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종전 70주년을 계기로 발표할 담화 작성을 위해 설치한 전문가 자문회의의 보고서에 ‘식민 사죄’ 표현이 빠지고, 오히려 한국 등 주변국의 외교자세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크게 일고 있다.

한국 정부가 한일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를 선순환적으로 발전시킬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오는 14일 발표될 ‘아베 담화’에 자문회의 보고서 내용이 그대로 담길 경우 큰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아베 총리의 자문회의인 ‘21세기 구상 간담회’의 보고서는 특히 중국과 한국에 대해 현격히 다른 시선을 가지면서 “한국 정부가 역사인식 문제에서 ‘골대’를 움직여왔다”고 주장하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취임 초기부터 감정을 내세워 지금까지 없었던 강경한 태도를 갖고 있다”고 평가해 한국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최근 일제 강제징용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한국과 크게 갈등을 겪은 아베 정권의 감정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에 대해 아베 총리가 끝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일본 내 여론마저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상황이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종전 70주년을 계기로 발표할 담화 작성을 위해 설치한 전문가 자문회의의 보고서에 ‘식민 사죄’ 표현이 빠지고, 오히려 한국 등 주변국의 외교자세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크게 일고 있다. 사진은 6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푸트라세계무역센터(PWTC)에서 약식 회담을 마친 후 회의장을 나서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도쿄신문은 7일 사설에서 “아베 담화가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의 근간을 담지 않을 경우 발표를 하지 말거나 각의결정을 거치지 말고 사적 담화로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총리는 자신의 담화에 ‘식민지 지배’ ‘침략’ ‘반성’ ‘사죄’ 등을 담아야 한다”며 “타국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일본 국민의 성의의 표현으로서 깊은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그동안 친 아베 성향을 보여온 보수 계열의 요미우리신문도 ‘총리도 침략을 명확하게 인정하라’는 제목의 7일자 사설에서 담화에 ‘사죄’를 담을 것을 촉구했다.

이 신문은 “아베 담화는 역대 내각의 견해에 따라 간접적인 표현으로라도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이 전해지는 말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또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총리 자신의 사죄의 말을 표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사히신문은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잇겠다는 아베 총리의 이전 발언을 상기시키며 “구체적인 단어로 (역대 내각 담화를 이어가겠다는 것을) 명확히 하라”면서 ‘식민지 지배’, ‘침략’ ‘반성’ ‘사죄’ 등 역대 내각의 담화에 담긴 표현을 구체적으로 명기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아베 담화의 자문단인 ‘21세기구상간담회’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보고서를 제출해 아베 총리가 역대 내각의 담화를 수정하려는 의지를 뒷받침했다.

보고서에는 “당시 일본만 식민지를 만든 것이 아니고, 국제법상 침략의 정의도 명확하지 않다”면서 “그 무렵 다른 나라들도 같은 행위를 저지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메이지유신 이후 민주주의 발전과 국제평화, 자유무역에 기반한 국제질서 형성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관여해왔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또한 간담회는 한일 양국의 관계가 나빠진 책임을 한국 정부에 돌리는 주장도 이어갔다. 보고서에는 “일본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성에 기반한 대일정책을 선택해 노무현 정권 때 상처받았던 양국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며 “그러나 2011년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과 교섭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입장이 변했다”고 했다.

간담회는 또 현 정부에 대해서도 “과거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는 이성에 기반해 일본과의 협력관계를 추진한 것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감정을 전면에 내세우고 지금까지 없었던 강경한 태도를 가진 대통령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간담회는 “박근혜 정부는 중국에 의존하고, 일본과는 이성적인 관계 형성에 소극적”이라거나 “한국 정부가 역사 인식 문제를 두고 ‘골 포스트(골대)’를 움직여왔다”면서 “한국에 존재하는 대일 반발에 일본이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는 전진하지 않는다”는 말로 양국 관계가 경색된 탓을 한국 정부에 넘기는 태도를 보였다.

본의 보수 정치인인 나카소네 야스히로(97) 전 총리는 최신 발매된 월간지 ‘문예춘추’의 기고문에서 아베 담화에 대해 “역사의 부정적인 부분을 직시할 용기와 겸허함을 가져야 한다”며 “거기서 얻어야 할 교훈을 가슴에 새겨 국가를 이끄는 것이 현대 정치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아베 담화 자문단의 보고서는 분명 식민 지배를 통해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른 일본의 과거사를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본 역대 내각이 한 ‘사죄’ 발언을 빼기 위해 담화 수정이라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아베 총리가 실제 어떤 내용의 담화를 내놓느냐에 따라 향후 한일관계의 정상화 여부도 결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