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절벽에 '절망의 덫'…대학교육의 적정 가격과 가치 따질 때
   
▲ 김흥기 교수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것에는 가격이 있고, 그 가격은 대체로 그 상품의 가치와 비례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동차를 구입한다고 하면 경차, 중형차, 대형차 등 가격대별로 기대하는 상품의 품질에 차이가 있다.

경차를 구입한 경우 경차라는 것을 감안하고 최고속도와 가속도, 실내 공간과 편의장치 등을 고려하여 상품성을 판단한다. 경차는 안전과 편의를 포기하고 경제성을 극대화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형 세단을 구입하는 경우 지불한 가격에 걸 맞는 성능과 안전 및 편의성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우리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제품의 가격과 가치(효용)을 비교한다. 천 만 원은 매우 큰 금액이다. 그러나 차를 구입하는 기준에서 천 만 원은 큰 금액이 아니며, 집을 구입하는 기준에서는 매우 적은 금액이 된다. 우리가 제품이나 서비스가 비싸다, 싸다고 이야기할 때 그 제품의 절대적인 가격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독 대학 교육에 있어서는 이러한 경제적 기준이 잘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대학 교육을 받는 비용은 단순히 대학교에 지불하는 등록금인 약 3200만원(2015년 4년제 대학 평균)만 소모되는 것이 아니다. 대학 교육을 받기위한 나의 기회비용(약 8000만원)까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우리는 약 1억 원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대학교육을 받는 셈이다. 과연 대학교육이 1억 원을 지불하고 받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그것도 빚을 져서 마련한 1억 원이라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살면서 1억을 넘게 투자하는 일은 집을 구입하는 일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대학교 4년 동안 1억이 넘는 돈을 투자한다는 고민과 계획을 가지고 대학교육을 받는 대학생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가 이렇게 큰 투자를 하는 이유는 투자를 통해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이 소득, 직업 안정성, 자부심을 높여 주고 개인의 경제적 성공과 플러스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고 통계적 수치로도 확인된다. OECD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학력 간 임금격차는 고졸을 100으로 할 때 대졸이상 177, 전문대졸 118, 중졸 69이다.

   
▲ 대학은 더 이상 창의적인 엘리트 양성을 위한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준비 장소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다. 더구나 대학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쥐떼처럼 대학으로 꾸역꾸역 몰려가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사진=연합뉴스TV 캡쳐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의 평생기대소득과 고졸자의 평생기대소득을 비교한 결과를 살펴보면, 1억 원을 투자해서 훨씬 더 큰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랬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교육에 대한 높은 수요는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가격탄력성이 낮고 높은 소득효과를 반영하는 일종의 사치재 성격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 그렇지 않다면? 그래도 우리는 1억을 들여서 대학에 가야하는가?

대학은 더 이상 창의적인 엘리트 양성을 위한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준비 장소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다. 더구나 대학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쥐떼처럼 대학으로 꾸역꾸역 몰려가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5천 원짜리 식당 음식의 가격과 품질은 따지면서 3200만 원짜리 대학 교육의 가격과 품질은 개의치 않는다.

2011년 처음 등장한 신조어 ‘3포 세대’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취업난,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물가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층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 포기가 추가되면서 ‘5포 세대’란 말이 나오더니, 급기야 희망과 꿈마저 놓아야하는 ‘7포 세대’, ‘N포 세대’라는 용어까지 잇따라 등장하며 힘들어지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중퇴하는 학생들이 일부 있긴 하지만 아직 많은 이들이 대학교육을 포기한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식당은 마음에 안 들면 다신 안가면서도 대학은 그냥 끝까지 다닌다. 식당에는 졸업장이 없지만 대학에는 졸업장이라는 게 있다. 마치 아이들이 상품 가격이나 맛, 용도가 아니라 포장지에 그려진 게임 캐릭터를 보고 구매하듯 대학졸업장 간판을 보고 상품을 구매하는 격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것은 청년들의 취향이 바뀐 게 아니라 결혼으로 인한 편익 보다 비용이 커지면서 결혼의 가치보다 가격이 높아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취업을 위해 대학에 갔는데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된다면 대학교육의 가격과 가치에 대해 따져볼만한 때가 되었다.

이미 투자한 ‘매몰비용’(sunk cost), 어디엔가 소속되지 않는데 따른 ‘격리불안’에다가 대학이 더 나은 직장과 삶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신화에 대한 그릇된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대학을 반드시 졸업해야 한다는 믿음과는 달리 역사는 수많은 에디슨, 스티브잡스, 빌 게이츠, 정주영을 배출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떨어지면 다른 상품을 구매하거나 대체품을 찾게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학교육의 신뢰는 땅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인데 엉터리 대학교육에 대해서는 대체 해결방법이 없다. '희망의 돛이 아니라 절망의 덫’이 되어버린 이 시대의 대학교육. 빚쟁이를 양산하는 이 땅의 대학. 혹시 당신이 스스로 닻을 내리고 멈춰선 줄 알았는데 남이 걸어놓은 덫에 붙잡힌 건 아닐까?

평생교육시대. 이제 누구나 평생 배워야 한다. 하지만 퇴직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그 에코세대의 대학교육비를 빚을 내서 댄다. 정해진 가격이 정당한지 질문할 수 없는 가격수용자(price taker)요 한마디로 ‘봉’이다. 그리고 자녀들은 각종 알바로 고생하며 돈벌이 하면서 사회와 기성세대를 욕하면서도 학교엔 다닌다. 그래도 여전히 지금 당장 대학에 가야 하는가? 현재 우리사회의 잘못된 집단적 의사결정이 향후 미래 사회를 어둡게 할까 심히 우려된다. /김흥기 모스크바 국립대 초빙교수· ‘태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