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다툼은 다반사…무차별 손가락질은 기업에 대한 몰이해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롯데 후계 다툼에 대한 시선…기업에 대한 몰이해

며칠 전부터 계속 세간에 오르내리는 롯데그룹의 후계 다툼에 대한 언론들의 시선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돈 앞에서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한국 재벌의 민낯’, ‘국민이 손가락질하는 서로 간의 비난과 맞소송’, ‘기업을 오너 일가의 소유물로 여기는 전근대적 의식’, ‘재벌들이 자초한 반(反)기업 정서’ 등을 언급하며 롯데그룹 사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기업에 대한 ‘몰이해’요, 전형적인 사농공상(士農工商) 주자학적 사고방식으로 바라본 결과다.

돈 앞에서 부모형제 없는 건 재벌뿐만 아니다. 상속재산을 둘러싼 우리네 주위 친척, 가족들 간에 흔히 볼 수 있는 세태다. 이는 당연하다. 부모가 1억을 남기고 죽든 100억을 남기고 죽든 남겨진 일가족 친척 간의 재산권 분쟁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롯데그룹의 후계 다툼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가족 간의 갈등일 뿐이다.

이러한 양상은 서로간의 비난과 맞소송을 자연스레 야기한다. 애초에 부모가 상속재산에 대한 교통정리를 끝냈어도 마찬가지다. 상속받은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사안에 대해서 본인이 받은 몫이 없다며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도 소송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서로간의 비난과 맞소송은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이 ‘국민’ 운운하며 해당 기업을 손가락질하는 세태는 스스로 국민을 대변한다는 오만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언론이 운운하는 ‘국민’ 수십 수백만 명은 재산을 두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있다.

   
▲ 자본주의에서는 누구나 타고난 신분과 출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끊임없는 노력과 투자로 혁신을 이루고 성장한 대기업은 성공의 표상이며 자본주의의 상징이 된다. 사진은 서울 명동의 롯데백화점 본점. /사진=미디어펜

기업을 오너 일가의 소유물로 여기는 것은 전근대적인 의식이라고 비판하는 자들은 몸은 21세기에 있지만 의식은 조선시대인 사람들이다. 기업 오너십에 대한 몰이해다. 재산권과 기업의 본질을 사농공상, 성리학적 명분으로만 생각하는 전형적인 선비 마인드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기업의 시대다. 시장경제를 만들어나가는 거의 모든 부가가치가 기업에게서 나온다. 기업․제도연구 전문가인 좌승희 영남대 석좌교수는 “기업이란 수직적 명령관계를 특성으로 하여 시장거래의 거래비용을 회피하기 위해 등장한 사회적 기술”이라 일컬은 바 있다. 수직적 명령관계를 특성으로 하는 기업은 가족경영 및 전문인경영의 형태로 나뉜다. 가족경영은 오너십의 일관성과 안정성에 있어서 탁월한 기업 형태이다. 세계500대 기업에 있어서도 가족경영으로 돌아가는 기업들이 전문인경영 기업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롯데그룹이 내부적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든 어떻게 결론이 나든, 기업의 속성 상 내부 갈등에 외부인이 별의별 관심을 갖는 것은 가십에 불과하다. 기업 제도는 정부가 구축하지만 기업이 제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국가나 제 3자가 어떻게 할 수 없다.

기업 조직의 원형인 가정은 나라가 제도로 보장한 인적 결합이다. 그 안에서 “부부가 일주일에 잠자리를 몇 번씩 가져야 한다”고 강제할 수 없는 것처럼, 오너의 상속 및 지배구조에 관하여 외부인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기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정법을 어기지 않는다면, 그냥 경쟁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옳은 자세이다.

   
▲ 사진=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기업의 지배력을 갖기 위한 개인간의 분쟁을 ‘도덕’이라는 동양적인 가치판단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끊임없는 탐욕 속에서 권력을 획득하고 이를 행사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려는 동기는 누구나 갖고 있다. 단지 오고 가는 쩐의 규모만 다를 뿐이다. 롯데그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경영권을 둘러싼 일종의 경쟁이다. 이러한 경쟁이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면,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선 안 된다. 가족사․기업사에서 개인들이 자신의 경영권 행사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다.

기업에 대한 몰이해는 기업이 오너 일가의 소유가 아니라는 의식에서도 드러난다. 소위 ‘재벌’로 불리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변천사에 대해 모르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처럼 낮은 지분율로 계열사를 경영하는 기업집단 지배구조는 43년 전 일련의 사건으로부터 기인한다. 1972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은 사채동결조치를 내리면서 기업공개촉진법을 통해 당시 재벌기업의 주식을 일반 국민들에게 팔도록 강제했다.

기업규제 및 재산권 연구에 힘써온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가 밝힌 사정은 이렇다. 고리 사채 때문에 망하게 생긴 기업들을 살려주는 대가로, 기업들이 자사주식을 시가발행이 아니라 액면가로 발행해서 일반인들에게 공모주로 팔게 되었다. 이는 강제적이었다. 박정희의 기업공개정책 및 소유분산 정책 때문에 오너의 지분율은 낮아졌고, 이는 당시 국민들의 공감대를 끌어냈다. 기업의 재산, 오너의 재산을 국민에게 직접 나눠주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재벌 대기업의 오너 지분율이 낮아졌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경제민주화’라고 말할 수 있다.

   
▲ 1972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은 사채동결조치를 내리면서 기업공개촉진법을 통해 당시 재벌기업의 주식을 일반 국민들에게 팔도록 강제했다. 박정희의 기업공개정책 및 소유분산 정책 때문에 오너의 지분율은 낮아졌고, 오너의 재산을 국민들이 직접 나눠 갖게 되었다. 이는 당시 국민들의 공감대를 끌어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진짜 ‘경제민주화’를 이룬 셈이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1986년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력집중 억제제도를 도입하여 대기업의 지분을 낮추는 정책을 펴왔다. 경제력 집중을 악(惡)으로 삼고 이를 해소, 완화한다는 이유였다. 자산규모에 따라 일정 기준 이상의 기업집단(현재 기준: 매년 4월1일 자산규모 5조원 이상)에 대하여 각종 규제를 가한다는 제도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과 같은 복잡한 순환출자 형태의 지배구조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한국적인 오너지배구조로 자리매김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상속세 제도로 인해, 낮아진 오너의 지분을 상속하려는 오너일가 자식들의 분쟁이 자연스레 연출되었다. 박정희의 기업공개정책 및 소유분산 정책, 공정거래위의 경제력집중 억제제도, 상속세제 등으로 인해 오너일가의 분산된 지분보유 형태는 현재 거의 모든 재벌 대기업에서 드러나고 있다. 기업은 제도에 발맞추어 지금의 모습으로 변천했을 뿐이다.

저간의 사정, 한국만의 특수한 기업환경이 존재한다. 이를 고려해야 우리나라의 ‘재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외눈박이식 기업관은 “큰 기업이 싫고 돈 많이 버는 기업이 싫다”는 전형적인 반기업정서다. 기업은 기업이다. 누구나 그러기 마련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