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3세’가 스페인 왕위에 올랐다. 1598년이니 합스부르크 왕가가 아직은 맹위를 떨치던 시기다. 아버지 ‘펠리페2세’는 아들에게 스페인 왕위뿐 아니라 포르투갈 왕위까지 넘겨주었다. 하지만 ‘펠리페3세’가 물려받은 유산 중에는 전쟁도 포함됐다. 

펠리페2세는 합스부르크가 일원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전성기를 꿈꿨다. 당연히 중동의 절대 강자 오스만제국과 갈등은 피할 수 없었고 엄청난 국력이 소모됐다. 독립을 꿈꾸는 네덜란드를 억압하는 원정 전쟁을 위해서도 국가가 흔들릴 정도의 전비가 들어갔다. 추상적 명분과 실리없는 투자가 지속된 전쟁은 돈 먹는 하마였다. 국고는 비었고 빚은 늘어만 갔다. 이런 즈음 왕위를 물려받은 펠리페3세는 재정난이라는 현실이 두려웠고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스페인이 콜럼버스이후 신대륙에서 유입된 금과 은으로 누렸던 황금기는 퇴색한 추억이었다. 건물의 칠이 벗겨지면 오히려 흉물스럽듯 옛 영광을 말해주는 기념물은 초라하고 현실의 벽을 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았다. 현실은 1억 두카트(Ducat, 중세부터 사용된 약 3.5g, 순도 98%의 금화로 요즘 달러같은 기축통화) 약 14조원의 국가부채와 더불어 향후 4년 치 국가 재정수입이 저당잡힌 지옥이었다.

펠리페3세는 용단을 내렸다. 더 이상 재정난을 방치하면 국가재정이 붕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조바심은 재정 정책에 대한 무지로 인해 상황을 악화시켰다. 무지한 자들이 늘 그렇듯 손쉽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발을 딛었다. 1599년 스페인 은화(銀貨)를 주조하면서 비싼 은(銀)은 아예 넣지 않았다. 왕의 명령으로 ‘은이 없는 은화’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은의 함량이 돈의 가치를 담보하는 시대에 은이 없는 불량 주화의 통용은 시장을 침몰시켰다. 

   
▲ 두카트는 중세부터 사용된 약 3.5g, 순도 98%의 금화로 요즘 달러같은 기축통화. 사진은 베네치아에서 주조된 두카트 동전.

1599년 이전에 만들어진 은화는 시장에서 삽시간에 사라졌다. 해외에서 불량주화가 반입되면서 유출되거나 녹여져 고가의 은괴로 변형돼 거래됐다. 또는 집안 깊숙한 곳에 숨겨져 새로운 날을 기다렸다. 결국 시장에는 악화(惡貨)만 남고 양화(良貨)는 자취를 감췄다. 소위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 것이다.

입김처럼 가볍게 사라질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꺼리는 ‘정치 이야기’를 하려는 까닭이다. 그것도 변화무쌍한 정치판이 요동까지 치는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조심스러움도 있다. 또 민감한 시기 특정 정당소속 의원들의 이야기를 하노라면 편향을 내세워 까탈을 부릴게 우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정치의 불행은 온전히 국민 몫이기에 안타까움을 미룰 수 없다.
정치판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을 보고 있다. 시대를 호흡하면 살아가는 현실 남녀에게 정치는 떼어놓을 수 없다. 정치는 살아가는 현재를 구성하고 다가올 미래를 재단하기에 그렇다. 그렇기에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에 대한 호불호는 당연하다. 각 정당마다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이라니”하며 내심 퇴출을 바라며 백안시하는 인물들이 있다. 반면 “이런 사람이 국회에 있기에 나라가 돌아가는가 보다”라는 흐뭇한 마음에 소중히 저축해 놓은 이도 있다. 그런데 있어야 할 이들은 자리를 훌훌 털어버리고 밉상인 이들은 자리를 보전하는 현실은 불가사의하다.

   
▲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오영환, 홍성국, 이탄희 의원(좌로 부터)

국회의원 오영환은 “우리 정치는 상대 진영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오염시키는 것이 승패의 잣대가 됐습니다.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하기 바쁘고, 국민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정치인 한 명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소방관 출신의 젊은 정치인으로 누구보다 서민과 호흡했던 인물이었다. 국회의원 당선 후 책에서 배운 대로, 선배 정치인들이 가르친 대로, 국민이 원하는 대로 실천했으나 가장 먼저 불출마를 선언했다. 원칙과 현실 정치의 괴리를 메우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지역구 평판 또한 그가 재선에 나서면 어렵지 않다는게 중론이어서 그의 결단은 결단으로 다가온다.
 
국회의원 홍성국을 처음 접한 건 정치인이 아니었다. 선견적 시각으로 국내외 정치 경제를 분석하고 국가 비전을 제시한 ‘수축사회’라는 저서를 통해서였다. 실물경제를 매개로 국가 비전을 제시했던 그는 바쁜 의정활동 중에도 ‘수축사회 2.0’이라는 증보판을 통해 급변하는 환경을 조명했다. 그도 정치를 떠났다. “저는 지난 4년 간 국회의원으로서 나름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바꿔보려 노력했습니다. 대전환을 경고하고 대안을 만드는 것이 제가 정치를 하는 목적이자 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후진적인 정치 구조가 가지고 있는 한계로 인해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객관적인 주장마저도 당리당략을 이유로 폄하 받기도 했습니다”라는 소회를 남긴 채.

이탄희 의원의 불출마 소식은 충격이다. “정치의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증오정치는 정치의 목적, 싸움의 목적을 잃었습니다. … 소득불안, 주거불안, 묻지마 범죄와 생명·안전에 대한 위협, 기후위기와 저출생으로 인한 소멸의 불안 등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증오정치는 주권자들의 고통을 방치하고 있습니다.”라는 귀거래사를 남겼다. 고성을 지르지 않고도 상대를 설복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정파를 뛰어넘어~”라는 전치사가 붙을 정도로 정도를 걸었던 인물이었다. 반대 정파에서도 ‘합리적이고 원칙 앞에서 교언영색 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픔에 공감하고 정치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천착한 인물이었다. 그는 정치 생명을 단절하면서 “선거법만 지켜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제 이들은 여의도에 없다. 가장 국회의원답던 이들의 부존재는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혹은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을게다. 또 더욱 비합리적이고 원칙 앞에서 흔들리는 정치공학이 판을 지배할 것이다. 나는 정교한, 불가피한, 불가불의, 눈물을 머금은, 후세를 위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믿지 않는다. 원칙과 행동이 없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협잡과 야합의 수사임을 알기에 그렇다. 하지만 기대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이불 속에, 옷장 속에, 소매 속에 감추었던 양화가 빛을 보는 세상이 왔듯 선지자적 소명을 실천한 이들이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전하다. 4월은 만물이 부활하는 봄이 아니던가.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겸 주필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