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기업 지원·독려…선택은 언제나 기업 스스로 결정

자유경제원은 13일 ‘해방 70년, 광복 67주년’ 기념 특별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송복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와 복거일 작가의 기조강연에 이어 Session 1-‘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의미’, Session 2-‘대한민국–시장경제를 택해 부국을 이루다’로 나뉘어 진행됐다.

세션 1은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사회로 ‘대한민국 역사’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의 ‘건국의 역사적 의의와 현실’이라는 주제 발표에 이어 강규형 명지대학교 기록대학원 교수, 류석춘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 원장, 이명희 공주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이한우 조선일보 문화부장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세션 2는 박동운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사회로 김학은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대한민국-시장경제를 택해 부국을 이루다’는 주제 발표에 이어 김승욱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조우석 문화평론가가 토론을 펼쳤다.

자유경제원은 “해방 후 3년 만에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건국은 극심한 좌우 갈등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념으로 하는 근대국가를 세웠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며 “광복 67주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아래 글은 김승욱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의 '한국경제성장이 정부가 주도했기 때문인가?'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 주]

   
▲ 자유경제원은 지난 13일 ‘해방 70년, 광복 67주년’ 기념 특별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승욱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한국경제성장이 정부가 주도했기 때문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한국의 고도성장이 정부의 간섭과 개입 덕분인지 아니면 시장경제를 했기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견해차이가 있다. 신고전학파 주류경제학에서는 정부의 시장개입이 인정되는 부분은 시장실패의 경우에만 한정된다. 이에 반해서 케인즈경제학의 수정주의에서는 정부의 개입을 시장실패 이외의 경우에도 가능하다고 확대시켰다. 한국의 고도성장의 원인이 정부 주도적 산업정책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시장경제를 실시했기 때문인지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다르다.

I. 정부가 주도해서 성장했다는 견해

많은 연구자들이 고도성장기 박정희식 성장모델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국가주도적 불균형 발전전략이라고 인식한다. 정부가 부족한 자본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은행을 독점하여 자원배분을 장악하고 산업의 전후방 연관효과가 높은 산업을 지정하여 의도적으로 불균형발전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슷한 동아시아 모델 중에도 한국의 정부개입이 가장 컸으며 따라서 가장 중상주의적라고도 한다.

19세기 유럽의 산업화 유형을 통해서 후진도가 클수록 산업화에서 차지하는 국가의 역할이 커진다는 주장을 했던 거센크론(Gerschenkron, 1966)도 후발국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불가피하다고 주장을 했다. 그래서 일본의 성장전략을 모방한 한국의 경우도 일본보다 한국에서 국가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암스덴(Amsden, 1989)은 학습을 통한 공업화와 정부의 개입을 강조한다. 한국 정부는 시장에 개입해서 상대가격을 왜곡시켰으며 재벌을 육성했고, 기업을 규율했고 보조를 효율적으로 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고도성장기 박정희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9년 이상 최장수 권력의 중심을 지키면서 박정희 경제사령부의 참모장의 역할을 했던 비서실장 김정렴(1993)은 암스덴과 함께 세계은행이 동아시아의 교훈(Lessons from the East Asia)이란 주제로 개최했던 국제세미나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을 국가주도적 성장이라고 주장했다.

고도성장기 경제성장모형을 박정희-김정렴(청와대)-오원철(상공부)의 3두체제로 설명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또 하나의 인물 오원철(1995-96)은 전5권으로 되어 있는 <한국형 경제성장: 엔지니어링 어프로치>에서 철저하게 계획된 산업정책의 힘에 의해서 한국경제가 성장했으며, 자립발전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조순은 한국의 경우 고도성장기 정부의 역할이 더욱 구체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대만이나 인도의 경우 경제계획이 ‘지시적 계획(indicative plan)’이었는데 반해, 한국은 ‘실행계획’이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단순히 지시만 한 것이 아니라 경제기획원을 만들어서 중앙집권적인 통제와 지도를 했으며, 주요산업에 대한 투자 목표(industrial targeting)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재정, 금융상의 모든 지원을 했다. 기업의 소유는 사유이지만 경영은 정부와 소유자가 공동으로 하는 일종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authoritarian capitalism)’였다고 평가했다.

