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1000억 기부 피해자 보상…법인 설립 등 주인공 행세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어느 식당 종업원이 일하다가 다쳤다. 위중한 상황이라 응급조치를 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다. 그런데 사고 후 종업원과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이 식당 앞에서 시위하기 시작했다. 식당의 작업환경 일체와 식당에서 취급하는 온갖 재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유해물질에 대해 조사하겠다는 피켓을 들고 식당을 비판한다. 또 다른 제 3자가 나서서 종업원에 대한 보상 및 사태 방지를 위해 힘쓰겠다며, 종업원과 식당, 시위꾼들을 불러모아놓고 조정위원회를 연다.

또 다른 제 3자가 제시한 조정안은 가관이다. 종업원과 식당의 의견은 거의 무시되었고 시위꾼의 의견 대부분을 수용했다. 우선 시위꾼과 가까운 몇몇 단체들이 추천한 인사들로 공익단체를 설립한다. 그 단체의 주도 하에 식당을 면밀히 조사하면서 종업원에 대한 보상을 꾀한다. 공익단체 운영비용 및 조사비는 3억 원까지 청구할 수 있다는 게임의 룰을 제시했다. 종업원 보상까지 합치면 10억 원을 요구한다. 보상 후 남는 돈은 공익단체가 멋대로 쓴다.

여기까지 들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도둑놈들 아니냐?”

비유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바로 삼성전자 반도체 관련 직업병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반올림’과 ‘조정위원회’다.

   
▲ 7월 23일 오후 3시 삼성전자와 삼성직업병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가족위),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서대문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직업병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사진=미디어펜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오면서 백혈병 문제를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는 데 힘쓰면서 커진 시민단체다. 현재 반올림에는 피해자 가족들이 거의 없다. 작년 반올림 측이 피해자 및 가족의 뜻을 반영하지 않은 뒤로 당시 반올림 협상단 8명 중 6명은 이탈했으며, 이들은 가족대책위를 구성했다.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가족대책위 뿐이다. 반올림은 반도체 사업장 직업병의 피해를 입지 않은 제 3자 시민단체다.

반올림은 가족대책위의 출범 이후, 가족대책위와 계속해서 의견을 달리해왔다. 가족대책위 인사들은 신속한 보상을 위해 삼성전자와 직접 협상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반올림은 이에 반대했고, 공익법인 설립 후 이를 통한 추후 보상, 삼성전자 작업장에 대한 견제를 계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반올림뿐만 아니다. 가족대책위에게 더욱 어리둥절한 단체는 ‘조정위원회’다.

해당 사업장인 삼성전자, 피해자 측인 가족대책위, 시민단체 반올림 등의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출범한 민간 조정위원회는 최근 피해자 보상을 위해 공익법인을 세우라고 권고했다. 조정위원회가 6개월 만에 내놓은 ‘권고 조정안’에 따르면 공익법인에는 사무국과 하부조직, 상근 임직원을 두게 된다.

공익법인은 (삼성전자보고 내놓으라고 얘기한) 출연금 1000억 원의 30%인 300억 원까지 운영비로 쓸 수 있다. 공익법인의 발기인 및 이사회는 조정위원회가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한변호사협회 등으로부터 추천받아 선정하게 된다. 출범 후 공익법인은 이사회 결의만 있으면, 기금을 출연한 삼성전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관을 개정할 수 있다. 추후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남는 금액이 있다면, 공익법인의 다른 사업 재원으로 사용한다.

가족대책위와 삼성전자가 동의하면 300억 원을 운영비로 쓰는 공익법인이 출범한다. 나머지 700억 원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마치고 나면, 남는 돈이 500억 원이든 600억 원이든 공익법인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사업에다 마음껏 쓸 수 있다. 재주는 삼성전자가 부리고 생색은 공익법인이 내는 격이다.

피해자 측인 가족대책위는 조정위원회가 최근 권고한 조정안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피해 보상이 시급한 상황에서 이런 방식으로는 시간만 허비하고 해결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가족대책위 내부적으로는 조정위나 반올림을 거치지 않고 삼성전자와의 직접적인 양자 협상으로 보상안을 타결하려고 한다.

   
▲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오면서 백혈병 문제를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는 데 힘쓰면서 커진 시민단체다. 현재 반올림에는 피해자 가족들이 거의 없다. 작년 반올림 측이 피해자 및 가족의 뜻을 반영하지 않은 뒤로 피해자 가족들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사진=미디어펜

가족대책위 관계자는 언론에게 “피해자 가족들 사이에 과연 추가조정이 필요하느냐는 회의적인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하면서, “향후 구성원 간 회의를 통해 조정에 대한 의견을 취합해 공식 입장을 발표할 계획”, “(조정위에) 가봤자 반올림과 의결조율이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가족대책위의 이러한 의견은 당연하다. 문제가 있으면 당사자끼리 해결할 문제다. 제 3자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삼성전자도 이러한 원칙을 천명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보상이 삼성전자 백혈병 사태를 매듭짓는 알파요, 오메가이기 때문이다. 반올림과 조정위원회만 사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올림에게 고한다. 반도체 작업장과 무관한 누군가의 직업병에 대하여 보상해주고 싶고, 삼성전자 반도체 작업장 내역을 투명하게 감시하고 싶다면, 법이 허락하는 선에서 자신들의 돈으로 수행하라. 후원회비를 걷어서 하든 다른 회사로부터 기부를 받아서 하든 자신들의 비용과 수고를 통해 하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