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시완 범죄심리학자·범죄학 박사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소위 ‘농약 사이다’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80대 박모 할머니의 혐의를 두고 경찰 조사에 이어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박할머니는 시종일관 범죄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수사기관을 비롯해 언론까지 합세한 여론은 박할머니를 이미 살인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7월 14일 오후 2시 43분경 경북 상주시의 한 마을회관에서 전날 마시고 남은 사이다를 할머니 7명 중 6명이 마신 뒤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 날 오전, 그리고 같은 달 18일경 두명의 할머니가 사망하였으며 나머지 할머니들도 여전히 중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과수 감정에 따르면 사이다병에서 고독성 살충제인 메소밀 성분이 검출되었다 한다. 메소밀은 무색무취해서 육안 또는 후각으로 전혀 감지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물적증거는 다음과 같은 정도다. 농약이 검출된 사이다병 뚜껑이 박카스병 뚜껑이었다는 것이고, 박할머니 집을 수색하던 중 박카스 병이 확인되었고 메소밀 성분이 검출되었다. 정황증거로는 전날 점 10원짜리 화투놀이를 하면서 할머니들간 다소간의 말다툼이 있었다는 것. 그런데 정작 박카스병과 사이다병에서는 박할머니의 지문이나 유전자가 확인되지 않았다.

뚜렷한 살인범죄 동기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 범죄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박할머니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 및 행동·심리 분석 결과가 지난 8월 7일 공개되었다. 박할머니의 범행부인이 거짓이라는 조사결과가 그것이다.

여기까지가 사실로 확인된 농약 사이다 사건 개요이다. 과연 이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여기서부터 ‘범죄자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이 시작된다. 범죄자 프로파일링은 수사 과정에서 범죄자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여 수사망을 좁혀 나가는 데 일조하는 수사기법을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자주 보는 범죄자 추적기법으로서 프로파일링은 전문용어로는 ‘지리적 프로파일링(geographical profiling)’이라고 한다.

그러나 프로파일링은 범죄자의 성공적 검거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의 성격이나 행동 특성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과 이해를 통해 용의자가 체포된 이후에도 범죄의 동기 등을 밝히기 위한 수사 전략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박할머니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와 아울러 진행된 행동·심리 분석이 이러한 범죄자 프로파일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프로파일링 경험이 풍부한 수사관, 소위 프로파일러라 불리는 사람들의 경험적 사건 분석 역시 범죄자 프로파일링이라 할 수 있다. 한 전직 프로파일러는 농약 사이다 사건에 대해 수사당국의 입장과 다른 견해를 내 놓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50-60대 남성에 의해 범해졌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박할머니에 대해서는 범행의 동기도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증이 없기 때문에 기소는 되더라도 무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견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은 일종의 독극물 다중 테러로 볼 수 있다. 우선 독극물을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에서 미끼로 이용한 점이 그렇다. 이 사건은 살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포와 그로 인한 공동체 파괴가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범행 동기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에 있다고 본다. 이른바 공동체형 범죄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한 스트레스를 전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범인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고 연령대도 마을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50~60대로 추측된다. 사건의 핵심은 박카스병 뚜껑에 있다. 독극물 농약을 이용한 여성 연쇄살인의 경우 다중을 대상으로 하 기보다는 정확히 누구를 노리는 수법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행동의 대담함과 덫을 만드는 기술 그리고 접근 방법 등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 범인이 다중의 피해자를 노릴 경우 여성형보다는 남성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농약 사이다' 살해사건의 피의자 박모(82) 할머니가 지난달 20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제1호 법정에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80대 노년 여성의 범죄라 보기에는 너무도 죄질이 안좋은 집단적 살인범죄이기에 범죄적 동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행동의 대담함, 덫을 만드는 기술, 접근 방법 등에서 남성적 마초이즘이 느껴진다는 분석. 50-60대 남성이 지역사회 80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농약살인을 벌여 공동체를 파괴하려 했다는 프로파일링. 프로파일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데, 글쎄다.

거짓말탐지기 및 행동·심리 분석 결과가 범죄혐의를 인정하는데 비중이 적지 않은 정황증거로 사용될 듯싶다. 80대의 박할머니는 여전히 범죄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살인범죄의 뚜렷한 동기는 알 수가 없다. 사이다병과 박카스병에서는 농약 성분이 검출되었다. 할머니 사망에는 농약성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진다.

경찰과 검찰 조사로 더 이상 나올 증거는 없어 보인다. 이대로 법원으로 던져질 것이다. 박할머니는 배심재판을 요청할 것이 분명하다. 팩트 파인딩에의 어려움을 느낀 재판부 역시 배심재판을 허가할 것이다. 배심원으로 참여할 시민들은 어떨까. 특히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 행동․심리분석, 남성의 범죄였을 것이라는 프로파일링에 대한 그들의 판단은?

농약이 검출된 사이다병 그 자체로 유죄를 확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80대 노파가 이같은 집단살해 사건을 감행할 범죄동기가 없다는 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행동·심리 분석 결과에서 보여질 박할머니의 이상한 반응들에 유죄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농약을 사이다병에 집어 넣는 장면을 본 사람이 없는 이상 무죄추정 원칙으로 돌아가 무죄라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박할머니에 대한 행동․심리 분석을 진행했던 프로파일러가 법정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한다면 또 하나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아직 진실은 없다. 의심받는 사람과 의심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 진실을 추적하는 거짓말탐지기와 프로파일러가 있다. 배심원이 될 시민들은 그 한가운데 서게 될 것이다.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