안충영(2000)은 일본은 영국에 비해 120년 뒤늦게 국가주도적으로 서구의 기술을 도입, 흡수 개량하는 케치업(catch-up) 전략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으며, 한국 등 동아시아 선발신흥공업국들도 역시 정부주도의 중화학 공업화, 산업정책, 등으로 일본의 뒤를 따라가고, 다시 그 뒤를 말레이시아 등 동아시아의 후발신흥공업국가들이 따라가는 형태가 기러기 나는 모양을 닮은 안행형(雁行型) 경제발전의 모양을 보인다고 했다.

최근에 한국의 경제성장이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정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견해는 장하준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장하준은 가장 자유주의적이라고 하는 미국도 19세기에 보호무역 등 각종 산업정책을 사용했으며, 일본, 프랑스, 필란드, 오스트리아 등 선진 민주국가에서도 산업정책으로 많은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 나라들은 공기업이 경제발전의 첨병역할을 했고, 오스트리아의 경우에 공기업 지주회사가 최대의 기업집단이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민주적이고 투명한 방법으로 산업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산업정책의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과잉투자의 원인에 대해서 자동차, 반도체 등 대규모 장치 산업에서 설비투자 조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잉투자가 문제였으며, 기술개발정책이 미흡해서 신제품 개발이 늦어서 일본에 대해 부품의존도가 늘어났고, 이러한 것들이 외환위기의 요인들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많은 연구가들이 산업정책은 산업정책이 후발국의 이륙단계까지만 필요하다고 인식하는데 반해서, 장하준은 시장발전 단계에 관계없이 산업정책은 항상 필요하며,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제2의 추격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후진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산업정책은 필요하다는 유치산업보호론과 선진국 따라잡기 이론 등을 통해서 많이 제기되었다. 특히 비교우위란 자연적으로 형성되기도 하지만, 정책적으로 비교우위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그럴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강조된다. 또한 규칙보다는 정부의 재량적 판단이 중요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한국에서는 시장경제제도가 미흡했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성장은 정부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인식도 있다.

   
▲ 자유경제원에서 열린 ‘해방 70년, 광복 67주년’ 기념 특별토론회.
II. 시장경제를 했기 때문에 발전했다는 견해

이에 반해서 전용덕·김용영·정기화(1997)는 1960년대에 수립된 대부분의 경제정책은 기업을 돕고 시장경제의 인프라를 준비하는데 역점을 두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부가 시장의 자원배분에 깊숙이 개입하여 많은 비효율을 초래했기 때문에 정부가 경제성장에 끼친 순효과는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정부개입이 너무 극심해서 많은 자원의 낭비를 초래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중화학공업화 정책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고도성장기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견인차는 기업과 기업가활동이었고, 그 중에서도 대기업의 빠른 성장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민경국(2005)은 박정희 시대의 정부주도형 모델이 번영을 가져 왔다는 주장은 착각이며, 반대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부추겼기 때문에 한국경제가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많은 학자들이나 그 시대에 경제정책을 주관했던 정책 입안자들은 개별경제주체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결과, 즉 ‘자생적 질서로서의 시장경제의 역할’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손쉽게 한국경제발전의 원인을 정부의 역할 때문이라고 결론을 맺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진정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조직화된 정부가 아니라 경제주체들의 의욕과 이를 부추기는 인센티브로서의 제도이다.

