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내느라 바쁜 기업들…기업 존속에 치명타
선진국은 상속세 폐지 움직임…한국만 논의 더뎌
23년째 그대로인 상속세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최대주주 할증까지 합산하면 60%에 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가장 높은 수치로, 기업이 존속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고 있다. 비단 기업뿐 아니라 재산을 상속받는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문제로 ‘개편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이에 미디어펜은 기업 영속성을 헤치는 과도한 상속세 문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상속세 완화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세제 완화’를 외치는 정부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밀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의 반대 등을 고려해 다소 신중함을 보인다.

다만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상속세 체제를 한 번 건드릴 때가 됐다”고 언급하면서 다시 한번 상속세 완화 움직임에 대한 기대가 나온다.

   
▲ 국회 본회의장 전경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기재부는 현재 상속인(물려받는 사람)이 각자 취득하는 상속 재산에 각각 세율을 적용하는 ‘유산취득세’를 통해 적용 세율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상속인별로 나뉜 재산에 과세하는 만큼 피상속인 유산 전체보다 낮은 과표구간의 세율을 부과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과도한 상속세가 불러오는 문제점을 오래 전부터 지적해왔다.

이미 소득세를 지불한 재산에 대해, 상속을 이유로 세금을 한 번 더 물리는 것은 이중과세인 데다 기업 영속성을 꺾어놓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또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도 문제지만, OECD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의 원인이 된 획일적인 최대주주 할증평가 역시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재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수십 년간 상속세율은 한 번도 조정되지 않았다. 지난 7월 감세를 골자로 하는 ‘2022 세제개편안’이 발표되긴 했지만,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와 적용 대상 확대에 그쳤다. 이로 인한 후폭풍은 생각보다 거세다는 것이 재계의 우려다.


◇ 상속세 내느라 바쁜 기업들…기업 존속에 치명타

최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상속세 납부를 위해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 약 2조6000억 원어치를 처분해 화제가 됐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별세 이후 총 12조 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지불해야 하는 이들은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2021년 4월부터 5년에 걸쳐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그 친족들이 보유한 지주회사 SK 지분 12.59%가 담보대출 및 질권설정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7000억 원이 넘는 상속세 납부를 위해 보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이어가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상속세 납부를 위해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 사장 역시 증여세 연부연납을 위해 주식을 담보로 맡겼다. 다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경우 정몽구 명예회장의 주식을 상속받기 전이어서 아직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상황이다.


◇ 과도한 상속세가 불러온 기업 포기

현행 체제에서는 기업을 상속 받기 위해 상속 받을 재산의 절반 이상의 액수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금 확보를 위해 애쓰기보단 기업을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등 경영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세계 1위 손톱깎이 생산 업체였던 쓰리세븐은 지난 2008년 150억 원의 상속세를 지불하기 위해 지분을 전략 매각했고, 이 기업은 적자 기업으로 전락했다. 콘돔 생산업체인 유니더스와 밀폐용기 제조업체 락앤락도 각각 비슷한 사정으로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역시 최근 주주총회에서 “내가 떠나고 나면 상속세 때문에 셀트리온은 국영기업이 될 것”이라며 경영권 승계를 포기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약 6조에서 7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속세 때문에 국영기업화 된 사례도 있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유족은 60%가 적용된 세율을 감당하기 어려워 정부에 약 6조 원(넥슨 지주사 NXC 지분 29.3%)을 물납해야 했다.

여기에다 다음 달 공개 매각이 예정된 넥슨 주식은 외국 기업 또는 투기 자본의 인수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과도한 상속세가 자본의 해외 이탈을 불러온 것이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상속세 부담에 경영권을 위협받거나 가업 승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설립 30년이 넘은 중소기업 중 대표가 60세 이상인 곳이 81%로, 이 중 절반 이상이 상속세 때문에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매각·폐업을 고려한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최근 글로벌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상속세 때문에 “자녀에게 승계를 하지 못한다”는 답변이 68.6%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에 전체 140명 응답자의 85%는 “상속세의 폐지 또는 최고세율 인하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 선진국은 상속세 폐지 움직임…한국만 논의 더뎌

주요 선진국에서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제 성장의 근간이 되는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현재 32만5000파운드(약 5억3000만 원)를 초과하는 유산에 40%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는 영국은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영국 뿐 아니라 OECD 38개 회원국 중 15개국이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특히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콜롬비아, 코스타리카의 경우 애초에 상속세를 부과한 적이 없다.

캐나다는 1972년, 호주는 1979년, 이스라엘은 1980년도에 상속세를 폐지했고, 뉴질랜드는 1992년, 포르투갈과 슬로바키아는 2004년, 멕시코와 스웨덴은 2005년, 오스트리아는 2008년에 상속세 제도를 없앴다. 체코와 노르웨이도 지난 2014년부터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23개국의 경우에도 직계비속에게는 세율을 경감하거나 면제해주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룩셈부르크, 스위스, 슬로베니아, 헝가리, 리투아니아는 직계비속 상속 시 상속세를 면제해주고 있고, 벨기에, 칠레,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는 직계비속에게 세율을 경감해준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원활한 기업 승계를 위해 상속세를 적정 수준으로 완화하고, 종국에는 이를 폐지하고 주식을 매각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상속세는 부를 축적한 자의 ‘성공’을 처벌하는 ‘징벌적 사망세’”라며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기업을 세워 키웠더니, 국가가 60%를 내 놓으라면 누가 기업을 키우겠냐”고 지적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