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안나는 청국장…전통·문화 되살린 제대로 된 창조경제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박근혜대통령 이번 휴가 독서로 벼락 스타덤 오른 책,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의 핵심어는 단연 소프트파워다. 할리우드나 CNN 같은 콘텐츠와 미디어의 마성적인 힘을 가리키는 이 소프트파워는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거나 부드러운 문화의 힘이라고도 한다.
 
미국인 저자인 에마뉘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도 이 책에서 한국의 문화적 유산을 소개하고, 그것을 어떻게 지키고 살려 나가 널리 알려야 하는지를 중점 설명하였다. 한국의 사랑방 문화, 인문적인 요소가 많은 풍수지리, 선진적인 친환경 농법, 선비 정신 등을 다루었고.

응당 맞는 말이다. 우리가 갖다 버렸거나 아주 오랫동안 기억해주지 않았던 소프트파워, 즉 전통지식과 문화가 너무나 많았다. 그렇게 사금파리 무덤 같이 왕창 버려왔던 전통가치 더미 가운데 가장 친숙한 품목일 수 있는 청국장 케이스를 한 번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름 하여 청국장 분례기다.

경기도 안성 서일농원에서 청국장과 된장을 비롯한 우리 전통 음식문화를 캐고 만들고 되살려 혁신하고 있는 서분례여사 이름을 살짝 패러디해본 이야기다. 오리지널 <분례기>야 1967년 창작과 비평에 올린 방영웅의 소설로서 존재했었다. 1971년에는 영화로 만든 유현목감독의 <분례기>가 윤정희, 이순재, 허장강, 사미자 출연으로 나와 대종상영화제 감독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녹음상, 음악상까지 수상했었다.

그 즈음 흔했다는 여자 이름 ‘분례’로 바로 와 닿는 된장 아줌마 서분례여사는 32년째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에 자리한 서일농원에서 우리 전통 장을 일구어오고 있다. 7만평쯤 되는 이 농원에 2천 개가 넘는 전라도 장독을 들이고 우리 된장과 간장, 청국장 등을 만들어오다 이윽고 1999년에는 기능성 식품 특허를 획득하는 중요한 일을 해냈다.

   
▲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 전통 장 담그기 시연'행사에서 전통 장인인 서일농원의 서분례 여사가 많은 외국인들이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재래메주와 신안 비금도 천일염 등의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장 담그기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분례여사가 만들어낸 달이지 않는 한식간장과 냄새 안 나는 청국장 2개가 바로 우리 한국 전통지식, 전통가치, 전통문화가 공식 인정을 받는 특허 대상으로 당당히 들어오는 큰 업적이되었다. 당시 중앙대, 충북대와 산학협력협약을 맺고 2년 간 무던히도 노력해온 결실이기도 했다.

“교수님들이 우리 농장에 와서 맨 처음에는 날로 자꾸 쏘아 붙이는기라. 내가 청국장도 냄새 안나게 만들 수 있다 말하고 직접 보여주도 안 믿더라꼬. 뭐 다른 거 집어 넌 거 아이냐꼬 의심하고 그랬다 말이제” 청국장 만큼이나 구수하고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당시를 회상하는 서분례 여사의 고군분투 분례기 한 클립이다.

자칭 타칭 된장 박사라고도 하는 서분례여사의 발견은 이렇다. 청국장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던 것은 시골 재래식 제조 과정에서 온도 조절을 못했기 때문이다. 발효하여 살아난 좋은 균과 악취마저 나는 나쁜 균이 뒤섞여 청국장 하면 냄새가 나고 외국에서는 거부하는 이상한 물건이 되어버렸다는 얘기다.

서분례여사는 대학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일정한 온도와 환경 조건을 과학적으로 맞춰 마침내 기능성 식품으로서 한국 청국장을 내놓게 되었다. 2001년에는 미국 FDA로부터 장류 규격인증을 받았고 전통장 경기 으뜸이로 선정되고 우수농업벤처기업, 경기도 지역명품인증도 얻었다.

서분례 여사 분례기는 롯데백화점과 국립암센터로도 이어졌다. “된장이 우리 몸에 좋다는 사실은 아미 다 알려졌다. 그러나 담그는 법도 모르고 담글 시간도 없다보니 사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계화된 공장에서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거나 몸에 해로운 그릇에 담겨진 된장은 자칫하면 아무리 먹어도 섭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만들고 숙성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전하는 설명문에는 전통가치에 대한 소명의식이 그야말로 담가져 있다.

