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인한 감시·정찰 취약성 감수해야 하나”
합의 이전 9년간 北의 대남 국지도발 237회, 명분 활용할 수도
[미디어펜=김소정 기자]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이 벌어지면서 정치권에서 9.19 군사합의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이전 정부가 북한과 합의한 내용을 부정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군의 감시·정찰에 취약성을 불러온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을 한 결과 체결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남북 군사당국이 합의한 9.19 합의에 대해 그동안 국민의힘 의원들이 폐기 주장을 이어온 바 있다.

그러던 중 군사작전 전반을 지휘·감독하는 합참의장이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9.19 합의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김승겸 합참의장은 12일 국감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인해 감시 범위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약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합의는 접경지역 긴장완화를 위해 결정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위협의 변화가 있는데도 감시·정찰의 취약성을 감수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합참의장은 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충돌을 언급하며 “북한이 앞으로 전쟁을 일으킬 경우 유사할 것이란 점에서 시사점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군의 북한 장사정포 대응계획 등을 점검하고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북한군의 장사정포는 700여 문이며, 수도권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전력은 300여 문 정도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도 10일 기자들과 만나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말하면서 “이스라엘이 만약 무인기 등을 띄워서 계속 감시를 했다면 그렇게 당하지 않았다고 본다”면서 “대한민국은 그보다 훨씬 강도 높은 위협에 놓여있고, 대응책은 정찰감시인데 9.19 합의로 인해 북한의 임박한 도발징후를 실시간 감시하는데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신 장관은 9.19 합의 파기가 바람직하지만 법적 절차나 타 부처 입장 등을 고려해서 일단 효력정지를 추진할 뜻을 시사했다. 그는 “효력정지는 (법률적으로) 국무회의 의결만 하면 되는 것으로 보고받았는데 좀 더 따져보겠다”고 덧붙였다.

   
▲ 북한이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초대형방사포, 대구경조종방사포 등 여러 종류의 무기를 공개했다. 2020.10.10./사진=뉴스1

9.19 군사합의는 11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도 그 존폐 여부를 놓고 여야 간 큰 충돌을 불러왔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 안보태세만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는 합의를 지키고 있지만 북한은 무인기 침투 등 최소 17차례에 걸쳐 명백하게 합의를 위반했다” 등의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9.19 합의가 여전히 접경지역 충돌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박병석 민주당 의원은 “9.19 합의 이후 접경지역의 남북 간 우발적 충돌 위험이 감소했다. 9.19 합의는 남북의 우발적 오판에 의한 충돌을 막는 방화벽”이라고 말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9.19 합의는 접경지역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합의인데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있으니 합의를 파기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반박했다. 김병주 의원은 “9.19 합의로 북한도 제약을 받는다. (감시·정찰) 시력으로 보자면 비행금지구역으로 인해 우리가 1.5에서 1.4로 떨어진다면, 북한은 0.4에서 0.1 미만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9.19 합의는 우리의 정찰자산 운용을 과도하게 막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불리한 내용이 들어있다”면서도 “효력정지 문제는 국가안보회의에서 신중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윤석열정부 들어 지속 제기되던 9.19 군사합의 폐지 논란이 최근 이스라엘 사태를 맞아 더욱 가열되고 있지만 여전히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 기간에 맞대응 명분으로 군사도발을 지속해왔지만, 9.19 합의 이후 기획된 국지도발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2022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2010년부터 9.19 군사합의 이전까지 약 237회의 대남 국지도발을 자행했다. 북한이 주로 국지도발을 감행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9.19 합의를 효력정지 또는 폐기할 경우 이를 이용해 도발하고 싶어하는 쪽은 북한이 될 것이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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