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조차 묻지도 따지지도 못해…무책임 탁상행정만 반복

   
▲ 조형곤 21C미래교육연합 대표
“국민의 염원을 담은 대통령의 개혁 의지는 무책임한 공무원에 의해 단방에 꺾여 버린다.”

대통령이 임기 중반을 맞아 노동, 공공, 교육, 금융시스템의 4대 개혁을 외쳤다. 레임덕은 없다, 임기 말까지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교육개혁으로는 6대 세부 과제를 제시했는데, 자유학기제, 공교육정상화, 지방교육재정 개혁, 사회수요 맞춤형 인력양성, 일·학습 병행제 확산, 선취업·후진학 활성화가 그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과제를 추진할 주체세력의 의지이다. 국민적 염원을 담고 있는 대통령의 개혁 의지는 결국 관료와 공무원들이 주요 추진세력이 된다. 그런데 공무원은 여전히 무책임한 관행을 되풀이하며 심지어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뒷받침하기는커녕 꺾여버리게 만든다.

지방교육재정을 어떻게 개혁시킬까 하는 구체적 계획을 들여다보면 무책임한 공무원의 행태가 여실이 드러난다. 교육부는 지방교육재정 개혁의 추진목적으로 「국민의 세금이 교육발전에 꼭 필요한 부문에 우선 투자되고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하여 교육서비스 제고」, 「국가정책과 지방교육재정 운용 연계를 위한 배분 체계 개편 및 교육의 질 제고를 위한 재정운용의 효율성·투명성·책무성 제고」라고 밝혔다. 애매모호하고 상투적인 문구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금까지 국민의 세금이 교육발전에 쓰이지 않았던 구체적인 사례를 꼬집지도 않았고, 비효율적으로 쓰인 예도 제시하지 않는다. 효율성 투명성 책무성 등의 용어 역시 좋은 단어의 나열에 불과할 뿐이다.

추진목적이 불분명하다보니 추진내용으로 제시된 항목들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로 제시한 ‘재원배분체계 재정립’ 항목에서, 갑자기 누리과정을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일부 좌파 교육감들이 누리과정 예산을 누락시키며 피웠던 소란을 의식한 것인데 이는 순서가 잘못되었다. 누리과정을 지방교육청이 담당하는 교육과정으로 삽입시키면 예산은 당연히 따라간다.
 
일부 교육청은 자신들이 초중고 교육과정만을 소관하는 것으로 착각해 왔었다. 누리과정을 지방교육청이 소관하지 않겠다면 중앙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빼서 여성가족부나 복지부에 주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관리하도록 하면 그만이다. 물론 과거에 없었던 누리과정 예산을 신설하자니 이런 부작용이 나왔을 수 있지만 그것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제 때 고쳐놓지 않았던 관료들의 책임이 크다. 누리과정 예산은 벌써 오래전에 문제가 되었던 것이고 관료와 공무원들은 이에 대해 뒷짐을 지고 있었다.

‘학생 수 교부 비중 강화를 위해 교부금 교부기준을 개선’하겠다는 추진내용도 뜯어보면 알맹이 없는 맹탕이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학생 수에 부과되는 예산 비중을 높이면 오히려 교육 예산만 늘어날 뿐이다. 즉 지금까지 학생 수 중심이 아닌 학교와 교원 수를 중심으로 한 예산이 문제였다면 이를 고쳐야 하는데, 학교와 교원 수를 중심으로 세워진 예산은 그대로 놓아둔 채 학생 수에 대한 예산을 강화하면 전체 예산만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지난해 7월에 개최한 자유경제원 주최 교육쟁점 연속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조형곤21C 미래교육연합 대표.
다행히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적극 유도하겠다는 대책이 제시되었는데 이것 또한 전형적으로 무책임한 자세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20여 년간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부르짖었지만 농어촌 지역에서는 번번이 무시당해 왔다. 시골학교를 없애겠다는 문제의 이 표현은 곧바로 성난 민심으로 이어져 드디어 박근혜가 시골학교마저 죽이려 한다고 반발하게 될 것이다. 결국 학생 수에 대한 예산만 늘어난 채 소규모 학교는 손도 대지 못하고 교육 개혁은 실패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지금까지 반복해왔던 교육부 관료와 공무원들의 무책임한 교육행정의 사례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소규모 학교 통폐합’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반드시 ‘적정규모 학교 육성’으로 표현할 것을 역대 정부에도 강하게 내세운 바 있다. 교육 환경만 따지자면 학급당 학생 수가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과밀학급에 비해 한 반에 학생 수가 10여명도 안 되는 선진국형 학급을 마다할 학부모나 교사는 없을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우리의 시골교육은 모두 최상의 교육환경이 되어야 한다. 교원의 질적 수준을 놓고 볼 때 도시나 시골이나 다름없고 물리적 환경과 예산은 시골이 도시보다 훨씬 좋다. 교원 당 학생 수 비교나 학급당 학생 수 비교, 그리고 적은 학생 수에 비해 학교당 주어지는 예산은 도시 학교에 비해 크게 적지 않으니 시골학교는 예산이 넘칠 수밖에 없다.

