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 예산안 처리, 여야 정쟁에 가로막혀 또 법정 시한 넘겨
이동관·검사 탄핵안 이어 쌍특검 등 갈등 요소 여전…준예산 우려도
"비리 방탄 본회의" vs "책임 회피 협상 지연"...지각 예산 네 탓 공방
[미디어펜=이희연 기자]657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또 법정시한(12월 2일)을 넘겼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현직 검사 등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주도한 탄핵 정국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민생이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오는 9일이 정기국회 종료일이지만 민주당이 추진중인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과 해병대 채상병 순직건 국정조사 등 대치 국면이 이어지고 있어 이때까지도 예산안 협상은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은 656조9000억원으로 규모다. 앞서 여야는 지난달 13일부터 24일까지 예산안 조정소위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심사했다. 하지만 일부 감액 심사만 마쳤을 뿐 증액 심사는 손도 대지 못했다. 연구개발(R&D) 예산과 검찰·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와 등 쟁점 사안에 대해 사사 건건 부딪히면서다.

최대 쟁점은 연구개발(R&D) 예산이다. 정부와 여당은 R&D 예산 증액 최소화를 주장했지만 야당은 지난달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안 심사 소위에서 원안보다 8000억원이나 늘려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국제협력 예산 1조1600억원 삭감하고 대신 연구기관 운영비·학생 인건비 2조 규모 증액했다.

   
▲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12월1일 국회에서 열린 의회 폭거 대응 비상의원총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법무부·감사원 등 사정 기관의 특수활동비 규모를 두고도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검찰 특활비 80억9000만원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세부내역을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또 감사원 특활비 15억1900만원에 대한 감액도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 원전 예산안과 예비비 등을 두고도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예비심사 단계에서 원전 관련 예산 1890억원을 삭감했다. 예비비의 경우 정부가 올해 4조6000억원이었던 예비비 예산을 내년에는 4000억원(8.7%) 늘려 5조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예비비 규모가 지나치게 많다며 2조원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에는 새해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12월 2일까지는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지만 여야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법정 시한을 지키기 못했다. 지난해에도 국회는 법정 처리시한이 22일 지난 12월24일 본회의에서 가까스로 처리했다. 이는 선진화법 시행(2014년) 이후 가장 늦은 예산안 처리로 기록됐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까지 만들어진 이후 예산안 시한이 지켜진 것은 2014년과 2020년 두 번 뿐이다. 

정기국회 종료일인 오는 9일까지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연말까지 임시국회를 열어야 하지만 문제는 정국 상황이다. 민주당은 오는 8일 열릴 본회의에서 쌍특검법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처리할 예정이다. 또 민주당은 제2, 제3의 방통위원장도 탄핵하겠다고 어깃장을 놓고 있어 예산안 협상은 사실상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새 회계연도 개시(2024년 1월1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하지 못하면 '준예산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예산안 지각 처리와 관련해 여야는 서로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민주당이 예산안 처리용 본회의를 비리 방탄 본회의로 오염시켜 또다시 법정 처리 시한을 어겼다"라며 "국가 예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쌈짓돈, 민주당의 홍보 예산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월 1일 국회 로텐도홀에서 열린 거부권 남발 규탄 및 민생법안 처리 촉구 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그러면서 "법을 만드는 입법 기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어 참으로 유감"이라며 "시장원리에 반하는 이재명 대표의 생색내기 억지 예산을 관철하기 위해 민주당이 몽니를 부려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늦어진 데 대해 정부‧여당이 책임 회피와 협상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예산안 처리 방해, 민생 입법 발목잡기, 상습적인 거부권 남발, 국정을 이렇게 무책임하게 청개구리처럼 운영해서야 되겠나”라며 "정부‧여당의 반성, 그리고 민생예산 입법 처리에 협조를 다시 한 번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 삶을 무한 책임져야 할 정부·여당이 국정 책임을 무한 회피하고 있다"라며 "정부·여당의 민생 외면 때문에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이 올해도 지켜지지 않았다. 공정방송법, 합법파업보장법(노란봉투법)은 거부권에 가로막혔고 법제사법위원회에선 400건 넘는 법안이 발목 잡혔다"라고 책임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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