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확대' 은행권 긴장감 최고조…상생금융 요구에 '혁신' 실종
2024년 갑진년(甲辰年)을 대표하는 동물 용은 12간지 중에서 유일하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생물이다. 올해 한국 경제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상징으로 다가온다. 2024년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경제는 승천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지만, 나쁜 선택을 할 경우 연초의 모든 희망은 한낱 가상의 꿈으로 흩어져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2024년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경제는 승천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지만, 나쁜 선택을 할 경우 연초의 모든 희망은 한낱 가상의 꿈으로 흩어져 사라질 수도 있다./사진=김상문 기자

올해 전체를 조망해 보면 상‧하반기에 각각 거대한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 4월의 한국 총선과 11월의 미국 대선이다. 두 가지 정치 이벤트는 올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확실한 불확실성(certain uncertainty)’이다. 어느 쪽으로 진행될지 아직은 감조차 잡을 수 없지만,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선거 전까지 매복돼 있던 문제들이 개표 결과와 함께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올 한 해의 경제 변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역시 1일(현지시간) 내놓은 보고서에서 "전쟁, 선거, 경제 경착륙 등 위험 요인이 많아 예상치 못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디어펜은 금융·건설·산업 등 분야별로 한국경제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미 연준 선택, 우리 경제 향방 가른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우리에게 밀접한 경제 이슈로 범위를 좁혀보면, 올해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정책 변경이다. 가파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인상해 온 미국은 드디어 올해부터 ‘금리인하’ 기조로 통화정책을 전환하는 피벗(pivot)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이르면 오는 3월부터 올해 총 3~4차례 기준금리를 0.75~1.0%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인하 전망이 확산되면서 미국‧한국증시는 작년 연말부터 이르게 축포를 쏴 올렸다. 

연초에 들려온 올해 경상수지 흑자 전망, 반도체‧자동차‧조선 경기 호조 등이 우리 경제 낙관론에 속도를 붙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확히 같은 시기 한국이 중견건설사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소식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문제가 나라경제 전반의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은 아직 낮아 보인다. 하지만 비슷한 위험이 또 다시 부각될 여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린다는 사실 역시 마냥 좋은 뉴스로만 해석할 일은 아니다. 최근 있었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미국 채권금리는 매우 가파르게 내리고 있다. 이에 우선 단기적으로 너무 빨리 떨어진 채권금리가 일시적으로 재상승하면서 혼란을 유발하는 경우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보다 넓은 시선으로는 미국의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의 혼돈에 대비할 필요가 있겠다. 지난 50여년간 미 국채 장단기 금리차가 역전되었다가 돌아온 사례는 3~4회 정도인데, 정상화 과정에서는 반드시 극심한 경기침체를 수반하는 고통이 뒤따랐다. 이번이라고 예외가 될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다. 

   
▲ 경상수지 흑자 전망, 반도체‧자동차‧조선 경기 호조 등이 우리 경제 낙관론에 속도를 붙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위험이 부각될 여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사진=김상문 기자


특히 경기침체가 어떤 대형 사건과 결부돼서 시작할 경우 고통은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통화정책을 고려하는 선 안에서 정책을 전개해야 하는 만큼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따라서 올해는 작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책 난이도가 올라간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올해 신년사 안에는 이런 고민들이 잘 녹아 있다. 지난 1일 내놓은 신년사에서 이 총재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면서도 경기 회복과 금융 안정에 필요한 최적의 정교한 정책 조합을 찾아나가야 한다”며 “무엇보다도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상 직전의 오르막길 또는 마라톤의 마지막 구간, 즉 라스트 마일이 가장 어렵다”는 말로 현 상황의 어려움을 에둘러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주요 선진국에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 징후가 나타나고, 국내에서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일부 위험 신호가 감지되는 만큼 경제의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신용 위험이 확대되지 않도록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 사라진 금융권, "리스크 관리"만 반복하는 리더들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회장들이 바라보는 현실 인식도 비슷하다. 이들은 올해 신년사 및 언론 인터뷰 등에서 하나같이 ‘부동산PF 대출’과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가계·기업대출 부실’을 올해 경제·금융권 최대 리스크로 지목했다. 

이들이 연초임에도 불구하고 활력 넘치는 계획보다는 ‘내실 다지기’라는 이름의 위험 관리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형 금융지주사들 전부가 원대한 포부를 드러내기보다는 전년 수준의 손익을 목표로 세우고 조심스러운 항해에 나선 모습이다. 심지어 현 상황을 ‘전쟁’에 비유한 금융지주 회장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말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원금손실 문제를 비롯해 각 금융지주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다. 작년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에 대해 ‘이자장사’라는 표현으로 강도 높은 비판을 한 이후 각 금융지주는 상생금융이라는 이름의 고통 분담에 동참하며 정부의 리듬에 맞추려 애쓰는 모습이다. 이번이 두 번째인 상생금융안에 동원된 금액은 물경 2조원 수준이다.

   
▲ 정부와 당국은 당연히 금융권에 대해 철저히 관리 감독을 해야겠지만, 동시에 이들이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사진=김상문 기자


국내 금융권 전반에 도덕적 해이나 정교한 고객관리 등 반드시 개선돼야 할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라 경제의 핏줄로 비유되는 금융에 정부가 지나치게 센 입김을 불어넣을 경우 그 부작용이 결코 금융권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 또한 주지의 현실이다. 

시중은행 간의 경쟁도 결코 만만치 않기에 사실은 그들 자신이야말로 ‘이자장사’에서 누구보다 탈피하고 싶어 한다. 매분기 은행들의 실적발표 때마다 절대 빠지지 않는 표현 중 하나가 수익 다변화다. 정부가 금융권을 옥죄면 옥죌수록 이들의 수익성은 떨어지고, 결국은 후진적인 이자수익 모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각자의 생존전략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금융지주들이 연초부터 상생이라는 코드에 지나치게 몰두하며 정부 정책에 동원되는 현실은 여전히 우리 금융이 관치(官治)의 그늘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규제혁신이 ‘금융선진화’ 가장 빠른 길

올해로 취임 3년차를 맞이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혁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면서 임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민생경제와 여론의 인기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는 정부의 절박함이 금융권을 옥죄고 있다는 인상을 떨치기는 여전히 힘들다. 

혈액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채로 몸 안에 흐르며 사람의 건강을 유지시킨다. 몸에서 피가 날 때는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을 때다. 경제의 혈액인 금융도 마찬가지다. 모든 상황이 원활히 돌아가 기업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금융권은 조용히 그들을 보조할 뿐이다. 

금융권 관련 뉴스가 계속 부각되는 최근의 상황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징조다. 정부와 당국은 당연히 금융권에 대해 철저히 관리 감독을 해야겠지만, 동시에 이들이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 

금산분리 완화 문제를 비롯한 각종 규제혁신, 해외진출 확대, 금융·비금융 서비스 접목, 인공지능(AI) 시대 대비, 외국인 투자 유치, 초대형 투자은행(IB) 지정 확대 등 범금융권 내부의 현안들이 올해 내내 우선 순위에서 처리되길 기대한다. 금융권의 자유도를 높여주는 것이야말로 금융선진화의 등용문(登龍門)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되새길 필요가 있다. 2024년에도 우리의 가능성은 여전히 금융에 있다. 금융이 미래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