민경국(2005)은 하이에크를 인용하여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조직화된 정부활동과 경제적 성과는 기록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성공하면 모든 것을 정부의 역할 탓으로 돌리기 쉽다. 그러나 개별경제주체들의 활동은 분권적이고 “현장지식”이기 때문에 기록이 없어 자생적으로 생겨난 경제성장의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로 인해 역사를 기술할 때 정부의 역할이 과장되며 경제적 번영이 정부의 조직화된 활동의 결과로 오해한다. 바로 이런 오해가 박정희 시대의 개발모델에 대한 해석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민경국(2005)은 고도성장기 한국경제의 성공요인은 그 시대에 일하고자 하는 의욕, 잘살아보겠다는 의욕이 대단히 높았고, 개방이 되었으며, 일 할 인센티브가 주어졌기 때문에 즉 시장경제 때문에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에는 도시든 농촌이든 어디를 가든지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가 불렸으며, 경제성장 제일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민경국(2005)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정신, 가정에 대한 책임감,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 이런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 주는 체제였기 때문에 성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돈벌이에 대한 존중, 친 기업정서, 재산권 보호, 재산권에 대한 존중 등, 이런 시장경제의 도덕적 기초가 성장을 가져온 중요한 요인으로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정부가 주도했기 때문에 한국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민경국(2005)은 정부가 주도한 중화학공업육성 정책과 그 밖의 인위적 성장을 위한 각종 특혜는 오히려 성장을 까먹은 것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주의만 없었다면 정경유칙과 IMF 경제위기도 없었을 것이며, 부정부패도 없었을 것이고, 부의 축적에 대한 좌파의 시시비비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경국(2005)은 국가주도적 발전이 가능하다는 인식은 잘못된 낭만적인 국가관과 인간 이성에 대한 무제한적 신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경제하려는 의지를 중요하게 인식한 연구들은 여러 문헌에서 나타난다. 조순(1991)도 한국경제성장의 대내적 요인으로 첫째로 “국민이 경제생활에 대해 강한 의욕과 굳센 ‘살아남고자 하는 성벽(survival trait)’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정부도 ‘경제제일주의’의 정책기조를 가지고 있었던 점을 높은 교육수준과 함께 중요하게 꼽았다.

경제성장에서 경제주체들의 의지 등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은 1993년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노스의 연구에서 중심 주제이다(김승욱, 2006). 노스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경제성장의 요인으로 제시하는 노동이나 자본 등 생산요소의 투입, 기술혁신, 상품생산의 발전, 교육 등의 요소들은 경제성장의 요인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동의어이므로 성장요인들로 이러한 요소들을 언급하는 것은 동의반복(tautology)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요인들 이전에 경제성장을 가져온 더 근본적인 이유는 효과적인 제도의 창출이라고 했다.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보다 교통법규를 잘 안지키는 이유는 한국사람들의 인간성이 더 범죄형이라서가 아니라 미국 경찰에 비해서 한국 경찰이 교통법규 어기는 것을 엄하게 적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효율적인 제도의 가장 기초를 이루는 것은 경제주체가 자신의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개인적 자유를 보장하고 사유재산권을 보장하여 주는 것에서 출발된다. 그리고 각 주체는 경쟁을 하고 차별화를 통해 효율성을 달성한다. 정부는 자유로운 경제주체들이 공정하게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불필요한 암묵적 비용인 거래비용을 가능한 줄여주는 각종 제도가 확립될 때 경제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여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보호하고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를 창출한 사회에서 경제적 성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저개발국이 성장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지 못하고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막는 기득권이 존재하며 자신의 노력의 결과를 자신이 누리도록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주체가 최선을 하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다.

한국이 고도성장기에 국민과 정부가 일체가 되어 ‘잘 살아보세’ 이데올로기 또는 성장제일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은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를 생산요소나 기술 등으로 파악하지 않고 이데올로기나 문화 등의 비공식적 제도로 보는 노스의 시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전용덕등(1997: 369)은 한국경제성장의 결정요인 중에서 자리(self-interest)의 추구, 한국전쟁, 그리고 1960년대의 경제제일주의가 가장 중요한 비공식적 제약조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1950년대에 중요한 사유재산권 제도가 확립된 것도 역시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정부의 시장개입은 거래비용을 증폭시켜 자원배분을 왜곡시킴으로서 비효율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가장 큰 부작용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은행 국유화 등으로 인한 금융부문의 낙후이고, 뿐만 아니라 사회간접자본과 기초소재 산업 등을 국유화함으로써 독점에 따른 내부 비효율을 양산했다. 또한 중화학 공업화 과정에서 중복투자로 상당한 기간동안 부실기업 문제가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정부만능주의에 빠져서 모든 문제를 규제로 해결하려고 규제가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내어 시장원리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었다. 개혁 대상인 정부가 개혁의 중심에 서려고 하고, 기득권 계층을 양산해 내는 부작용 등이 지적되었다.