   
▲ 청국장 만들기 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한 유치원생들이 바기지에 퍼온 콩을 숟가락으로 먹어보고 있다./사진=서일농원 홈페이지.
좋은 우리 콩과 전남 영광 광백사 천일염으로 일일이 메주를 쑤고 농원 안 150미터 암반수와 전통 옹기를 총 동원하여 만든 명품 된장을 롯데백화점에 한 통 10만원 넘는 고가로 납품해오고 있다. 이들 명품 된장, 고추장, 간장 장류는 당연히 장아찌류, 매실식초, 멸치액젓, 김장 김치 등 우리 전통 반찬으로 직행해 다변화된 제품으로 내다 팔리고 있다.

지금 구멍가게만도 못한 롯데그룹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몹시도 눈살 찌푸렸던 분들이 그래도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 여겼다면 이는 아마도 롯데백화점 본점 식품관에 와서 직접 장 담그기 시연까지 해온 서분례여사 같은 분들의 정성 때문이 아니겠는가 싶다.

분례기는 국립암센터로도 들어간다. 우연찮게 특강을 갔던 서분례 여사는 암환자들에게 청국장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펑펑 울고 왔노라고 전한다. 비공인 ‘조선 3대 구라’쯤 쳐줄 언변에 쇼맨십까지 겸비한 호탕한 영덕댁 서분례여사는 환우들에게 “병이라는 걸 누가 줬니껴? 신이 나한테 준 겁니꺼? 내가 내 자신한테 던져 준 겁니꺼? 이 못된 병이 들어왔으면 지지 말고 싸워 물리쳐야 될 거 아입니꺼”.

이렇게 만사 의욕을 잃어버린 환우들에게 울분을 퍼 부은 서분례여사는 청국장 한 종지씩 전해주고 왔다. 우리 전통 가치, 소프트파워 청국장으로 한 번 병마와 맞서 싸워 보라는 메시지였다. 청국장으로 생기를 찾은 이들이 많아지자 서분례여사는 청국장 효과를 극대화하는 급랭고까지 설치해주며 더 많은 우리 장류를 암센터에 공급해오고 있다.

   
▲ 일본 나고야 TV에 방영되는 서일농원. 사진=서일농원 홈페이지.
이 극성맞은 삼복더위에도 분례기는 계속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중국어 표지판 등을 더 세웠고 우리 콩으로 두부 만들기, 만든 두부를 우리 간장, 우리 김장 김치로 시식하기, 가마솥에 콩 익혀 메주 쑤고 청국장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나날이 키우고 있다. 전통지식 특허 분야 우수 사례로 꼽혀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등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관련 연구를 해온 한국식품연구원 장대자 박사는 “우리 김치나 된장 등 음식문화 자원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우월한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건강에도 좋고 수많은 종류와 기법이 분화되어 있어 다양하고도 새로운 가치를 지니고 있지요. 그런데도 사회적 관심이 너무 없어져 사실

서분례여사 경우만 해도 우리 전통 장류와 백련차, 반찬 등 국보급 문화를 아주 외롭게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전한다.
그러니 식당도 겸한 7만평 서일농원 한 해 매출은 어찌 보면 초라하다. 20억 원 정도. 청국장 팔고 체험 프로그램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현상 유지마저 어려울 정도다. 조경 소나무 한 그루씩 내다 팔아 간신히 농원 경영을 지킨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농원 사람들의 분례기는 지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요즘에는 된장 소스 발라 살짝 구운 돼지불고기 메뉴를 한창 밀고 있다. 캠핑이다 바비큐다 해서 고기를 태워 먹는 식습관이 국민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널리 알리겠노라는 취지다. 고기를 삶아 먹거나 철판에 익혀 먹는 현명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이론적으로 주장하는 대신 여기 분례기 주역 서일농원 사람들은 전통 장류로 입힌 신메뉴를 개발해 선보이는 중이다.

한국인만 몰랐던 우리 전통 가치. 어디 멀리서 찾을 것 없다. 청국장에서 바로 출발해 냄새 안 나게 특허내고 전통지식으로 지식재산권 만들어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수출하는 실천 실행을 돕고 확산시켜야 할 때다.
제 아무리 거창한 문화융성도 창조경제도 청국장 메주 한 쪽 제대로 지키고 만드는 땀방울에서 출발한다는 엄연한 진리를 안성 서일농원 현대판 분례기에서 깨닫게 된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