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호(號)는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다. 팬데믹의 무시무시한 손아귀에서 벗어나면 모든게 잘풀릴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각종 경제지표가 후진하는 가운데 서민물가는 연일 치솟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기득권지키기에 몰두하며 안개를 흩뿌린다. 세계는 두 개의 전쟁 속에 신음하고 있지만 전망은 어둡다. 마치 동굴을 지나는 묵직한 무게감과 어둠의 불편함이 엄습한다.

어두침침한 동굴을 지날 때 그나마 안심인 건 곳곳에 놓인 등불이다. 작지만 굽이굽이마다 준비된 작은 등불이 있기에 발걸음은 가볍다. 카타콤같은 거대 지하도시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작은 등불로 정비된 사통팔달의 교통망이었다고 하지 않던가. 대한민국 언론시장에서는 4000여 개의 중소언론이 작은 등불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게중에는 등불을 밝히는 기름이 떨어졌거나 심지가 불량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1000여 개 정비된 중소언론은 중앙중심의 거대담론이 비켜가는, 기득권과 궤를 함께하는 획일화된 여론을 각성시킨다. 변곡점과 임계점에서 작은 불빛으로 사회의 건강성을 책임진다. 불빛이 작다고 어둠을 물리치지 못하는게 아니다. 또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이웃의 시점에서 동고동락하는 언론 역시 이들 이다.

현재 카카오(다음)와 뉴스검색제휴를 맺고 있는 중소언론사는 1176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뉴스노출에 따라 수익을 제공받는 뉴스제휴언론사(CP사)는 146개에 불과하다. CP사를 제외한 언론사들은 다음이라는 포털(관문)을 이용하며 포털에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할 뿐 아무런 수익이 없다. 다만 대한민국 언론시장의 구조적 병폐인 과잉지배 포털을 통한 뉴스제공 시스템에서 탈피하지 못한 원죄로 인해 다음과 네이버의 눈치만 보는 실정이다. 뉴스소비자 대부분이 포털을 이용하는 뉴스시장의 현실은 이들 포털의 입점이 언론사의 생존을 가른다. 아웃링크 즉 언론사를 찾아 직접 들어오는 뉴스소비자가 극히 미미한 형편에서 이들 포털 사업자들은 언론시장을 휘두르는 권력이 된 지 오래다. 

   
▲ 현재 카카오(다음)와 뉴스검색제휴를 맺고 있는 중소언론사는 1176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뉴스노출에 따라 수익을 제공받는 뉴스제휴언론사(CP사)는 146개에 불과하다. CP사를 제외한 언론사들은 다음이라는 포털(관문)을 이용하며 포털에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할 뿐 아무런 수익이 없다.

지난 11월 23일부터 다음 뉴스를 검색하면 150여 개 언론사의 뉴스만 제공된다. 다음이 뉴스검색시 노출되는 기본값을 변경해 CP사의 뉴스만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뉴스소비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1200여 개에 달하는 뉴스검색제휴 언론사가 다음 뉴스시장에서 퇴출된 것이다. 물론 다음은 기본값을 ‘전체’로 변경하면 뉴스검색제휴 언론사의 기사도 노출된다고 하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변명이다. 다음 뉴스 첫 화면에서 사라진 1200여 개 언론사 기사는 특종을 해도 검색창을 통해 기사를 찾지 않으면 묻히고 만다. 또 AI와 Chat-GPT의 빠른 속도로 새로운 생성형 뉴스를 추구하는 뉴스소비자들이 뉴스화면 중심을 벗어나 조그만 글씨인 ‘전체’를 찾아 클릭하고 타 매체의 뉴스를 검색하겠는가. 이미 비교우위를 떠나 관련 뉴스를 섭렵했는데 말이다. 또 이러한 전체뉴스 설정도 1개월의 만료 시한이 있다니 꼼수라는 지적이 따른다. 

