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급여·모성보호급여 지출 급증… 실업급여 재정건전성 악화
"구직급여 하한액 폐지 및 기준·기여기간 연장 등 개선 필요"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실업자 지원을 위한 우리나라 현행 실업급여 제도가 오히려 실업자 취업 의지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 실업급여 제도는 구직활동 촉진과 재정건전성 확보 측면에서 미흡해 시급한 제도 합리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업급여는 실직에 따른 소득감소를 보전하기 위한 제도로, 보수총액 1.8%를 노사가 각각 절반(0.9%)씩 부담해 재원을 조성한다. 올해 실업급여 사업 예산은 13조7000억원 수준이며, 이 중 11조2000억원(81.5%)이 구직급여로 지출된다.

현재 실업급여 계정은 사실상 고갈 상태다. 외형상 적립금은 3조7000억원 수준이지만,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차입한 7조7000억원 제외 시 사실상 4조원 규모의 적자라는 것이다. 또한 구직급여와 모성보호급여 지출이 급증하며 실업급여 계정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행 실업급여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커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발간한 '우리나라 실업급여 제도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면서 최저임금과 연동된 구직급여 하한액(최저임금의 80%)도 급격히 높아졌고, 구직급여 수급자 70% 이상이 하한액을 적용받는 비정상적 수급 구조가 발생했다. 또 우리나라 구직급여 하한액은 지난해 기준 평균임금 대비 44.1%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 구직급여월액과 최저임금월액 비교(2023년)./사진=경총


실직자 구직급여액이 최소 월 185만원으로 올해 기준 최저임금(201만원) 92%에 달하며, 실수령액(세후) 기준으로는 오히려 일을 하면서 받는 최저임금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구직급여 상한액은 정액으로, 하한액은 최저임금에 연동해 산정한다. 구직급여 상한액은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매년 인상되는 최저임금으로 인해 구직급여 하한액이 지속 상승해 상한액 93.3%까지 근접했다. 특히 2016년과 2017년 1~3월은 상한액과 하한액이 동일해져 모든 수급자가 같은 구직급여일액을 적용받는 비정상적 상황까지 발생했다.

OECD는 한국 실업급여 제도는 높은 하한액으로 인해 실업급여를 수급하다 최저임금 일자리로 취업할 경우 오히려 세후소득이 감소해 근로의욕을 저해하며, 이러한 체계는 OECD 국가 중 유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구직급여를 받기 위해 근로자가 충족해야 할 최소 요건인 기준기간(18개월)과 기여기간(180일)이 짧아 반복적인 구직급여 수령이 용이하다는 점도 실업급여 제도 비효율 가중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기여기간 180일은 주 5일 근무(유급휴일 포함 시 1주 6일) 기준 총 30주의 고용보험 가입기간이 필요하므로, 통상 약 7개월 이상 근무가 요구된다.

지난해 기준 OECD 주요국 구직급여 기준기간·기여기간을 보면 우리나라는 18·7개월, 일본 24·12개월, 독일 24·12개월, 프랑스 24개월·130일 또는 910시간 등으로, OECD 33개국 중 70%가량은 우리나라보다 기준기간과 기여기간이 긴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폭넓은 수급 자격과 느슨한 관리체계도 실업급여 제도 개선점으로 지적된다.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며 구직급여를 여러 번 받아가는 반복수급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수급 횟수나 수급액 등에 대해 별도 제재 조치가 미흡한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3회 이상 구직급여 반복수급자는 2018년 8만2000명, 2019년 8만6000명, 2020년 9만3000명, 2021년 10만명, 2022년 10만200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업급여 수급 자격 인정률이 99.6%에 달하는 등 사실상 실업급여를 신청하기만 하면 대부분 수급 자격을 인정받아 수급 자격 심사가 형식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경총은 구직급여가 고용보험기금 여건과 노사 보험료 부담 등을 감안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될 수 있도록 구직급여 하한액을 폐지하고, 구직급여액은 평균임금의 60%인 현행 기준을 준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구직급여 보장성이 강화된 만큼, 구직급여 의존성이 높아지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열악한 기금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현행 구직급여 기준기간을 18개월에서 24개월로, 기여기간은 180일에서 12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반복수급자에 대한 구직급여 감액을 적용하고, 형식적 자격 인정과 구직노력 확인 시스템 개선 등 수급 자격과 관리체계를 재검토해 실업급여를 실제 필요한 사람에게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효과성이 부족하고 재정부담을 가속화시키는 조기재취업수당은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며, 즉각적인 폐지가 어렵다면 수급 요건을 강화하거나 수당을 감액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임영태 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실업급여제도를 지나치게 관대하게 운영하면서 곳곳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다"며 "일하는 사람이 실업자보다 더 적게 받는 기형적이고 불공정한 구직급여 제도를 조속히 개선해야 하고, 저출산 극복에 대한 정부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모성보호급여에 대한 국고지원도 지금보다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혁 부산대학교 교수는 "실업급여 제도는 지속가능하고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유럽 선례를 보더라도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일자리로 유도해 일을 통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실업급여 본래 목적에도 부합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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