그러함에도 시골교육이 좋다고 도시에서 시골로 전학을 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교육의 또래집단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선진국 핀란드는 일찍이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초·중학교 통합과 학교당 500명 내외의 학생 수로 구성된 적정규모 학교 육성에 힘을 써왔다. 한 반에 20명 내외의 학생 수와 한 학년마다 3~4학급은 되어야 또래집단 효과를 비롯해 최대의 교육 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즉 적정규모 학교를 만들면 부실한 시골교육을 활성화 시키는 것은 물론 교육 재정의 효율성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물론 도시의 과밀학급 혹은 학교당 1천명이 넘는 비대한 학교를 적정규모로 나누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이렇게 도시의 과밀학교와 시골의 소규모 학교를 적정규모로 육성하여 더 좋은 교육을 하자고 주장해도 설득이 쉽지 않은 판인데, 부정적 의미의 ‘소규모학교 통폐합’이라는 문구를 다시 꺼내 쓰는 의도가 무엇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과연 교육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

매년 700만원의 고등학교 수업료를 학부모가 부담하면 자사고, 국가가 부담하면 평준화된 일반고이다. 같은 금액의 돈을 세금으로 내느냐 학교에 직접 내느냐에 따라 일반고에 비해 자사고의 수업료가 비싸다고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일반고에 세금재원으로 투자되는 공교육비가 자사고의 학부모 부담 수업료에 비해 더 많이 들어간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자사고를 특권차별교육이라 하여 반대했던 터에 소규모학교 통폐합이라는 용어는 그 말을 꺼내듦과 동시에 무차별 공격을 당하게 되어 있다.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절감은 오래된 과제이지만 매우 절박한 과제이다. 관행적으로 대충 이것저것 하겠다고 해서는 절대로 실현할 수 없는 난제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교육 관료와 공무원들은 깊은 고민 없이 과거에 써 먹었고 또 실패했던 표현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제 교육개혁에 관해서 학부모단체와 학교운영위원회 그리고 교육시민단체들이 주체적으로 나설 것을 제안한다. 급한 것은 공무원들이 아니라 국민들이고 학부모들이다. 지금 교육개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 교육에 관한 국가의 책무성은 회복하기 어렵다. 이미 많은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지출을 부모의 의무로 생각하고 있다. 즉 공교육인 학교의 개혁을 주장하기 보다는 별도의 사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학부모로서 당연하다는 생각을 부모에서 자식 세대까지 전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매년 50조 원이 넘는 지방교육청 예산은 그 어디서도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교육 개혁, 한 마디로 말하면 50조 원의 막대한 지방교육청 예산이 적절히 사용되는지 그 책임여부를 따져 묻는 것이다. 국민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고,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따라 교육 관료와 공무원들이 반드시 교육 개혁을 완수하도록 다그쳐야 한다. 그리고 우리 시민들은 교육 관료들의 안일한 대책만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교육개혁의 주체세력으로 앞장서 나서야 한다. 그래도 쉽지 않은 것이 교육개혁이다. /조형곤 21C미래교육연합 대표