정기화(1997)는 정부가 금융시장에 개입하여 금융산업이 낙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개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개입의 방식이 비효율을 줄이도록 하는 독특한 방식이었기 때문임을 강조했다. 첫째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본배분의 기준이 자의적인 정부관리의 판단이 아니라 수출목표의 달성 즉 기업의 성과와 연동을 시켜서 했기 때문에 그래도 시장의 방법을 원용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산업화 초기부터 외국 차관을 통해 자금조달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투자로 이어져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적었고, 채무불이행에 대한 정부의 부담이 컸기 때문에 정부가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관리할 수밖에 없어 정치적 영향력을 배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외자를 공여한 측에서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있는지 관리하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외자도입에 의한 자금조달이 효율적으로 활용되도록 한 측면이 있었다. 셋째로 정부가 강력한 감시 및 평가제도를 유지해서 기업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 강력하게 통제했다. 정부는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자금이 생산적인 곳으로 투자되는 것을 항상 관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자본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관치금융 하에서도 한국의 경우 비교적 정부개입의 비효율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개입에 의한 자본배분이 시장보다 더 효율적이어서가 아니라 정부가 분배했지만 시장의 기능을 활용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해방 70년, 광복 67주년’ 기념 특별토론회 참석자.
III. 고도성장기 정부개입에 대한 평가

정부가 간섭을 잘 해서 경제가 성장한 것인가, 아니면 시장경제를 했기 때문에 간섭에도 불구하고 성장한 것인가? 이것은 선언적으로 주장은 할 수 있지만 계량화해서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수정주의자들도 시장의 기본적인 역할은 인정하는 편이며, 신고전학파 학자들도 산업정책의 역할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예를 들면 세계은행(1993)의 <동아시아 기적(East Asian Miracle)>에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공 요인을 고율의 저축과 민간투자, 인적자본의 적극적 육성, 경제기초변수의 건실한 유지, 효율적 산업정책 등 효율적 지원을 통한 수출주도적 전략, 사회간접자본의 개발, 외국기술의 적극 도입, 개발을 선도하는 금융기관의 육성을 지적했다(World Bank, 1993). 여기에서도 저축과 투자, 인적자본, 사회간접자본, 기술도입 등 시장경제적 요인과 정부의 적극적 인재 육성, 효율적 산업정책 등 정부의 역할이 언급되고 있다. 중요한 차이점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요인인가 하는 점이다.

고도성장기 한국정부의 시장개입이 기본적으로 반시장적이거나 반자유적이었는가? 자유주의자들이나 시장논자들도 정부의 시장 개입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는 일은 정부가 할 일이다. 즉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여 효율성을 제고하게 하기 위해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 또한 각종 미비한 법과 제도를 갖추고 화폐의 가치를 안정시키며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이다.

시장경제의 법과 질서의 틀 안에서 기업 등 경제주체에게 경제활동의 자유를 주어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면 시장경제의 틀을 유지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재산권의 행사에 대해 침해와 간섭을 받지 않을 소극적 자유를 말한다. 따라서 정부가 기업에게 기업이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를 주었느냐 안 주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업활동의 과실을 누릴 수 있도록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의 소극적 자유가 보장되고, 그리고 진입의 자유와 국제경쟁에의 노출 등을 통해 경쟁을 유지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의 간섭을 구분해보자. 첫째는 시장질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법과 제도를 만들고, 세우기 위한 역할이 있다. 둘째는 정부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업들에게 규제를 하거나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있다. 셋째는 정부가 평등주의에 입각해서 재분배를 위해서 기업 등에 많은 세금을 부여하여 그것으로 복지정책 등 재분배를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있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정부의 시장 개입 중에 첫 번째의 것은 자유주의자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서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한 각종 제도를 신속하게 제정하고 보완해간 것은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이다. 또한 자본시장의 미발달에 대응하여 장기투자를 위한 산업은행의 설립도 그 한 예이다. 금융시장은 시장실패의 요인이 많으므로 정부가 시장규율을 확보하고 경제의 안전성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개입할 필요가 있다.

