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현영철 북한 전 인민무력부장이 총살됐다는 국가정보원의 발표 이후 김정은 체제 공포정치가 주목을 크게 받았다.

4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국방장관과 면담을 수행했던 현영철이 불과 며칠만인 같은 달 30일 총살됐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 장성택 처형 때처럼 ‘당 정치국 결정’이나 ‘재판 절차 진행’ 발표도 없었기 때문에 의혹도 불러일으켰다.

현영철은 4월27~28일간 진행된 모란봉 악단공연을 관람한 것으로 북한 매체가 보도한 바 있고, 이후 4월30일 김정은의 군 훈련일꾼대회 참가자들과의 기념촬영에 불참하면서 공개석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처음 현영철 처형 소식이 전해질 때 주변인과 가족까지 참관한 가운데 소총 대신 총신이 4개인 14.5㎜ 고사총을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4일 정통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현영철은 지난 4월30일 평양 강건종합군관학교 회의실에 불려나와 ‘최고사령관 명령 불복죄’에 따른 즉결 처형을 언도받은 뒤 곧바로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으로 끌려나가 총살됐다.

현영철의 처형을 언도한 회의실에는 총정치국, 총참모부, 무력부, 보위부, 보안부 등 각 국장급 이상 150명 간부가 모였다고 한다. 군복 입은 간부들 앞에서 현영철의 처형을 공표해 본보기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 현영철 북한 전 인민무력부장이 지난 4월30일 전격 처형됐다고 국가정보원이 5월13일 밝혔다. 4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국방장관과 면담을 수행했던 현영철은 4월27~28일간 진행된 모란봉 악단공연을 관람한 것으로 북한 매체가 보도한 바 있고, 이후 4월30일 김정은의 군 훈련일꾼대회 참가자들과의 기념촬영에 불참하면서 공개석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사진=MBC 화면 캡처.
현영철에 대한 처형은 알려진 것과 달리 고사총이 아니라 AK자동소총을 이용해 90발을 쏜 것으로 파악됐다.

소식통은 “AK자동소총을 든 6명이 각각 15발 씩 총 90발을 한꺼번에 쏘아서 처형한 것으로 전해들었다”며 “자동소총을 여러 발 쏘기 때문에 마치 고사총을 맞은 것처럼 처참한 주검이 된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앞서 현영철 처형 직후인 5월 본보에 “현영철 처형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인민군 상좌급 이상으로 분류되는 고급 군관들을 대상으로 공식 발표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이 소식통은 현영철의 처형 이유에 대해서는 “김정은이 유난히 군부대를 자주 시찰하면서 부대 병사들과 초급 지휘관들이 군 수뇌부의 명령을 듣지 않는 등 오히려 기강이 해이해졌고, 무력부장으로서 불만을 토로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현영철의 처형과 관련해 김정은의 통치 방식이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란 해석은 적절치 않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최근 제기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4일 “김정은이 김정일보다 공포정치에 더 의존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 과연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검증이 필요하다”면서 “김정은 집권 이후 주로 교체된 간부들은 군사 간부들이고, 정치 간부와 공안기관 간부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민무력부장과 총참모장과 같은 군사 간부들의 교체가 잦았지만 총정치국장과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의 간부들은 쉽게 교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또 “그동안 총참모장이 세 차례 교체되었지만 리영길 현 총참모장은 2013년 8월 이후 약 2년간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엘리트에 대한 감시와 방첩활동을 맡고 있는 국가안전보위부장은 단 한 차례도 교체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정 실장은 “주로 파워가 약한 무력부와 총참모부가 간부교체 대상이 되어왔다”며 “김정은은 간부들에 대한 공과, 충성도를 기준으로 숙청을 단행해왔고, 즉흥적으로 군부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는 평가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