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반기업정서 표출 뒤틀린 기회주의…승자없는 패자 싸움

롯데 문제에 대한 언론의 비틀린 관심이 도를 넘고 있다. 심지어 종편 채널들은 신동빈 회장이 탑승한 차량을 생중계로 추적하는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점점 경제 이슈라기보다는 가십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주요 뉴스를 다루는 언론의 행태는 어느덧 이런 식으로 정착돼 버렸다. 즉, 모든 이슈의 가십화(化)다.

언론이 망가지면 그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관점도 함께 일그러진다. 롯데그룹에 대한 비난 일색의 여론은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한쪽으로 치닫고 있다. 그 대가는 결코 싸지 않을 것이다.

급기야 금융소비자원은 4일 롯데의 부자·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국내 재벌의 비양심적이고 반시장적인 작태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며 “롯데카드, 롯데백화점 등 롯데그룹 전 계열사에 대한 불매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불매운동은 분명 소비자단체가 시도할 수 있는 하나의 운동 방편이다.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기에 불매운동으로 의사를 표출하는 방식을 마냥 부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롯데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은 조금 경우가 다른 것 같다. 대기업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 이른바 반기업 정서에 기대고 있는 편향된 여론이 정의(正義)의 가면을 쓰고 무차별 살포되고 있는 것이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에 필부필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요소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신격호 회장 일가의 복잡한 가정사, 한국어보다 일본어에 더 친숙해 보이는 경영진들의 모습 등은 국민들이 그동안 ‘롯데’라는 브랜드에 친숙함을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생경함을 자아내고 있다.

   
▲ 종편 채널들은 신동빈 회장이 탑승한 차량을 생중계로 추적하는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롯데 문제는 점점 경제이슈에서 '가십'으로 변해가고 있다. /TV조선 캡쳐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신격호 회장 이하 모든 ‘롯데인’들은 공인(公人)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사인(私人)이다. 글로벌 거대 기업을 이끌고 있다 보니 공적인 영향력이 생기긴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일반 국민과 똑같은 차원의 인간일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이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그들의 재력이 출중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지나친 완전무결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언론들의 보도 태도 역시 본질적으로 수정되어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신씨 일가에 대한 집착적인 취재가 마치 사회정의를 세우는 지름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선정적으로 들이대고 있는 게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라면 심각한 문제다. 이 어리석은 퍼레이드에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소위 보수 언론들도 앞장을 서고 있다.

재벌을 때려서 호가호위를 하면 잠시 스스로 정의로운 인간이 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어리석음의 표출일 뿐이다.

불매운동에 나서려는 소비자단체들, 그리고 무차별적인 보도를 거듭하고 있는 언론들은 스스로가 현재 분노의 굿판 위에서 춤추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안 그래도 안에서 복잡한 롯데그룹을 밖에서까지 흔든다면 그 대가는 오롯이 국민들(소비자들)이 치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국민들을 위한다는 그들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일이다.

이번 논란으로 가장 크게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롯데그룹 자신이다. 시장에서의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입은 그들은 사태가 수습되고 나면 어떻게든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기업사(史)의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이렇듯 위기 직후의 혁신에서 새로운 도약이 종종 일어난다는 점에 있다. 롯데에게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상황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대기업을 공격하는 것은 쉽다. 반면 그들이 진정으로 기업과 나라를 위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방황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부른 불매운동보다는 롯데라는 기업에 대한 지긋한 믿음과 기다림을 보여주는 것이 모두를 위해 더 나은 대안일 가능성이 높다.

분노의 굿판은 이제 걷어치워야 한다. 이 문제를 가장 치열하게 고민할 사람들은 롯데의 경영 당사자들과 주주들이다. 판단은 그들에게 맡기고 언론과 국민들은 감정적인 동요를 멈출 때다. [미디어펜=이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