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메시지 'A' 대북 'C'…대한민국 생일 되찾기 언급없어

   
▲ 이구진 정치평론가
고대 로마의 수사학(修辭學)이 보여주듯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인의 언어와 말이란 지도자학(學)의 으뜸이다. 특히 대통령의 연설이란 최고의 통치행위에 속한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지금 무슨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며, 이를 통해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는 소중한 기회다.

그런 높은 상징성에 비춰 올해 8.15 경축사는 그다지 흡족하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적지 않은 현안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할 기회를 과연 온전히 활용했는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올해 경축사 분량은 6700 자(字). 신문으로 치면 좌우 2개 지면에 담길 분량이고, 낭독 시간은 15분 내외다. 이 정도라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의 최고 최선의 소통의 기회가 아닐까? 8.15의 상징성도 크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내용은 밋밋했고, 메시지 전달에도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 점은 각 매체의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대일 메시지는 A학점, 대북 메시지는 C플러스

당일 연합뉴스는 “박 대통령, 70년은 위대한 여정…4대개혁으로 ‘희망 대한민국’”이란 제목으로 경축사 기사를 내보냈다. ‘위대한 여정’,‘ 희망 대한민국’등은 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실은 공허한 어휘다. 광복절 경축사의 경우 전통적으로 대일, 대북 메시지 선별이 중요한데, 상대적으로 대일 메시지가 전달이 성공적이었다.

“미래로 함께 함께 나가자”는 뜻은 그간 이웃 일본과의 긴장관계를 풀 실마리로 적절했다. 함축적인 표현이라서 울림도 크다. 반면 대북 메시지는 평균점 이상을 주기 어렵다. “도발과 위협을 내려놓고, 생명과 평화의 한반도를 만드는 길에 동참하기 바란다”는 제안은 지뢰 도발과 핵개발의 와중에 너무 온건했다. 톤을 좀 올렸어야 했다.

결정적으로 문제 있는 게 대국민 메시지다. 딱 하나가 누락됐기 때문인데, 주로 애국 우파 진영에서 문제제기해왔던 사안이다. 광복절은 일제로부터 벗어났던 것을 축하하는 국가 명절이자, 꼭 3년 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치로 한 대한민국이 건국한 기념일이라는 점을 대통령의 입으로 직접 환기시켜줬어야 옳았다.

이번 경축사에서 언급이 전혀 없진 않았다. 첫 문장에서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입니다.”라는 멘트가 등장했다. 예전 좌파 정부의 두 대통령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구절이다. 하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구체적 내용이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양동안-이영훈 두 교수의 건국절 문제제기 수용했어야

이 점은 2년 전 경축사에 비춰 봐도 만족스럽지 않다. 당시 취임 첫해였는데, 박 대통령은 “65년 전 오늘은 외세의 도전과 안팎의 혼란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날이기도 합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밝혔다. 그렇다면 올해엔 보다 진일보한 역사인식이 뚜렷하게 등장했어야 옳았다.

이미 미디어펜에 기고한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글이 그걸 선명하게 밝힌 직후였다. 그 뒤 자유경제원도 화답을 했다. 그들은 8월 13일 ‘해방 70년, 광복 67주년’ 기념 특별토론회를 개최했는데, 당시 이영훈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건국의 역사적 의의와 현실’이란 발제문에서 그걸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은 공화국 창건을 기념하지 않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고 지적하면서 그건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도 풀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을 경청해보자.

“광복절의 주년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 일은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도 할 수 있는 일이다. 1949년 8월 제1회 독립기념일이 경축되었고, 1949년 9월 독립기념일을 명칭 변경하여 광복절로 하였고, 1950년 8월 제2회 광복절을 경축하였음이 정부가 보유하는 제반 기록에서 더 없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밝히면서) 대통령이 대국민성명을 통해 그 동안 건국사의 이해에 중대한 착오가 있었는데 이제 바로 잡아서 올해는 제67회 광복절이라고 선언하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국민도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고 나라의 생일을 올바로 되찾았다고 기뻐하면서 박수를 칠 것이다.”

그게 정답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좌파 일부에서 논란을 벌이겠지만, 파장은 크지 않았으리라. 더구나 이 사안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양동안-이영훈 교수 둘은 학계에 대표성을 가진 분이다. 애국우파 진영으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걸 염두에 두고 최선의 경축사를 만들었을 경우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에 대한 정중한 언급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말하자면 이런 식이면 최선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을 포함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오늘의 번영을 내다본 역사적인 첫 걸음을 67년 전 오늘 뗐었다는 사실을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입니다. 사실 독립국가 대한민국을 선포하는 그 역사적인 1948년 8월 15일에 초대 대통령이신 이승만 박사는 광복과 건국의 의미를 명확하게 밝히는 가슴 벅찬 소감을 이렇게 발표하였습니다.

‘금년 8.15는 해방기념 외에 새로 대한민국의 탄생을 겸하여 경축하는 날이니 우리 3천만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날입니다.’라고 당시 이 박사는 밝혔습니다. 맞습니다. 오늘 광복절은 해방과 건국을 함께 기념하는 ‘기쁨 두 배의 날’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광장에서 시민과 함께 대형태극기 만들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업적도 언급했어야 정상

이 정도라면 사회적 논란은 거의 없었다. 더 나간다면 여러 가지 안타까운 형편이 겹쳐서 대한민국의 생일을 축하하는 게 국가명절로 뿌리를 못 내리고 있고, 아직도 학계에서도 논란이 없지 않다는 사정을 완곡하게 밝히면서 이렇게 덧붙여도 좋았다.

“해방과 건국 이후 6.25 전쟁 등이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우리 정부는 일제로부터의 해방만을 기리고, 역사적 건국을 공식적으로 기념하지 않아온 것인데, 이 과정에는 혹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세력의 움직임이 개입되어온 것이 아닌지를 저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국민적 합의와 전문가들의 토론을 거쳐 3년 뒤에 건국 70주년을 맞는 해에는 이런 혼란을 정리하고 의미있게 기념을 하는 과정이 있기를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고대하는 바입니다. ”

아쉽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이 사안에 대한 학계와 시민사회의 합의가 충분하기 않기에 대통령의 경축사가 그렇게 나온 것일까? 아니면 청와대와 대통령 인식의 탓인가? 이걸 지적하는 내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실망하긴 이르다. 기회는 내년도 내후년도 있다. 그 사이 이 문제를 둘러싼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 3년 뒤 ‘광복절 70주년’(양동안 교수 제안) 혹은 ‘독립기념일 70주년’(이영훈 교수 제안)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대국민 메시지로 재확인되길 기대할 뿐이다. /이구진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