금융제도를 만들고 정교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한국의 경우 특수은행, 지방은행, 비금융기관 등이 시장에 의해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를 갖추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또한 정부가 자본시장을 육성하기 위해서 기업공개를 유도하여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역시 중요한 정부의 역할이다. 또한 민간부문이 발전하기 이전에 투자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사회간접자본(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이나 기간산업(포항제철)의 건설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도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많은 사람들은 시장경제를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오해를 한다. 시장경제란 그러한 것이 아니다. 오직 강자가 스스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정글의 법칙은 하이에크가 말한 것처럼 자연적 질서이다. 시장경제는 누가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약육강식의 자연적 질서와는 달리 서로의 자발적 교환에 의해서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자생적 질서를 말한다.

국경을 넘는 교역인 무역에서도 같은 이치가 성립된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서 교환하기 위해서는 서로 문화와 관습도 다르고, 규칙을 어겼을 경우 해결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는 거래비용이 매우 많이 소요된다. 각 경제주체들이 스스로 조정을 통해서 이 거래비용이 저절로 낮아지려면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거래비용을 낮추는 효과적인 제도의 창출에 실패하기도 한다. 따라서 후발 개도국의 경우에 정부가 이러한 시장 경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한 정부의 기능이다.

세 번째의 것은 정부가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갖추는 정도의 재분배는 자유주의자들도 인정하지만, 공산사회가 추구한 것과 같은 결과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거나 서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추구한 것과 같은 평등사회를 지향해서 실시한 시장개입은 반자유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두 번째 유형의 시장개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특히 정부가 고도성장기 박정희 정부처럼 성장제일주의에 입각하여 기업들에게 인센티브제공과 간섭을 했을 경우에 무조건 다 반자유주의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서 은행을 국유화해서 자본의 배분을 정부가 장악하고, 우선적으로 지원할 산업을 선정하여 지원 한 산업정책은 분명히 반자유주의적이지만, 잘 한 기업을 독려하고 인센티브를 주고 못한 기업은 차별한 것은 시장의 보상을 증폭시킨 것으로 반시장적이라고 볼 수 없다.

외부경제를 창출하는 경우에는 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이 수출목표를 달성해서 사회에 외부경제를 가져온 기업에게 저금리의 정책금융을 제공한 것은 다른 국가에서 볼 때는 불공정 무역이라고 비난할 수 있지만 국내적으로는 보조금 지급을 정당하게 인식하는 후생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는 정당한 것이다. 고도성장기 박정희 정부는 배분 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했고, 따라서 생산의 과실을 거두어서 재분배하는 역할보다는 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더 많이 했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은 시장주의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시장을 활용할 줄 알았다. 시장의 핵심이 차별화와 경쟁이라면 이러한 측면에서 고도성장기 한국 정부는 이러한 차별화와 경쟁을 촉진했다는 점에서는 반자유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유치산업보호도 시장경제와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국내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내 시장을 보호하는 유치산업론도 기본적으로 시장실패 때문이기 때문이다. 개도국에서 시장이 실패하는 이유는 기업의 리스크가 너무 커서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산업분야가 많고, 특히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서 기업의 이윤을 금융기관이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우며, 개발 초기에는 투자는 외부성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시장실패적 요인으로 인해서 시장에 맡기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논리가 성립된다(이재민, 2001: 497-500)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전제 조건은 비교우위가 있는 제품에 특화하여 교역을 할 경우 자발적 교환은 양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비교우위가 자연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아니면 인위적으로 비교우위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은 인위적으로 비교우위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제철산업의 경우 한국은 제철소를 처음 세우던 1960년대 말에는 제철에 대한 수요도 없었고, 원료도 없고, 기술도 없었다.
 
