리가 요즘 들어 한국사회 전체로 번진 느낌이 당혹스러울 뿐인데, 상황을 직시할 때가 지금이다.

중간결론이다. 돌이켜보면 ‘우익은 죽었는가?’는 팜플렛 분량(A4 용지로 15매 내외)의 아티클인데, 이 글과 비견할만한 게 학계와 저널리즘 동네에 없다. 굳이 예를 들자면 미국건국혁명의 기폭제였던 톰 페인의 ‘상식론’쯤이 된다. ‘상식론’이 사람들 가슴에 불을 질렀다면, 양동안의 이 글은 적절히 선동적이면서도 동시에 계몽적인 성격을 유지한다.

더 분명한 건 이 글이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에 관심있는 이들을 위한 불멸의 금자탑이란 점이다. 본래 그와 그의 글에 대한 경의(敬意)를 표시하려던 글인데, 좀 미흡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가 준 메시지가 오늘에 주는 의미를 다음 적절한 기회를 만들어 더 짚어보려 한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