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오는 5일부터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여느해보다 주목받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과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아태지역 주요 국가 외교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ARF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 협의체이기도 하다.

ARF는 6일 오후 리트리트(소인수 비공식 자유토론)와 총회를 잇따라 열고 북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 등 지역 및 국제정세 현안을 폭넓게 논의한다.

이번 회의에는 윤병세 외교장관과 리수용 북한 외무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왕이 중국 외교부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등 6자 회담국 외교 수장이 모두 참석한다.

양자·소다자 회의가 다양하게 펼쳐지는 ARF 기간 중인 5일에는 한러,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연이어 개최될 예정이다. 정부 당국자는 3일 “윤 장관은 이날 오후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각각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중국·러시아와의 회담에서는 북한의 하반기 도발 가능성 등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이 주요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국, 일본과도 각각 양자 및 한미일 3자 외교장관 회담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일정 조율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5일 레트노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무장관,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도 회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에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회의 기간 중 남북 간 의미 있는 접촉이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리 외수상이 ARF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평양을 출발했다는 평양발 외신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최근까지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남북관계를 볼 때 이번 회의에서 남북 간 접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은 최근 이란 핵 협상 타결 이후 지재룡 주중대사와 장일훈 유엔 주재 차석대사 등을 내세워 이례적인 외교전을 벌이고 핵 보유 및 미사일 발사에 대해 공세적으로 나온 일이 있다.

따라서 이달 열리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반대해온 북한과 미국의 접촉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회의에서 최근 고위급 교류가 없었던 북한과 중국의 외교수장이 만나 9월3일 중국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북한 측이 참석하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때마침 북한과 중국은 이번 회의를 앞두고 모처럼 관계개선 분위기를 자아낸 일도 있다. 지난달 26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제4차 전국노병대회 축하연설에서 한국전 참전 중국인민지원군에 경의를 표했으며, 27일에는 정전협정 62주년을 맞아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에 본인 명의의 화환을 보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최근 북중 접경지역인 조선족 자치구 지린성 옌벤과 선양을 잇따라 찾으면서 북중관계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이미 외교가에서는 중미 간 동북아 패권경쟁 구도에서 북중관계 개선은 시기만 결정되지 않았지 당연한 수순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이번 회의에서 중국이 북한과 어떤 형태의 만남을 가질지, 또 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관심이 크다.

이와 함께 과거사 문제에서 쉽게 풀리지 않는 한국과 일본의 외교장관 만남도 주목된다. 지난 한일수교 50주년 때 양국의 외교장관이 만나 다자회의(ARF) 계기에 소통을 강화하자는 합의가 있었던 만큼 이번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크다.

하지만 이번 한일 간 회담에서 이달 중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할 종전 70주년 담화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이뤄질지 쉽게 예단할 수 없다.

일본은 최근에도 조선인 강제징용이 이뤄진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유네스코 등재 문제, 독도에 대한 영토 주장이 담긴 방위백서 발표, 일본 여당 의원의 위안부 강제연행 부정 발언 등으로 양국의 관계 개선이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