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전법과 테러리스트 합작…무력 도발 '무기력' 대응이 원인

   
▲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
보잘 것 없어 뵈는 허술한 지뢰 두 개가 남북관계의 지축을 뒤엎었다. 당분간은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연평해전-천안함-연평도 ’가 거대한 테러라면 목함지뢰는 전형적인 게릴라 전법이다. 일본 전국시대에 암약한 닌자(忍者)의 수법이다.

문제는 남한은 여지껏 당하기만 했다는 사실이다. 이쯤에서 반문해봐야 할 질문이 몇 개 있다.

첫째, 목함지뢰는 피할 수 없었는가? 둘째, 북한은 왜 그랬을까? 셋째, 대한민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넷째,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

철책 문 바로 앞은 등잔 밑과 같다. 적은 주도면밀히 그곳을 노렸다. 사선을 넘는 첫 발자국에서 이를 발견하기란 기대 가능성이 낮다. 병사의 개인적 실수가 아니라는 의미다. 애초에 그런 위치에 치명적 살상무기가 침투하지 못하게 해야 할 억지력의 실패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북한은 단 두 개의 지뢰로 뭘 어쩌자는 것이었을까? 북한 하전사의 용맹성을 자랑하기 위함이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작은 지뢰 두 개가 가져올 남북관계의 파장과 대남 교란효과를 충분히 예측,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북한군의 지휘부는 정무감각이 뛰어난 정치군인으로 채워져 있다. 군이 곧 국가를 지속시키는 핵심 요소인 체제 아닌가.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까? 목함지뢰에 담긴 대남 메시지를 찾는 일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묻는 두 번째 질문, 곧 ‘그들의 범행이유’를 추적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셋째, 넷째 질문의 답도 함의하게 된다.

   
▲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사진=MBN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압축된다.

첫째, 늠름하고 잘 훈련된, 잘 생긴 두 하사관의 젊고 건장한 다리를 무자비하게 날린 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을 바라던 남측의 실낱같은 희망의 다리를 무참히 무너트렸음을 상징한다. 대한민국의 대화와 협력, 자유평화 통일 의지를 지독히 경멸한다는 환유이다.

심리적으로는 대통령의 '통일대박'과 '경원선 복원' 이벤트를 향해 북측이 갖고 있던 신경질의 완결판과도 같다. 5.24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 남북경협 활성화, 충분한 대북지원 개시 등 북한이 기다리고 기대하던 선물(?)을 이번 정권에서는 포기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북한은 핵을 쥔 김정은의 대내외적 자신감을 목함지뢰 두 개에 담아냈다. 앞으로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장거리 미사일을 쏴도, 4차 핵실험을 해도, 새삼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하다면 오히려 이게 더 이상하다. 군사·정치감각이 뛰어난 북한군 수뇌부(물론 여기에는 김정은 본인도 포함돼 있다)가 노린 기대이익은 군사적 긴장의 일상화 조성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대결과 대화를 병행적 또는 순차적으로 오가면서도 한가지 유지했던 전략은 정치적 목적(대남 주도권 확보)과 군사적 수단(대남 무력도발) 사이의 도구적 연결성(instrumental linkage)이었다. 북한의 '대남사업'(북은 '전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을 목표로 하는 '남조선 혁명전략'을 '대남사업'이란 무색무취의 용어로 통칭한다.)이 갖는 핵심적 특징이다.

둘째, 대남교란 작전의 본격적인 재개이다. 앞서 언급한 '남조선 혁명전략'이란 북한의 대남전략의 기반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전략'과 동의어이다. 북한 대남 혁명전략의 목표는 남한 정권을 타도한 후 인민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 '통일전선', 곧 동조세력을 규합하여 동맹체를 결성, 투쟁을 가속화하는 전술이다. 최종목표가 적화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북한의 교란술의 1차 목적지는 남한의 고립화, 대남주도권 확보로 압축된다. 이제껏 북한이 스스로 자인한 잘못은 한 건도 없었다. 이번에도 범행을 전면 부인하였다. 때를 즈음하여 남한 내부에서도 목함지뢰가 북한의 도발이 아니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단순명쾌한 사건이 진실게임이 되는 순간, 억울하게 손해보는 쪽은 언제나 피해자측이다. 북한은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젠 전국민에게 익숙해진 패턴이다.

   
▲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관련 아군지뢰 탓이라는 루머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했어야 하는가.

생각이 많은 군인은 결단해야 할 때 결행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많은 생각 속에서 머리만 복잡해진 남한의 군 지휘부는 즉각 보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재개(이 자체를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는 군사적 공격에 정치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논리이다.

나는 피를 흘렸는데 적의 마음만 공격하겠다는 판단에 그치겠다면 그건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이다. 심리전은 교란술이지 응징이 아니다. 군인으로서의 단순 명확한 판단과 민첩한 행동원칙의 회복이야말로 이번 사건의 첫 번째 교훈이 돼야 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것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형벌원칙의 기본인 ‘탈리오 법칙’이다. 군인의 판단력과 전문성은 어떻게 이것을 실현하느냐에 집중돼야 한다. 북한은 앞으로 더 강공책으로 나올 것이다. 그때마다 우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신문과 방송에 온갖 작전 계획을 생중계하며 입으로만 떠들 것인가? 작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국가에도 군 작전은 최대한의 보안과 침묵 속에 결과로 나타나야 하며 행위주체가 불분명해야 고도의 공작이다.

초원의 왕이라는 사자도 방심하거나 상처를 받으면 하이에나 무리에 당하는 것이 동물의 세계다. 힘있는 사자에게는 누구도 덤비지 않는다. 사자는 자신의 힘이 세다는 것을 스스로 시위하지 않는다. 오직 약해지고 힘 빠진 사자를 적들이 먼저 알아볼 뿐이다.

한국군은 급소를 심히 아프게 한방 차였다.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것은 실은 약해졌다는 방증이다. 강한 사자는 눈으로 말하고 행동으로 되갚는다. 하이에나는 내쫓기지 않는다. 절대 상대를 쓰러뜨릴 수 없음을 깨달을 때에라야 스스로 떠난다.

남한사회의 분열과 군사적 도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는 북한 대남전략의 '고리'를 끊는 일은 군사적 도발에는 무력으로 단호히 응징하는 길이 유일하다. 음모는 불신을 숙주삼아 피어오른다. 군사도발에 대한 즉각적 응징은 내부분열의 씨앗을 초기에 제거한다. 이제까지 남한은 시도도 못했으니 실패는 자명했다. 천안함-연평도는 좋은 사례다.

분노라면 가슴 속에 오롯이 담아두자. 지금은 북을 향해 펼쳐 내민 손을 거두고 주먹을 움켜쥘 때다. 그리고 응전의 기회가 다시 다가온다면 주저없이 상대의 명치를 향해 전광석화처럼 강력한 펀치를 날리라. 그런 후에야 상대가 손을 펼쳐 내밀 것이다. 평화는 그 때 가서 그 손을 잡아줄 때에라야 가능해지는 법이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