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라덕연‧하반기 영풍제지 사태…금융당국 '공매도 전면금지'
올 한 해 국내 증시는 작년의 하락분을 상당 부분 회복하며 견조한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주가폭락 및 조작 사태 등으로 많은 투자자들의 근심이 깊어진 기간이기도 했다. 2차전지와 인공지능(AI)에 대한 기대감은 시장을 설레게 했고, 연말엔 다시금 도래한 ‘반도체의 시간’이 내년 흐름을 낙관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 금융당국은 신규상장주(IPO) 가격변동폭 확대‧공매도 전면금지 등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았고, 업계는 달라진 시장상황에 면밀히 대처하기 위한 임직원 세대교체에 돌입했다. 미디어펜은 5회에 걸쳐 2023년 국내 증시 주요 이슈를 되돌아 본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지난 4월 24일. 우리나라 주식시장 거래창에 보기 드문 현상이 관찰됐다. 선광‧세방‧삼천리‧대성홀딩스‧서울가스‧다우데이타‧하림지주‧다올투자증권 등 8개 종목이 일제히 하한가 혹은 두 자릿수 이상의 폭락세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 올 한 해 국내 증시는 작년의 하락분을 상당 부분 회복하며 견조한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주가폭락 및 조작 사태 등으로 많은 투자자들의 근심이 깊어진 기간이기도 했다./사진=김상문 기자


이 종목들에는 석연찮은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 한국SG(소시에테제네랄)증권 창구를 통해 대량 매도물량이 나왔다. 그리고 최근 몇 달간 주가가 우상향을 그리며 신고가를 경신해 왔다. 일부 종목의 신용잔고비율이 10% 이상 수준으로 매우 높았다는 점도 특이사항이었다. 서울가스, 대성홀딩스, 삼천리 등 3개 종목의 시총은 이후 약 3주에 걸쳐 73∼81% 증발했다.

결과적으로 이 때의 폭락사태는 소위 ‘라덕연 사태’로 비화된다.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 주가조작 일당이 수 년 간에 걸쳐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조용히 주가를 끌어올려온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사태에는 가수 임창정 씨 등 유명인들도 연루가 됐고, 사태 초기 라 씨가 스스로 ‘피해자’를 자칭하며 언론 인터뷰를 하는 등 본질이 호도되는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

사태 이후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장외파생상품인 차액결제거래(CFD)였다. 라 씨 등이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주식 가격변동 위험에 투자해 차액을 얻는 CFD를 활용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금융당국이 관련 제도 보완에 나섰다. 

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8월31일까지 일선 증권사들의 CFD 신규거래를 전면 중단시키고 관련 제도 보완에 나섰다. 현시점 다수 증권사에서 CFD 거래가 재개된 상태지만 여전히 사태 여파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라덕연 사태에는 CFD 말고도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바로 ‘공매도 금지’다. 문제가 된 종목들이 모두 공매도가 제한된 상태였기에 수년간의 주가조작을 막을 길이 제한됐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매우 강력한 수사에 나섰음에도 올해 10월 비슷한 방식의 ‘영풍제지 사태’가 또 터졌다는 점이 이 논리를 뒷받침한다. 10월 중순 영풍제지는 무려 6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며 주가가 폭락했고, 시총은 10분의 1로 줄었다. 연말이 된 지금까지도 주가는 여전히 같은 수준을 맴돌고 있고, 거래량도 거의 증발해버린 상태다.

일각에선 공매도 제도를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지 않으면 제2, 제3의 라덕연‧영풍제지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달 금융당국은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전면금지’라는 초강수를 두며 반대 방향의 정책을 택했다. 내년까지 공매도 제도의 허점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다. 

당국의 선택에 대해 ‘총선용 정책’이라는 비판은 여전히 나오고 있는 상태다. 결국 내년까지 공매도와 관련된 논쟁은 치열하게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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