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최근 평양 시민들에게만 방영하던 외국영화 채널 만수대TV를 없애는 대신 체육TV를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수대TV는 토요일 저녁시간과 일요일 하루 종일 구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에서 만든 외국영화를 즐길 수 있는 채널이었다. 영화 방영 중간 중간에 최근 국제 소식과 세계 상식도 보도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만수대TV의 송출이 중단되는 대신 지난 15일부터 체육TV가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시간에만 방영되기 시작했다.

‘체육 강국’을 내세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외부정보의 유입보다는 체육 열풍을 일으키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외국영화 채널은 한때 평양 시민들이 주말에 큰 즐길 거리였던 것이 맞다. 하지만 2000년도부터 북한에서 시작된 한류열풍으로 외국영화 채널의 인기가 시들해진 지 오래라고 한다. 만수대TV 채널이 사라진 근본 이유가 따로 있을 수 있겠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유포시키는 것을 엄격하게 단속해왔지만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르는 것 같다. 최근 북한 주민들이 즐겨보는 한국 드라마로 ‘별에서 온 그대’, ‘괜찮아 사랑이야’, ‘전설의 마녀’, ‘왔다 장보리’, ‘가족끼리 왜 이래’ 등을 꼽을 정도라고 하니 한국 드라마가 꾸준하게 유입되고 있는 사실을 방증한다.

   
▲ 최근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USB와 SD카드에 담겨서 북한으로 유입되고 있다. 20편 짜리 한국 드라마의 경우 32기가 USB에 모두 담겨진다. 또 MP5 플레이어(사진)로 영상이 재생되는 SD카드에도 한국 드라마 전편이 거뜬히 담긴다고 한다./사진=미디어펜
정통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2009년 평양시에서 인민보안부가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일이 있으며, 그때 거둬들인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제목으로만 분류해서 2000여 편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와 영화를 담은 CD나 USB 개수가 아니라 작품 편수가 그 정도였다고 하니 정말 다양한 장르가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당초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단속해야 할 간부들이 내용을 미리 파악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집에 갖고 가서 드라마를 보다가 그 가족들이 전파시키고, 어느새 복사본이 만들어져 유포되면서 한류 열풍이 시작된 측면도 크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최근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USB와 SD카드에 담겨서 북한으로 유입되고 있다. 20편 짜리 한국 드라마의 경우 32기가 USB에 모두 담겨진다. 또 MP5 플레이어로 영상이 재생되는 SD카드에도 한국 드라마 전편이 거뜬히 담긴다고 한다.

USB와 SD카드는 모두 밀수로 북한에 들어가서 시장에서 거래된다. 상인들은 ‘장마당’에서 한국 드라마를 공공연하게 팔지는 못해도 노트북을 갖고 나와서 내용을 확인시켜줄 수 있을 정도로 만연되어 있다.

처음 대표적인 큰 시장 위주로 유포되던 것이 지금은 북한 전역에 있는 거의 모든 시장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살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중앙기관 간부들이 보안부에서 단속한 USB 등을 회수해 한국 드라마 시청을 즐기고 있다고 하니 고위층부터 중간 간부는 물론 일반 주민들까지 북한 시장에서 한국 드라마 유통을 완전히 근절시킬 정도의 단속이 이뤄지는 것을 전혀 바라지 않고 있다는 해석도 해볼 수 있다.

이렇다보니 평양시내에서는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패션이나 말투까지 유행을 타고 있다. 지인들과 대화를 할 때 유행하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 제목을 모르면 무시당하기도 하고, 편한 지인들과 말할 때 서울 말투를 따라하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평양시내 어느 간부 가정에서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수화기를 넘겨주면서 ‘통일이 다 된 것 같다. 서울에서 전화왔다’라고 말한 것이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주민들의 웃음을 자아낸 일도 있다고 하니 같은 언어가 통하는 북한에서 한류 열풍은 상상 이상일 가능성이 커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