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시장의 원칙 외면땐 민주주의의 타락과 종말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4일 마포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현안세미나를 개최했다. 자유경제원은 8월 사옥을 마포로 옮기고 세미나실의 이름을 리버티홀(Liberty Hall)로 명명한 바 있다. 이날 열린 리버티홀 개관 첫 세미나의 주제는 <민주주의 발상지 그리스:민주주의발 디폴트가 한국에 주는 교훈>으로 민주주의 발상지로 추앙받던 그리스가 결국 민주주의 실패로 디폴트 사태에 이르게된 원인과 한국에 주는 시사점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발제를 맡은 최승노 부원장(자유경제원)은 포퓰리즘에 물들어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도 가까운 미래에 제2의 그리스가 될지 모를 일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최 부원장은 대한민국이 지난 30년 가까이 원칙을 훼손하고 퍼주기식 온정주의에 몰입해왔다는 점을 비판하며 자유와 시장의 원칙에 지키는 민주주의를 세우지 않으면 한국 역시 슬픈 민주주의의 종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일침했다. 다음은 최승노 부원장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 주]

   
▲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그리스 사태’, ‘그리스 디폴트’ 등이 실시간 검색의 상단을 차지하고 있던 때보다 잠잠해지긴 했어도 그리스는 여전히 위기의 소용돌이 속이다. 단지 채권단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 중심부에서 겨우 한 발짝 물러났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근대 학문의 뿌리를 이루는 각종 현자들을 배출한 그리스가 오늘과 같은 비극을 맞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그 ‘민주주의’가 타락했기 때문이다.

정치실패가 부른 경제위기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는 과거의 명성에 버금가는 경제 모범국이었다. 1980년까지 50년 동안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5.2%에 달했고 평균경제성장률 세계2위, 실질1 인당국민소득 세계1위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었다. 국가부채는 GDP대비 28%에 불 과했으며 실업률도 3%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스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좌파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부터다. 게다가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공동체에 무리하게 가입하면서 몰락의 속도가 가속됐다. 안드 레아스 파판드레우 정권은 1981년 출범과 동시에 보편복지와 정부개입 강화, 공공부문 확대, 보호와 온정주의 정책을 잇따라 도입했다. 국민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겠다던 달콤한 그의 말은 유권자들의 표를 쓸어 담기 충분했다. 한번 잡은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버클리대 교수까지 지낸 경제통인 파판드레우였으나 그가 집권 하면서 내세운 것은 시장경제가 아닌 정부주도형 가부장적 경제였다. 철강·금융·선박 등 12개의 업종이 국유화됐으며 주요 조선소와 시멘트·알루미늄 공장은 관료들의 간섭을 받기 일쑤였다.

심지어 수도 아테네는 환경오염을 이유로 공장설립에 제한을 받았다. 한때 제조 강국이었던 그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관광이나 올리브기름을 팔아 먹고사는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생산 주체인 민간부분은 쪼그라들었고 비생 산 부문인 공무원 등 공공 부문만 비대해져 2009년에는 그 비중이 53%에 이르렀다. 공공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GDP의 177%로, 현자의 나라에서 유럽의 문제아로 낙인 찍힌 것이 현재 그리스가 마주한 현실이다.

   
▲ 그리스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좌파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부터다. 안드 레아스 파판드레우 정권은 1981년 출범과 동시에 보편복지와 정부개입 강화, 공공부문 확대, 보호와 온정주의 정책을 잇따라 도입했다. 국민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겠다던 달콤한 그의 말은 유권자들의 표를 쓸어 담기 충분했다. 한번 잡은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사진=YTN 캡처
그리스의 타락한 민주주의

그리스가 채권단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국가 부채를 떠안고 살아온 세월만큼 유로존 탈퇴(그렉시트)의 갈림길에도 수차례 서 왔던 그리스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비로운(?) 유럽연합의 채권단은 매번 그리스를 내치는 시늉만 할뿐이었다. 마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잠깐 시끄러웠다마는 그렉시트 논란에 익숙해진 탓일까, 이번 사태에 대한 그리스의 태도는 그야말로 ‘배째라’식이다.

지난 6월 말 채권단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에게 협상안을 제시했다. 상환 기한을 연장해 줄테니 긴축재정을 실시해서라도 부채를 갚을 돈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총리는 이에 대한 대답을 국민투표로 돌려버린다. 한 가정이 진 빚에 대한 상환요구를 가족회의를 통해 거부할 수 있을까. 상식을 벗어난 발상이다.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그럴싸한 명목으로 치장했지만 이와 같은 처사는 명백한 민주주의의 타락이다.

타락에 물든 것은 그리스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50 대 50이라던 여론은 뚜껑을 열어보니 20%포인트 이상의 압도적 차이로 협상안을 거부했다. 6할 이상의 국민들은 채권단의 협상안이 불만이었지만 구제금융 조건에 반대하는 것은 자신들이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이었기에 상당수가 입을 닫은 채 본심을 숨겨왔던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해야

민주주의는 현재까지 인류문명이 경험한 최고의 체제이나 단점하나 없이 완벽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다수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원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 인권, 재산에 대한 권리가 대중의 찬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력이다. 이번 그리스 사태에서 치프라스 총리와 국민들이 보여준 투표결과는 채권단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급 민주주의의 폭주를 막은 것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메르켈은 ‘이번에도’ 그리스에게 온정을 베풀려는 세력과 정면충돌을 불사했다.

그렉시트를 우려하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협상타결 재촉,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절충론도 단호히 배격했다. 무수한 비난과 공격에도 ‘자기 빚은 스스로 갚으라’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던 메르켈은 원칙과 일관성의 리더십이 가짜 민주주의와 무책임한 포퓰리즘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제대로 보여줬다.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Democracy: The God That Failed)>의 저자 한스헤르만 호페는 민주주의를 조심히 다뤄야한다고 말한다. 시민 각자가 그가 속한 집단의 이익보다 공동선, 즉 원칙을 우선시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돼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개인이 많을 때 민주주의는 건강해 질 수 있다.

포퓰리즘에 서서히 물들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도 머잖은 미래에 제2의 그리스가 될지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는 벌써 30년 가까이 원칙을 훼손하고 퍼주기식 온정주의 에 몰입해왔다. 자유와 시장의 원칙에 지키는 민주주의를 세우지 않으면 한국 역시 슬픈 민주주의의 종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