비교우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자본과 기술 그리고 원료를 도입하여 일관 제철소를 만들어서 효율적으로 생산함으로써 비교우위를 창출했다. 마찬가지로 석유화학 공업이 경우도 원유가 전혀 생산이 안되고 비교우위가 없었지만 석유화학공업의 일괄공정을 위한 설비를 갖춤으로써 싼 가격에 각종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함으로써 섬유 등의 산업에 비교우위를 창출했다.

시장질서의 기본이 되는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은행 등 금융기관을 창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면 한 사회의 비교우위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것은 비시장적인가? 한정된 자원의 배분에 간섭을 했다는 측면에서는 반자유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제철과 석유화학 공업과 같이 여러 산업의 기초소재가 되는 산업은 일종의 외부경제효과가 크므로 이는 공공재의 관점에서 정부가 공급하는 것이 시장경제 원리를 위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수출기업에 대해서는 간섭보다는 지원이 많았다. 중화학 공업화 기간 중에 간섭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시장에서 검증된 기업을 선별하여 과점적 경쟁을 유도했다. 또한 선택된 과점적 기업들도 해외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므로 경쟁 원칙에 위배된 것은 아니다. 고도성장기 정부의 많은 역할이 불완전한 시장을 보완하고, 인센티브를 주고 지원을 하는 역할이었다. 이것을 가지고 시장을 대신했다거나 정부가 주도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

시장과 정부를 서로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도성장기에 박정희 대통령은 월간 경제동향을 매월 보고 받았다. 이렇게 경제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정부가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고 해서 시장을 그만큼 위축 시킨 것인가? 이것은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면, 정부는 ‘보이는 손(visible hand)’의 대표적 존재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이다. 시장과 정부를 대립적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다. 시장 즉 ‘보이지 않는 손’의 반대 개념인 ‘보이는 손’은 조직(hierarchy)으로 이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도 있다. 그런데 시장의 기능을 중요시하기 위해서 기업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듯이 정부의 역할이 무조건 줄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 정부의 역할이란 자원배분에 관여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질서를 세우고 유지하는 기능을 말한다.

시장과 정부를 대립적으로 보는 관점을 지양되어야 한다. 특히 시장의 기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구조개혁을 하기 위해서 정부의 규율을 성급하게 축소시키는 자유화조치가 자동적으로 시장의 효율적인 작동을 보장하지 못한다.

시장의 반대 개념인 조직(hierarchy)인 정부와 기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코스(1937)는 기업의 특징은 명령을 특징으로 하는 조직이라고 보고 비용과 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시장질서 하에서 조직이 필요한 이유는 시장을 이용하는데 거래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정부조직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며 정부는 시장질서라는 공공재를 제공하기 위한 하나의 조직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해서 반자유적이고 반시장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오류이다.

시장경제가 공정하고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이 작동되고 정보가 원활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그런데 고도성장기에 이러한 시장경제의 하부구조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는가?
자본시장의 경우 투자위험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경험자도 없고, 국내에 축적된 자본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성장제일주의의 이념 전파에 앞장서서 단기간에 시장경제 운영에 필요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수출목표를 달성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싸우면서 일하자는 모토 하에 자주국방도 달성하고 수출산업도 고도화시키기 위해서 중화학 공업화의 기치를 내세워서 시장에 개입을 하였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가 경제성장을 추구했고 유도했지만 그것 때문에 경제가 성장한 것이 아니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입이 주로 차별화에 반하는 재분배 위주가 아니라 기업을 지원하고 독려하는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장을 한 것이고, 그 경제성장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었다.
정부의 재량적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기업과 국민의 경제하려는 의지(the will to economize)였다. 주요 산업을 선정한 것은 정부이지만 무수히 많은 의사결정은 결국 기업들이 했다.

정부가 정한 큰 틀 안에서 그리고 인센티브 체계 안에서 결국은 중요한 의사결정은 기업들이 한 것이다. 기업의 소유는 사유이지만 경영은 정부와 소유자가 공동으로 했다는 주장(조순, 1991)에도 동의 할 수 없다. 기업을 영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의사결정이 있는데 정부가 기업과 함께 공동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가 반문하고 싶다. 한국은 고도성장기에 자유시장경제가 기본이었다. /김승욱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