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조직에서 밀려나고 사랑에 배신당하고 타자들에게 소외되고 고립된, 한마디로 슬프고 쓸쓸한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문학이 꼭 그러라고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러려고 한다. 그것은 복무가 아니라 자발적 고독과도 같은 것이다"-저자의 말

   
늦은 밤 반짝이는 노포와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혹은 보지도 않으면서 틀어놓은 TV 불빛을 안주 삼아 홀로 잔을 들이키는 사람들. 도시의 밤을 수놓는 혼자만의 불빛과 반짝이는 술잔들. 어쩌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오늘도 술잔을 들이키곤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희주의 두 번째 시집 '내가 너에게 있는 이유'는 그렇게 반짝이는 불빛인 동시에 처절한 현실을 닮아 있다. 삶의 중심에 들어서 있고 그 중심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또는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위안과 나눔의 잔을 권한다. 어지러운 세상의 속도에 현기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건네는 멀미약이다.

시인의 자탄적인 세상속에는 아무리 거친 싸움에도 승자와 패자가 없다. 생존을 자각하는 순간 자신을 잃고 살아온 세월이 있었을 뿐이다. 정신없이 달려왔건만 골인 지점 앞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꿈을 위해 달려 왔던 모든 순간들이 한 순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다는 초라한 시간들 앞에 허무해 진다.

세상을 사는 방법을 나만 모르는 것만 같지만, 딱히 토로할 사람도 주변에 남아 있지 않다. 모두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하소연 따위가 아니라 책임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토로할 사람 없는 기분은 자꾸만 마음속에 쌓여만 간다. 그리고 그건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마음의 신호를 받고 깨닫는 순간 이미 그 또한 과거가 돼 있다. 

작가는 말한다. "본질이라는 말, 실존이라는 말 그리고 일자라는 말과 타자라는 말에 대하여 나는 일종의 쾌감을 갖고 있다. 그것은 가령 노을처럼 저녁이 되면 번져오는 당신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 같은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고요하다". '고요함'이 외려 과거와 단절 하고픈 역설적 표현으로 다가옴은 시어속에 표현된 현실적 고달픔을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시인의 슬픈 질문은 그를 대변하는 듯 하다. "무슨 일 했는가 묻길래 증권회사에 다녔었다고 하니 자본주의의 꽃 아니냐며 돈 많이 벌었느냐고 묻는다 시를 썼다고 말하니 시를 읽어줄 사람이 있었겠느냐 시를 쓰다니 당신이 그럼 시인이었냐고 그가 묻는다 -'슬픈 질문' 전문

이처럼 시인은 커다란 도시의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곱씹으며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혼자라는 사실을 오래도록 곱씹고 있다. 그 속에는 과거의 후회도 있고, 현재의 사실도 있으며, 미래가 되길 바라는 희망도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시 속에 등장하는 화자나 '사내'나 '그 남자'나 모두가 이 시대상의 낯설지 않은 모습들이다. 그게 나든, 너든, 우리든.

시인은 1962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문학과비평'에 시 16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투자증권 커뮤니케이션 본부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글을 쓰며 한적한 곳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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