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3058명 의대 정원, 교육계 추세·이공계 인력 수급에 '결정타'
현장 목소리 무시한 윤 대통령 결단, 원칙주의자에서 포퓰리스트로
의사들 필수의료 떠나게 하는 사회주의식 보험수가·리걸리스크 문제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총선을 6개월 앞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게 '이슈 블랙홀'이 될지 주목된다.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정해져 있는 의대 정원은 교육계 학습 추세 및 이공계 인력 수급에 여파가 큰,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다.

기존 의대 정원이 세간의 예상대로 최소 1000명 이상 확대되는 것으로 결정된다면, 사교육 시장도 이에 발맞춰 폭발적인 반응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의료 현장의 속사정을 아는 의사들 대다수는 이러한 의대 정원 확대가 현실을 도외시한, 일종의 '포퓰리즘'이라는 반발이 높다.

앞서 정부와 국민의힘, 대통령실은 지난 15일 오후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협의회를 열고,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당정은 이날 의료 서비스 접근성 제고 방안을 회의 안건으로 삼고 개략적인 상황을 공유했지만, 구체적인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다루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또한 구체적인 증원 규모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의대 정원 확대에 관한 구체적인 관측이나 추정이 힘든 실정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전남 목포 공생원에서 열린 공생복지재단 설립 95주년 기념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2023.10.13 /사진=대통령실 제공


다만 당사자인 국내 의사들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15일 "정부가 합의 없이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한다면, 2020년보다 더 큰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부딪히고 있는 주장은 두가지다.

먼저 응급의학과·흉부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의사 증원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대다수의 언론이 이 주장을 밀고 있고, 정부 또한 이를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반면 의사가 부족한게 아니라 특정 지역-특정 과목에 의사들이 쏠리도록 정부의 의료보험체계가 잘못되어 필수의료로 가려는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의사 증원이 아니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사회주의 방식으로 의료 관련 모든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환자 보호자 등이 의료진에게 소송을 남발해 일어나는 '리걸 리스크'(Legal Risk)도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심평원의 강제적인 수가 결정 때문에 필수의료일수록 저수가에 리걸 리스크까지 겹쳐 더 많은 의사들이 그만둔다는 하소연이다.

응급실 뺑뺑이(환자 떠넘기기) 중 사망자가 발생하는 현재의 필수의료 붕괴는 응급실을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는 저수가 구조가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현장에서 일하던 의사들이 떠나는 현실은 리걸 리스크가 진짜 원인이라는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아직 대통령실은 "사실무근"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의대 정원 확대 결정 시기에 따라 총선용 블랙홀이 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바로 그 시기 때문이다.

2025년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기 위해선 내년 4월 전에 보건복지부가 졸업생 기준 총원을 결정해 교육부에 알려야 한다. 내년 4월 전에 의대 정원이 결정되어야 교육부가 그에 맞춰 지역 및 대학별 신입생을 배정할 수 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코 앞에 두고 의대 정원 확대가 결정되는 수순이다.

의료계의 대대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윤 대통령이 이를 강행한다면, 앞서 원칙주의자를 표방한 윤 대통령이 포퓰리스트로 거듭나는 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 방식으로 수가를 강제 결정하는 기존 구조 및 의료진의 리걸 리스크를 해결하지 않는한, 의대 정원 확대로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없을 확률이 높다.

현장 메커니즘과 경제적 인센티브를 이해하지 못한 대중의 일방적인 여론에만 치우치면, 필수의료의 파국과 의료의 질 저하를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