다음의 기습 조치에 대한 반발은 예상을 넘어선다. 검색제휴 언론사들의 생존이 걸렸기 때문이다. 국내 인터넷신문사들의 모임인 한국인터넷신문협회(회장 이의춘)는 “국민들의 다양한 뉴스선택권을 원천봉쇄한 포털사이트 다음의 악행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즉각 법적대응에 들어갔다. 협회 소속 28개 언론사들은 지난 1일 “뉴스검색 기본설정을 CP사로 한정하는 조치를 중단시켜달라”며 다음 운영사인 ㈜카카오를 상대로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또 협회는 카카오의 CP사 위주 뉴스노출은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으며 공정성을 요구하는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 조사도 방송통신위원회에 요청했다. 11일에는 경기도 판교의 카카오 사옥 앞에서 규탄시위를 벌였다. 

법조계는 관련 소송에서 다음측이 불리할 것으로 예상한다. 법률전문가들은 다음측 행위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과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실정법인 정보통신법, 공정거래법, 전기통신사업법 등의 위반도 다툼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유사한 사례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다음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와 다음이 운영 중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가 공정한 평가를 이유로 특정 매체와 제휴계약을 해지했으나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1부(박태일 부장판사)는 W인터넷 신문이 네이버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이행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W인터넷신문은 2021년 제평위로부터 재평가 대상이 됐으나 법원은 “인터넷 신문사로서 네이버와 제휴계약이 해지되면 사실상 공론장에서 퇴출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이로 인해 사후적인 금전적 배상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W인터넷신문의 손을 들어주었다.

종합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 역시 CP 계약을 해지한 네이버, 카카오를 상대로 낸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서 승소한 바 있다. 특히 연합뉴스의 사례는 보도자료를 일반기사처럼 탈바꿈한 기사형 광고를 지속 송출한 행위로 누구나 연합뉴스의 패소를 예상했으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당시 재판장 송경근)는 연합뉴스의 편에 섰다. 이 재판부 역시 “뉴스 시장에서 포털의 위상과 비중은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한다”며 “본안 소송에서 해지 통보의 위법 여부에 관한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그 효력을 정지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 쭉정이와 알곡을 구별하는 권리는 최종적으로 뉴스소비자에게 주어져야 한다. 다음의 조치가 철회되지 않으면 축소된 언론지형에서 다양한 소수로 분류된 다수의 목소리는 배제될 것이다.

다음의 무리한 행위에 대한 반발과 공동대응은 보수와 진보매체가 함께한다. 특히 매체들은 다음의 정치적 행위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이 ‘가짜뉴스 퇴출’, ‘공정언론 만들기’ 차원에서 운영중이던 제평위가 사실상 폐지된 상황에서 다음의 발작적 이번 조치는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는 의심이다. ‘뉴스토마토’는 다음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이 수사를 받는 것과 관련 “정권에 비판적인 중소 언론사의 ‘언로’를 막는 등 정부 압박에 굴복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뒤따른다”고 주장했다. 창업자를 구하려는 다음측이 총선을 앞두고 가짜뉴스 척결을 명분으로 ‘반(反)정부적 인터넷매체 죽이기’에 나선 정권에 영합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으며 언론시장에 몸담는 대부분은 이러한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무엇보다 대형 언론사는 정론이고 중소언론사의 기사는 품질이 떨어진다는 세평은 뉴스시장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대형언론사들이 기득권과 야합함으로 인한 피해는 우리 근현대사에 그대로 노정돼 있으며 정론을 지키려는 중소언론사의 노고가 작금의 시대를 열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원칙과 공정이 지켜지는 사회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헌법적 지위가 보장되고 국민의 알권리가 적극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쭉정이와 알곡을 구별하는 권리는 최종적으로 뉴스소비자에게 주어져야 한다. 다음의 조치가 철회되지 않으면 축소된 언론지형에서 다양한 소수로 분류된 다수의 목소리는 배제될 것이다.


미디어펜=김진호 부시장 겸 주필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