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현대사 대중문화 다리역…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과거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태어나보니 엄마가 이난영, 태어나보니 아빠가 김해송...”
경쾌한 리듬으로 현재화한 역사 한 줄기, 눈물 한 줄기다. 이제 갓 데뷔한 걸 그룹이 불러 젖히는 랩 같은 이 가사는 이난역 김해송의 두 딸 숙자 애자와 이난영의 친조카 미자가 이룬 김시스터즈를 소개해준다. 김시스터즈를 채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방의 푸른꿈, 김대현 감독> 도입부에 ‘목포의 눈물’ 가수 엄마 이난영, 천재 작곡가 아빠 김해송을 일깨우는 것 자체가 아주 오랫동안 너무나 굳게 닫혀있던 우리 최근세 문화사 대문을 두드려 여는 주문이었다.

과연 한국 최초의 걸 그룹인 김시스터즈를 되살려준 다큐 영화 <다방의 푸른꿈>을 지난 13일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만난 관객들의 감흥은 특별했다. 모두들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 ‘비틀즈와 롤링스톤즈가 출연했던 미국 에드 설리반 쇼에 김시스터즈가 단골 출연했었던 거야...’, ‘백파이프까지 새 악기를 10개도 넘게 배워 무대를 누비고 아리랑을 들려주는 진정한 라스베이거스의 스타였구나...’

제천 청풍명월 한여름 별 새까만 밤 사람들은 저마다 그렇게 웅성대며 논평하고 놀라움과 부끄러움 등으로 범벅이 된 입 댓글을 달고 있었다. 지금껏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우리네 할머니들의 청춘 시절, 전성기 시절을 함께 호흡하며 스스로 다그친 영화학자, 비평가들 코멘트도 충만했다.

‘우리가 한 달에 하나씩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야해..’, ‘그래 맞아. TV에서도 모르고 점점 사라져가는 문화사 소재가 너무나 많잖아..’, ‘나는 전설의 무용수 최승희 다큐 영화를 찍고 싶어...’ , ‘영화에 보면 윤복희 아버지 윤부길도 나오잖아. 악단 멤버 단체 사진에 배우 김지미가 나온 것 봤어?’, ‘좋아. 다큐는 학자들도 취재하고 연구해서 만들 수 있으니까...’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한국 최초의 걸 그룹인 김시스터즈를 되살려준 다큐 영화 '다방의 푸른꿈'./사진=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홈페이지 캡처
왕년의 글로벌 한류 스타 김시스터즈가 다시 불 지핀 창작의 열정들이 수많은 반딧불이가 되어 영화관객의 영혼을 매혹시키는 진풍경이 되어 주었다. 이날 <다방의 푸른꿈> 개막작 상영에 앞서 김시스터즈 세 멤버 중 막내인 미자 할머니가 극적으로 등장했다. 헝가리 태생으로 저명한 타악기 연주자인 남편 토미빅과 함께 그 시절 그 노래 ‘싱싱’, ‘김치 깍두기’ 그리고 자신의 고모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고국의 새카만 후배와 아이들에게 선사했다.

무려 1959년에 미국 무대에 진출해 50년도 더 넘게 타향살이를 한 김시스터즈의 유일한 증인 민자 할머니는 한국말이 서툴 정도였으나 무대 위에선 여신 그대로였다. 잠깐 인사말 하는 중에 “우리 김시스터즈 셋은 미국에서 음식 때문에 너무 고생했어요. 김치를 너무 좋아하는데 라스 베이거스에서 먹을 수가 없잖아요.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작곡가 이봉룡, 이난영의 오빠)께서 70년대 초 귀국 공연 때 ‘김치 깍두기’ 노래를 지어 주셨죠‘라고 설명해준다.

이 노래 가사가 참 재밌다. ‘낯 설은 타국 땅에 몇몇 해를 살면서 고향 생각 그리워 오나 가나 식사 때면 런치에다 비프스테이크 맛 좋다고 자랑 쳐도 우리나라 배추김치 깍두기만 못하더라 코리아의 명물.. ’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 모습./사진=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밝고 화사하기 짝이 없는 이 노래 가사를 듣다보면 짠한 감정의 여울도 함께 밀려올 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 이난영, 고복수, 김정구 같은 위대한 식민지 연예인들 애환으로 생각은 이어진다. 한국전쟁때 납북되어 생사도 모르는 작곡가 김해송의 아내 이난영이 생계를 위해 조련했다는 1950년대 절대 빈국 한국의 아이돌 걸 그룹 스타의 눈물 젖은 빵 이야기까지. 우리 대중문화사의 험난한 여정이 자꾸만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날 이토록 풍족한 아이돌 가수, 걸 그룹, 보이 밴드들이 스타나 셀러브리티 찬사를 들으며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를 K POP으로 누리게 만든 후광을 김시스터즈 같은 초기 대중문화 선구자들이 마련해준 덕택인 지 모른다.

그렇게 최승희, 김시스터즈, 윤부길, 박시춘, 손목인, 손석우 등 예인들이 험한 현대사의 다리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었나 보다. 그들이 다지고 전해준 보습대일 땅을 힘껏 내디디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고귀한 최근세 대중문화사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