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재·보궐 선거 참패 후 출범 박근혜 비대위, 유일한 성공사례
박근혜, 현역 대거 물갈이·중도층 외연 확장...전권 쥐고 전방위 쇄신
당내 "정치 경험 있고 대통령실에 다른 목소리 내야" vs "새인물 한동훈"
[미디어펜=이희연 기자]집권 여당 국민의힘이 총선을 4개월 앞두고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를 선언했다. 보수 정당 통틀어 11번째 비대위다. 이런 가운데 비대위의 성공 조건은 무엇인지 정치권의 관심이 쏠린다. 

과거 성공한 비대위로 평가받는 건 지난 2011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박근혜 비대위' 뿐이다. 성공한 비대위는, 당 내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공천권 등을 강력하게 행사했다는 점이다. 실제 박 비대위원장은 당시 당내 주류 세력이었던 '친이계(친이명박계)' 의원들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등 전권을 쥐고 당 쇄신을 이끌었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1년 당시 한나라당은 그해 10.26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이후 홍준표 당 대표와 지도부는 모두 사퇴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가 계파 갈등이 극심하던 시기에 차기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 윤석열 당선인이 4월12일 대구 달성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인수위 제공


당 쇄신을 위해 등장한 박 비대위원장은 전권을 쥐고 전방위 쇄신의 칼을 빼들었다.우선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현역들을 대거 물갈이하는 등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또한 경제민주화를 표방하며 중도층 외연 확장에도 힘썼다.

특히 박 비대위원장은 철저한 '시스템 공천'을 실천했다. 당시 공천위원회는 과거 전례가 없었던 '하위 25% 컷 오프 룰' 적용과 서울 강남지역의 현역의원을 전원 교체했다. 또 비례대표 의원들의 강세지역 출마 배제 등 앞서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개혁 공천을 목표로 논의를 거쳐 확정한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했다. 

그 결과 2012년 4.11일 치러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6석을 얻어 과반 승리를 이뤘다. 비대위 출범 100여일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이후 대선에서 박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정권 유지에도 성공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총선 승리 후 기자회견을 통해 "새누리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비대위를 만들고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온 지 100일이 넘었다"라며 "여기서 또다시 과거의 구태로 돌아간다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각오로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다. 국민 여러분에게 약속했던 모든 것을 실천에 옮기겠다"라고 밝혔다.

현재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후보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당 내에서는 비대위가 성공하려면 계파를 떠나 대통령실에 당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강단있는 인물이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재섭 도봉갑 당협위원장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2년 박근혜 비대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이명박 대통령을 치받을 수 있는 여당 인사였고 비대위 구성에서 20대의 이준석, 경제민주화를 외친 김종인 같은 파격적 인사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나물에 그 밥으로 구성된 비대위는 또 다른 비상상황을 만들 뿐"이라며 "우리 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것이지 '현상유지위원회'를 꾸리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비대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첫째, 정통 보수 세력 중 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 그래야 논란의 소지가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정치를 좀 많이 한 사람이 돼야 한다. 비대위원장은 선대위원장하고 또 다르다. 당 내부를 잘 추스려야 하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어느 정도 정치를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최소한 용산 대통령실의 얘기를 호락호락 듣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희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